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에반게리온이다... ★★★★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거의 대부분이 네르프 본부가 있는 신도쿄시에서만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Q>는 무대 자체가 무한대로 넓어진다. 니어 서드 임팩트로부터 14년이 지나 초호기에서 깨어난 신지는 모든 게 혼란스럽다. 미사토 대령은 ‘뷔레’를 결성, 인류보완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네르프와 맞서 싸우고, 신지를 매몰차게 대한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미사토의 말에 반발한 신지는 자신을 찾아온 레이를 따라, 아버지 이카리 겐도가 있는 네르프 본부로 간다. 그곳에서 나기사 카오루를 만나 위안을 얻은 신지는 14년 전 자신 때문에 벌어진 서트 임팩트의 결과를 보고 절망한다. 그러나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는 카오루의 설득으로 카오루와 함께 에반게리온에 탑승한다.
사실, TV 드라마 26화, 극장판 <데스 & 리버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그리고 4부작으로 예정된 신극장판 <에반게리온 : 서> <에반게리온 : 파>까지 모두 관람,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수차례 봤음에도 불구하고 영상만으로 <에반게리온>의 서사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내 능력으론 불가능했다. 온갖 해설서를 읽고 나서야 그것도 어렴풋이 이해되는 수준. 여기엔 비단 나만 그러지는 않았을 거란 안도감이 내재되어 있다.
<에반게리온 Q>(이하 <Q>)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작 한 번 보고 감상평을 남기겠다고? 그런데 과연 두 번 본다고 그게 가능할까? 아무튼 <Q>를 보고 나오면서 처음 든 생각은 많은 사람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TV 드라마 최종 2화였다. 신극장판 역시 결말로 갈수록 극도의 혼돈과 애매한 결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단적으로 말해 <Q>는 아쉬움이 먼저 다가오기는 한다. 우선 전체적으로 액션 장면의 조망이 힘들다. 너무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전투 장면들은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싸우고 있는 것인지 애매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물론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특징 자체가 그렇다고 하면 할 말이 없으나, 기존 시리즈에서 사도에 맞선 전투는 작전의 경과와 결과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 반해, 네르프와 뷔레의 전투 장면은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강렬한 장면의 부재다. 인상적인 여러 장면에도 불구하고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장면이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파>와 비교하니 더욱 그러하다. <파>에서 동요를 배경으로 더미 시스템이 아스카가 탑승한 사도를 공격하는 장면이라든가 신지가 사도가 먹어치운 레이를 끄집어내는 장면 등은 쉽게 잊혀지기 힘든 순간을 제공했었다. 아직도 극장에서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의 소름끼침이 기억날 정도로 강렬했다. 이에 비해 <Q>는 좀 아쉽달까.
그럼에도 에반게리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파>에서 기존 시리즈를 결별하는 듯한 급격한 전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존 시리즈의 설정들이 살아 숨쉬는 <Q>는 비록 그 때문에 <사골게리온>이란 오명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익숙함이 주는 안도의 힘이 있다. 단적으로 왼쪽 눈에 안대를 한 아스카의 모습은 아마도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결론에서 이어져 온 설정이리라.
누군가 농담으로 <서>에 비해 <파>가, 그리고 그보다 <Q>의 흥행이 높은 이유가 <서>는 TV 드라마와 내용상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안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파>에서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급전개로 관객이 증가했고, 모두들 <Q>를 기다리게 됐는데, 막상 <Q>를 보자, 이게 대체 뭔가 싶어 한 번 더 보게 됐고, 그게 관객 증가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농담으로 한 얘기이긴 하지만, <Q>는 최소한 극장에서 한 번 더 관람할 만한 영화라는 건 나에게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 신지가 답답하다거나 찌질하다고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내가 더 답답했던 건, 14년 만에 깨어난 신지에게 아무도 차분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의도한 모호함의 유지를 위해서일 것이다). 게다가 겨우 14살짜리 소년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수많은 인류가 죽었다는 데 어떻게 태연하게 대응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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