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소녀의 잔혹동화 성인식
‘나에게 원하는게 뭐죠?’
박찬욱의 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영화는 성인으로 가는 단계 직전의 소녀에
관한 영화다. 대개 18세 소녀들이 그렇듯 뭔가 있지만 말은
하지 않고, 갈망은 하면서도 표현은 할 줄 모르는 그 감정들을 서늘하게 담아냈다.
자신의18살 생일에 차 사고로 아버지를 잃게 된 인디아. 장례식에 한번도 본 적 없던 삼촌 ‘찰리’가 찾아오고 인디아에게 묘한 관심을 보이지만, 본능적으로 그를 경계한다. 엄마 에블린은 보란듯이 그에게 끌리지만 찰리는 점점 인디아를 향해 노골적으로 접근하고 인디아는 그런 삼촌에게
알 수 없는 묘한 이끌림에 혼란스러워 하는데….
웬트워스 밀러의 시나리오를 스크린으로 구현해낸 박찬욱만의 연출력은 여전히 명불허전이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광기에 사로잡힌 욕망, 차갑도록 아름다운 색감들과 상징성들… 장소는 바뀌었어도 박찬욱만의
개성과 분위기는 그대로인데. 스토커에서 좀 더 두드러지는 면은 숨막히게 조여오는 분위기였다. 주인공 18세소녀 ‘인디아’의 감정을 세밀하게 잡아내기 위해 사용되는 교차 편집, 촘촘하게 구성된
복선과 상징성들, 그리고 차가운 영화 속 분위기를 살려주는 디테일한 음향...(심지어 인디아가 와인을 입에 가져다 마실 때 들리는 잔 속 숨소리 까지 살려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부족한 시나리오의 치밀함이다. 인물들간의
관계도 특히 인디아와 엄마 사이의 긴장감, 인디아가 아버지와 사냥을 다니게 된 계기 등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중요한 부분들이 너무 여백과 은유로만 남겨져 있어 관객으로선 불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니콜키드먼도
맡은 바 역할을 다했지만, 박찬욱만의 욕망에 사로잡힌 광기어린 분위기를 표현하기엔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미아 바시코브스카의 매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
전작들과 비교했을때, 시각적인 폭력성은 줄이고 오히려 이야기
상의 은유와 상징성을 매혹적인 영상으로 끌어가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더 신선한 잔혹동화가 완성되었다.
Good:
- 박찬욱의 팬들
- 천천히 하지만 숨막히게 조여오는 긴장감
- 신예 미아 바시코브스카의 신들린 연기
- 찰리와 인디아의 피아노씬은 압권
Bad:
- 박찬욱의 세계가 부담스러운 관객
- 넘치는 기교와 상징성들
- 편하게 영화 보고 싶은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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