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게 국가주의에 딴지를 걸다... ★★★☆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로 쉽게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나를 피곤(!)하게 하는 건 뭉뚱그려 말하자면 사상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은 말할 것도 없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조직은 종종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사실 일상생활에서는 그다지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연결되는 문제이기는 하겠지만 일상생활에서라면 국가주의, 집단주의, 민족주의 같은 전체를 우선시하는 사고방식이 더 큰 침해로 다가온다. 물론 이 문제가 전적으로 분단 때문은 아니겠지만, 분명한 건 분단으로 인해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 더 강화되어왔고, 정당하다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한국엔 진정한 사회주의자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무슨 말이냐면 사회주의가 본질적으로 국가보다 계급연대를 우선시한다고 봤을 때, 민족이나 국가라는 울타리를 넘어선 사회주의를 한국에서 살면서 자신에게 내재화시키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군대문화의 영향도 있고) 영화에도 나오지만, 특히 일본과의 축구경기를 할 때는 관심 없는 사람조차 거의 매국노라는 식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아무튼, 국정원 요원들에게 감시를 받고 있는 최해갑(김윤석)은 아나키스트로 보인다. 어떠한 제도나 규율도 반대하고, 특히 국가가 주체인 제도는 온몸으로 거부하는 사람이다. 이런 남편의 적극적 지지자인 아내 안봉희(오연수)도 만만치 않고, 자녀들인 민주(한예리), 나라(백승환), 나래(박사랑) 역시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하고 민주적이다. 독립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의 감독이기도 한 최해갑과 가족은 결국 대부분의 재산을 차압당하고 최해갑의 고향인 작은 섬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 섬을 관광단지로 만들려는 지역 국회의원과 개발업자들의 농간에 주민들은 땅을 빼앗기고 최해갑 가족도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본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남쪽으로 튀어>는 대단히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아주 유쾌하게 풀어낸 오락물이다. 가볍게 툭툭 던져지기는 해도 주민등록증, 국민연금 같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러 가지 제도에 대한 최해갑의 일침은 분명 생각할 여지를 안겨준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여기에서 중요한 건 모든 국민들이 하나의 제도나 사물을 굳이 한가지만의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다양한 관점이야말로 그 사회가 얼마나 민주적인지를 입증해 주는 리트머스라는 사실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의 결핍’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좀 더 진일보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유쾌하고 재밌는 오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제공하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다. 오히려 영화가 주는 메시지 때문에 더욱 아쉽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우선 최해갑이라는 일인이 주도하는 영화라는 점이다. 영화는 전적으로 김윤석 일인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로 인해 영화가 더욱 유쾌해지고 더욱 도드라지는 장점이 제공되었음에도 반대로 보면 주위 인물들, 특히 가족들과도 화학적 결합이 느껴지지 않으며, 주인공이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구조를 보이는 단점이 거슬리기도 한다.
무슨 얘기냐면,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최해갑의 스타일이 최해갑을 중심으로 보면 그 스스로가 권위적 권위(?)를 누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그의 어투를 보자. 그 누구라도 무조건 반말부터하고 보는 그의 스타일은 한국 사회에서 중년의 권위적인 사람들과 너무도 닮아있다. ‘그럼 너도 반말하면 되잖아’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으며, 영화에서 다른 사람들도 끝내 최해갑에게 반말을 하지 못한다. 이건 무례한 거다. 자유를 추구하는 것과 무례한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음으로, 최해갑이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행동파 인물인 거는 알겠는데, 실상 그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는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 장치에 불과하고, 그의 일상은 자신이 평소 주장하는 정치적 테제와 거의 아무런 연관성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가 고향 섬에 내려가기로 한 것도 환경운동을 위해서, 섬의 개발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현재 유일하게 그가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섬의 개발을 막기 위해, 아니 주민들의 몰락을 막기 위해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독고다이식으로 움직이는데 과연 이 정도로 그가 원하는 사회가 올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특히 임순례 감독이 기존 영화에서 보여줬던 것이 따뜻한 연대와 공감이라는 점에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와 관련해, 결국 그가 도피하는 곳이 노력과 투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다고 알려져 있는 이상향이라는 점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여의주만 얻으면 하늘로 승천하는 지배계급의 상징인 용을 연상시키기조차 한다. 최해갑의 평소 행동과 사고방식에 비춰볼 때 스스로의 노력이 아닌 이미 존재해 있다고 알려져 있는 신화를 찾아 떠난다는 게 <남쪽으로 튀어>의 가장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었다.
※ 재미가 있다는 것과 영화적으로 아쉽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게다가 이 정도면 한국에선 보기 드물게 잘 만들어진 정치적 영화라(기보다는 정치성을 띤 영화)고 할 수 있다.
※ 찜찜한 건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쩔 수 없이 영화 제작 과정에서의 불협화음이 떠오른다는 점이다.
※ 또 하나, 조금 찜찜한 건 아나키스트이며 국가를 부정하는 최해갑이 아들 (그것도) 이름을 나라로 지었다는 것인데, 나라가 국가가 아닌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나라라는 이름에서 국가가 아닌 다른 의미를 끄집어 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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