★★★★ 9,000원으로 즐기는 최고의 바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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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 Soul's FILM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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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바다 한 가운데서 펼쳐지는 소년과 벵갈 호랑이의 표류기가 영화로 제작될 만큼 매력적인 이야기인가? 소설을 읽지 않은 자가 할 수 있는 충분한 의심이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얀 마텔의 원작 소설 [파이 이야기]를 읽지 않은 이에게 마땅한 불안과 의심을 산다. 무지에서 비롯된 불안과 의심은 영화 초반, 파이가 작가에게 풀어 놓는 이야기를 지루하게 만들고 표류기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을 최소화 시킨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표류기 직전까지만 참으면 이후는 판타스틱 바다 세계로의 직간접적 체험 최고치를 경험할 기회를 갖게 된다. 물론 9,000원의 소박한 경비가 조건으로 따라 붙는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안 감독의 첫 3D 영화이자, [아바타] 이후 명성이 쇠한 3D 영화계를 다시 이어가는 수작이다. 현실 이상의 상상력, 실제 보다 더 실제 같은 CG와 3D가 극장 안에서 만끽할 수 있는 경이로움과 놀라움의 행복을 전한다. 더 놀라운 건 3D극장에서 보지 않아도 충분히 3D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파이(수라즈 샤르마)의 가족은 더 이상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여 동물원을 판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키우던 동물들을 한껏 배에 싣고 캐나다로 향한 파이의 가족은 뜻하지 않은 폭풍우를 만나게 되고, 파이를 제외한 가족은 배의 침몰과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구명보트에 올라타 겨우 목숨을 부재한 파이는 이후, 바다 한 가운데서 끝없는 표류(어찌보면 항해)를 겪는다. 구명보트에 같이 올라탔던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은 생존하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결국 남은 건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 파이는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크’와 공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한다.
리뷰의 시작에서 붙인 ‘경고문구’처럼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본 관객에게, 영화 초반, 파이가 작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지루할 수 있다. 영화 초반은 파이가 표류하기 전의 배경 설명이 주를 이루는데, 이 부분이 굉장히 정적인 흐름으로 연출되는데다 이야기 자체도 큰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중년이 된 파이의 계속되는 내레이션, 과도하게 웅장하고 느린 배경음악은 자연스럽게 수면 분위기를 유도한다. 이 지루한 싸움에서 버티면 승리! 맛보게 되는 보상은 달콤하다.
황홀하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나 싶다. 진짜 보다 가짜가 많은 영상을 보고 있단 걸 알고 있음에도,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에 관객의 눈과 귀는 거의 완벽히 속는다. 광활한 바다 위를 표류하는 작은 구명보트 안에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벵갈 호랑이가 있다니.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고, 소설적으로는 아주 말 되는 그 이상하고 놀라운 비주얼을 코앞에서 경험하게 되는 짜릿함,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만 맛볼 수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 특별한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파이와 벵갈 호랑이가 227일을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어떻게 생존해나가는지가 이야기의 전부다. 배경은 바다로 한정되어있고, 인물도 둘로 한정되어있다. 몇몇의 에피소드가 펼쳐지지만 이야기의 맥락을 흔들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은 ‘식인섬 시퀀스’ 뿐이다. 식인섬 이전은 예상 가능한 수준의 파이와 호랑이의 아웅다웅, 둘의 고난, 역경, 이를 이겨내고 나오는 삶의 작은 기적들이 전부다. 그래서 표류기도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공산이 크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런 이야기의 지루함을 이안 감독이 잘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바다 표면을 깨부수듯 물속으로 들어가는 고래, 쉴 새 없이 구명보트 위로 날아드는 날치 떼, 시도 때도 없이 스크린을 뚫고 나와 관객을 잡아먹을 것 같은 벵갈 호랑이. 특히 표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배의 침몰 장면에서는 최고의 입체감을 선사한다. 바다표면을 기준으로 위아래를 쉴 새 없이 넘나들며 완벽한 배경을 표현하고, 역동적인 앵글로 인물의 이동을 따라잡는 모습은 기존 재난 블록버스터에서 구현된 장면 이상이다. 이안 감독이 만들어 낸,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때때로 공포스럽기까지한, 입체감은 졸음을 단숨에 몰아내고 영화에 집중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이안 감독은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현재의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어느 경지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명쾌하게 시연하면서도 한편으론 소설이 닮고 있는 철학적 주제도 놓치지 않는다. 극 중에서 여러 종교를 믿고, 다양한 신을 섬겼던 파이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뒤 이를 모든 신의 가호로 믿고 감사해마지 않는 모습. 자칫 너무 과하게 보이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삶의 감사해하는 자세’는 읽을 수 있다.
[라이프 오프 파이]는 확실한 단점이 있는 영화다. 표류기에 비해 많이 지루한 초반과 후반. 화려한 영상에 비해 매력이 떨어지는 이야기. 메시지의 과한 전달로 인한 혼란스러움까지. 하지만, 9,000원의 비용으로 이렇게 황홀한 세계로 떠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시간과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다. 9,000원으로 즐기는 최고의 바다 여행. 참으로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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