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세상에 맞서 싸우는 용기.. ★★★★
환경 파괴, 지구 온난화로 점점 녹는 남극의 빙하. 그로 인해 바다 수위는 높아지고, 바닷물을 막기 위해 건설한 제방으로 욕조섬은 물이 빠져 나가지 못한다. 그 섬에 아빠 윙크(드와이트 헨리)와 사는 6살 소녀 허쉬파피(쿠벤자네 왈리스)는 그런 욕조섬이 흉물스런 높은 건물로 이루어진 제방 안의 세계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거센 폭풍으로 더 이상 욕조섬에서의 생활이 불가능해진 것 같은 현실에서도 허쉬파피와 아빠, 그리고 몇 명의 주민들은 결코 욕조섬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비스트>는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놀라운 영화였다. 어떤 점에서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 <비스트>야 말로 최근 미국 독립영화의 가장 뚜렷한 성과물일 것이다. <판의 미로>는 현실을 반영한 판타지가 얼마나 참혹하며 동시에 아름다운지를 증명해보인 영화였다. <비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비스트>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더 이상 밀려날 수 없는 사람들의 참혹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참혹함에 쓰러지기 보다는 노래를 부르고 서로를 위로하며 낙천과 여유로 삶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괴물 오록스. 바로 우주의 균형이 깨어질 때 얼음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오록스의 거침없는 질주는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며, 오늘날 지구의 인간들에게 내리는 최후의 경고로서 다가온다. 그러나 작은 소녀는 거침없이 몰아치는 운명에 결코 굴하지 않는다.
<비스트>는 태풍 카트리나가 할퀴고 지나간 루이지애나를 배경으로 실제 그 땅에서 피해를 겪고 다시 일어서려는 주민들과 함께 현실과 판타지의 절묘한 결합, 핸드헬드의 유려한 움직임이 만들어가는 영화다. 물론 그 중심에는 최연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된 쿠벤자네 왈리스의 뛰어난 연기가 자리 잡고 있다. 아쉽게도 강력한 한 방은 없지만, 끝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이들의 결정은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야 만다.
※ 소위 문명이 쌓은 제방은 뚜렷한 경계선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이라도, 현재의 삶을 지탱해가는 유일한 안식처라도 상관없다. 한 쪽의 풍요를 위해 다른 한 쪽이 물에 잠기고 평생 살아온 대지에서 쫓겨나야 하는 살풍경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리산 피아골에까지 댐 건설을 추진할 만큼 한국이야말로 너무 익숙한 풍경이다. 댐이나 제방의 문제만일까. 거주 이전의 자유는 가진 자들에게 달콤한 유혹일지 모르지만, 없는 자에겐 그저 쫓겨날 수 있는 자유일 뿐이다. 거주 이전의 자유는 이전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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