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40대에 접어든 류승완 감독에게 액션키드라는 수식은 팬들에게는 애칭일지 몰라도 일반 영화관객에게는 취향 타는 별명일 뿐이었다. 이런 선입견을 한 차례 부순 영화가 <부당거래>다. 물론 <부당거래>는 현재 <신세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박훈정 감독이 각본을 담당하긴 했지만, 류승완 감독이 이야기만으로도 쫄깃한 사회풍자 스릴러를 만들 수 있다는 연출력의 증명이었다. 이후 그는 급상승한 기대감에 눌리지 않고 <베를린>이라는 훨씬 큰 스케일의 작품으로 귀환했다. 아내와 함께 직접 [외유내강] 제작사를 차리고 독일 베를린을 무대로 연출한 첩보액션물 <베를린>은 매우 성공적인 작품이다. 지도자가 바뀐 후에 권력 구조가 개편되는 북한의 상황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암투를 소재로 삼은 점이 돋보인다. <쉬리>가 히트함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에 꽃피우지 못한 첩보액션물의 한을 풀어낸 느낌이다. <베를린>에서 한석규가 분한 정진수라는 캐릭터는 <쉬리>에서 한석규가 연기한 유중원 캐릭터의 미래 모습 같기도 해서 짠하다. 한국에서 국가정보원 하면 영화와 드라마로 나온 <7급 공무원> 정도를 떠올리면서, 왜 우리나라에는 제임스 본드나 제이슨 본이 없냐고 묻는 어리석은 관객들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치는 영화다. 류승완 감독의 단짝인 정두홍 무술감독의 솜씨도 알아줘야 한다. 소품보다 배우의 몸이 부서지는 느낌을 원했다는 감독의 말을 영상에 옮긴 처절한 액션은 가히 일품이라 할 만하다. 그에 비해 다소 안타까운 점이라면 주요인물 5인(한석규, 하정우, 전지현, 류승범, 이경영) 중에서 4명이 북한인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미국 CIA나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한국 국정원은 조연으로 기능한다. 때문에 초반한 등장하는 각 집단의 이해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면 줄거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헤맬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배우들이 사투리를 강조한 나머지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뭉개서 발음한 것도 아쉽다. 후시녹음에 사투리를 립싱크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부러 영어 발음을 굴리지 않고 시원하게 내뱉는 한석규와 조근조근 말하지만 대사는 완벽하게 전달하는 전지현은 그래서 더욱 빛났다.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영화 <베를린>은 한국영화 속에서 침체해 있던 오락형 블록버스터를 한 단계 발전시킨 작품이다. 류승완 감독은 그야말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감독 본인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관객들은 벌써부터 [베를린 파일]을 잇는 [블라디보스토크 파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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