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 암살 작전의 비밀을 벗다
2001년 9월 11일,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뉴욕의 상징이던 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립니다.
스크린이 아닌 CNN을 통해 중계된 최악의 테러 현장이었지요.
그렇게 911테러가 발생한 지 10년 후, 영화의 에필로그처럼 뉴스 한토막이 전해집니다.
2011년 5월 2일, 911테러의 배후 인물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씰에 의해 사살됐다는 소식이었지요.
그리고 또 다시 2년 뒤, 2013년 3월,
오사마 빈 라덴의 암살 작전을 다룬 ‘진짜’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CG가 아닌 실제 재앙, 911테러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아픈 역사를 만들어 냈지요.
911테러와 빈 라덴의 사망 사이, 그 10년의 공백 동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숱한 작전들이 펼쳐졌겠지요.
‘제로 다크 서티’는 그간 베일에 쌓여있던 10년의 치열함을 영화적 과장을 덜어내고
오히려 현실적으로 풀어냈다고 합니다.
영화 같은 현실을, 실제 같은 영화로 만들어낸 ‘제로 다크 서티’, 그 새로운 진실을 만나봅니다.
00시 30분, ‘제로 다크 서티’의 숨은 의미는?
입에 익지 않은, 헷갈리기에도 딱 좋은 세 단어의 나열인 ‘제로 다크 서티’에는
제법 묵직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자정에서 30분이 지난 시각(12:30 am)을 뜻하는 군사용어이자,
미국 네이비씰 대원들이 빈 라덴의 은신처에 당도한 시각이도 하죠.
또 하루 중 가장 어두울 때까지 기다린 후 타겟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때
‘침투한다’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비단 하루 기준이 아니라 빈 라덴을 쫓아 암살하기까지의 지난 10년을 대입해도 의미는 통하겠지요.
실제 이뤄졌던 어둠 속 작전, 그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지시나요?
‘빈 라덴 암살 작전’이라는 부제를 단 ‘제로 다크 서티’는 제목 그대로의 이야기입니다.
911 테러 이후 전쟁까지 불사한 미국이 빈 라덴을 쫓는 데 얼마나 혈안이 되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되지요.
그럼에도 흔적조차 찾지 못하는 나날만 거듭되고, 이에 탁월한 감을 지닌 CIA 요원 마야
(제시카 차스테인)가 투입되지만 그녀 역시 벽에 부딪히고 맙니다.
설상가상, 그들의 함정에 빠져 동료를 잃고 테러리스트의 암살 공격까지 받게 되는 마야.
그때부터 ‘임무’가 아닌 ‘집념’으로 지독한 추적을 벌이던 그녀는
결정적 단서와 함께 마지막 작전을 수행하게 됩니다.
여성 CIA 요원이 가장 지독한 암살 작전을 이끈다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실존인물과 180도 다른 외모 캐스팅!
‘빈 라덴 암살’에 대한 공식 발표에 환호하던 이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숱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미국이 습격에 대해 일분만 공개할 뿐 핵심 작전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했기 때문이지요.
발표가 거짓이다, 빈 라덴은 살아있다, 등의 루머도 한동안 끊이지 않았습니다.
실존 인물과는 다르게 다르게~. 주인공이 여성인 것도 바로 이 이유일까요?
‘제로 다크 서티’는 그 의문을 풀어줄 유일한 통로라 자부하고 있습니다.
빈 라덴을 쫓는 추적 실화가 CIA, FBI의 기밀문서와 국방부와 CIA 관계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지요. 뿐만 아니라 영화 속 120여 명의 캐릭터 모두 실존 인물이 토대가 됐다고 합니다.
‘보도 영화 Reported Film’로까지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여기서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캐스팅 당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실화 바탕 영화임에도
각 역할마다 실존인물과 정반대 외모의 배우들을 의도적으로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국가기밀과 현직 주요 인물들을 다룬 긴장감이 느껴지는 대목이지요?
911테러 소재 영화, 아파서 차마 못 보는 걸까?
911테러는 이 시대를 사는 미국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이자 아픔, 상처입니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의 대한민국에서도 과연 같은 온도로 다가올까요?
‘제로 다크 서티’가 한국 관객들에게 얼마나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살짝 의문이 드는 부분입니다.
911 관련 영화, 흥미로운 소재지만 흥행에는 모두 성공하지 못했지요.
특히 미국 내에서도 그간 911테러 관련 영화의 흥행이 그다지 좋진 않았습니다.
무역센터와 펜타곤에 충돌한 3대의 비행기 외에 납치된 또 하나의 비행기의 이야기를 담은
‘플라이트93’(2006),
911테러 당시 항만경찰청 소속으로 구조에 나섰다 생사에 기로에 놓이게 된 두 대원의 감동실화를 그린 ‘월드 트레이드 센터’(2006),
911테러로 아빠를 잃은 소년을 통해 상처와 치유, 소통을 말하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국내 개봉은 안 했지요. 영화보다는 원작소설을 ‘강추’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정도를 들 수 있는데요.
글쎄요. 초대형 블록버스터급 사건을 현실에서, 4D로 체험해버린 이들에게 스크린 속 영화는
흥미가 없는 걸까요? 너무 아픈 상처 때문에 되새기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국내 관객에게는 911이나 빈 라덴이 특별히 흥미를 더하는 요소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결국은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관건이 되겠지요.
아카데미 감독상의 저력, ‘캐서린 비글로우’를 믿어볼까?
사실 ‘제로 다크 서티’에는 화려한 스펙터클도, 엄청나게 때려 부수는 액션도, 눈물의 강요도,
정치적 이야기도 없습니다. 오직 빈 라덴을 쫓는 10년의 집념을 차곡차곡 쌓아
빈 라덴 암살의 클라이맥스까지 끌고 올라가는 것이지요.
좀 지루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에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소개해봅니다.
단단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그녀는 길고 묵직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을까요?
아카데미가 택한 단 한명의 여성감독이 바로 ‘캐서린 비글로우’이지요.
그 영예를 안겨준 작품이 폭발물 제거반을 소재로 한 ‘허트 로커’(2008)인데요.
당시 대적 불가할 만큼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아바타’를 제치고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지요.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또 하나! 캐서린 비글로우와 제임스 카메룬이 한때 부부였다는 사실, 아시나요?
그녀로서는 더욱 통쾌한 수상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거칠고 강하고 남성적인 소재들의 영화지만 스토리는 섬세하고 촘촘하게 풀어내는 게 그녀의 장점이죠.
‘허트 로커’를 비롯해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핵탄도 잠수함인 K-19을 소재로 한 ‘K-19 위도우메이커’(2001),
바다 서핑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폭풍 속으로’(1991) 등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유독 거칠고 강하고 남성적입니다.
‘여성’이라는 꼬리표는 굳이 달지 않는 게 그녀에 대한 예의를 거란 생각이 들지요.
연출력에 있어서는 보증수표라 할 만한 그녀의 야심작,
아카데미 수상 이후 첫 번째 차기작인 ‘제로 다크 서티’가 기대를 모으는 이유입니다.
거장들이 사랑하는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
‘제로 다크 서티’에 대한 미국 내 영화비평협회의 찬사는 줄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감독상,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을 차례로 휩쓸고 있기도 하지요.
특히 주인공 마야 역을 맡은 제시카 차스테인의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감정을 눌러 표현할 줄 아는 제시카 차스테인의 변신. 왼쪽부터 ‘제로 다크 서티’ ‘트리 오브 라이프’ ‘마마’의 한 장면.
제시카 차스테인은 테렌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2011)에 이어 캐서린 비글로우의 부름까지
받으며 거장들이 사랑하는 배우로 통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판의 미로’(2006) ‘오퍼나지’(2008) 등으로 ‘멕시코의 스필버그’로 통하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마마’(2013)에도 출연했습니다.
여려 보이면서도 강인하고, 감정을 강하게 발산하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표현을 해내는 그녀가
빈 라덴을 쫓는 CIA 요원과 만나 어떤 모습으로 변신했는지 기대가 됩니다.
(영화스틸영상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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