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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캠피온 <피아노>에 이을 역작! 피아니스트
MiTRa 2002-11-08 오후 7:26:30 1712   [8]

2. 여자와 피아노 - 2001프랑스영화 <피아니시트>와 93년 호주영화 <피아노>-

작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나는 아주 충격적인 영화를 보았다. 바로 <피아니스트>라는 프랑스영화. 제목만 보고서 예전에 인상깊게 봤던 호주영화 <피아노>의 감동과 낭만을 기대했던 나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당혹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했다. 당시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영화를 애써 기억에서 지웠었는데, 최근 DVD로 영화 <피아노>를 보고 그 충격의 영화 <피아니스트>가 다시 떠올랐다.

여자, 그리고 피아노. 피아노를 둘러싼 여자의 사랑과 격정을 그린 영화라는 점에서 이 두 영화는 얼핏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10년에 가까운 갭을 둔 이 두 영화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르고, 전혀 다른 듯 하면서도 어딘지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93년작 제인캠피온 감독의 <피아노>에서 청각장애자인 여주인공 아다는 오직 피아노와 어린 딸만을 통해 세상과 교류한다. 미개척의 뉴질랜드로 시집가면서 전혀 낯선 환경에 처한 그녀는 피아노를 버리려는 남편의 행동에도 불구, 더욱 더 피아노에 매달리며 마음의 위안을 구한다. 폐쇄된 세상에 사는 그녀에게 있어 피아노는, 딸 이외에 유일하게 세상과 통하는 수단이자 감정을 토로하는 발성기관. 낯선 원주민 벤즈는 그런 그녀의 피아노음에 끌리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된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위기, 일련의 과정들이 피아노선율처럼 때로는 격정적으로, 온유하게, 슬프게, 기쁘게 이어진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피아노란, 주인공 아다의 분신 그 자체일 것이다. 그녀는 피아노를 통해 세상에 말했고 세상을 배웠고 사랑을 배웠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던 피아노와 처음으로 '분리'의 기로에 선다. 피아노와 함께 물에 빠졌을 때, 삶이냐 피아노냐의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그녀는 자신의 어리석은 집착과 애욕을 피아노와 함께 어두운 바다에 묻어버리고 삶을 선택한다. 그건 그녀가 피아노를 통해 다른 세상과 접했고 거기서 사랑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둡고 닫힌 세상에서 피아노라는 [창(窓)]을 통해 다른 세상을 엿보았고, 마침내 그 창을 열고 나가 더 큰 삶과 세상을 얻었다.

그에 비해, 작년에 프랑스영화 <피아니스트>의 여주인공에게 피아노란 더 폐쇄적이고 은밀한 존재다. 마흔에 가깝도록 피아노에만 정열을 쏟아온 피아니스트 여주인공(이름은 기억이 안남..;)에게 피아노란 자기억제와 혹독한 자기수련 그 자체였을 것이다. 슈베르트를 좋아하던 그녀도 언제부터인가 홀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강압적인 교육 때문에 삐뚤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마흔이 넘어서까지 미혼으로 지내며 어머니에게 사사껀껀 간섭받는 그녀는, 피아니스트로서 성공하고 교수가 되지만, 내면엔 오히려 폭발할 것 같은 스트레스와 욕구불만를 쌓아둔다. 냉정하고 고상해 보이는 외견 속에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과 욕망을 담아두고서 오랫동안 그 기회를 찾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드디어 사랑의 기회가 찾아온다. 잘생긴 청년 제자의 정열적인 구애에 그녀도 이제껏 냉정한 태도를 무너뜨리며 끌린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 사랑해야할지 몰랐다. 이제껏 가슴속에만 눌러온 욕망이, 정작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고도 어떻게 발산되어야할지 자신조차 모른 채 방황한다. 그녀는 피아노는 그 누구보다 잘 쳤지만 사랑에 있어선 어린 제자들보다도 서툴렀다. 격정적이고 변태적이기까지한 그녀의 색다른 요구에 청년은 당황하고 상처입고, 그들의 사랑은 그림처럼 아름답지 못한채 삐걱이고 흔들리고 급기야 서로에게 상처까지 준다.
여주인공은, 실은 덜된 어린아이였다. 너무 오랫동안 자기 안에만 골몰한 탓인지, 타자와 대화하는 법을 잊었다. 사랑을 만나고서도 그 사랑을 나눌 방법을 모른다. 그녀가 치는 피아노는 자기 안에서만 쓸쓸히 울릴 뿐, 자기의 경계를 넘어 타인에게 닿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 피아노는, 아다처럼 다른 세계와 잇는 [창]이 되어주지 못하고, 내면에만 끝없이 반사시키는 [거울]이었을 뿐. 그러나 그런 그녀도 변한다. 쓰디쓰고도 값진 인생의 교훈을 얻는다.
나는 이 영화의 그토록 충격적이고 애절했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가슴을 움켜쥐는 그녀의 아픈 모습을 통해, 나는 비로소 그녀의 인생이 피아노였고 그녀가 자기인생의 주인인 피아니스트로서 누구보다 아름다운 연주를 하고 있었다는걸 깨달았다. 괴롭고도 행복한 사랑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그녀는 가련하리만큼 아름답다. 그녀에게도 이제 피아노는 닫힌 [거울]이 아닌 [창]이 되어, 진정 자신을 해방하고 자유롭게 할 수단이 될 것이다.

두 영화 모두 여성의 섬세한 심리와 사랑을 아름다운 피아노선율을 통해 표현한 수작이었다. <피아노>의 감동과 <피아니스트>의 충격과 격정, 둘 다 이 초겨울의 길목에서 각별한 의미로 내 안에 새겨져있다. 연기자들의 열연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두 영화 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마침 <피아니스트>는 조만간 개봉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피아노>와 함께, 이 겨울 놓쳐선 안될 영화라 손꼽는다. 피아노 선율을 따라 여인들의 삶과 인생을 거슬러올라가는 두 영화를 통해, 예술과 인생이 전혀 다른게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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