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뱃살과 펑퍼짐한 엉덩이마저 사랑스럽다...... ★★★★
영화 <비포>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뚜렷한 에피소드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저 기차 안에서 만나 비엔나에서 같이 내렸으며, 9년 후 작가가 되어 파리에 찾아 온 제시를 셀린느가 찾아와 비행기를 타야 할 남은 시간 동안 파리 시내를 거닐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비포> 시리즈가 우디 앨런 식의 스크루볼 코미디와 갈리는 지점이다. <비포> 시리즈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사실 대화 나누는 것 말고는 영화에서 딱히 하는 게 없다. 카메라 역시 대부분 대화를 나누는 두 인물을 꾸준히 따라다니 것 말고는 보여주는 게 별로 없다. 그럼에도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에 공감해 마지않으며 둘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은 바로 이들의 대화 속에서 누구나 경험해봤을 사랑이라는 감정과 연인과의 추억을 끄집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95년 기차에서 만나 비엔나에서 하루를 보낸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는 6개월 뒤에 비엔나 기차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9년이 흐른 뒤 파리에서 재회한다. 제시는 결혼을 해서 아들이 하나 있는 유부남이지만, 셀린느와의 재회에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비포> 시리즈에서 가장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노래를 틀어 놓고 셀린느가 춤을 추며, 제시에게 얘길한다. “자기, 이러다 비행기 놓치겠다” 제시가 대답한다. “나도 알아” 영화가 주는 이 공백이야말로 <비포> 시리즈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포 미드나잇>에 대해 사실 조금은 불안했다. <비포 선셋>이 마짐가에 던져 준 그 아련한 느낌을 산산조각 내는 거 아닐까 하는 불안감.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에 이은 <비포 미드나잇> 역시 전작에 빠지지 않는 <비포> 시리즈만이 줄 수 있는 그런 감정과 여운을 전달한다.
이번의 무대는 그리스. 40대에 접어든 제시와 셀린느는 7년차 부부이며, 둘 사이엔 쌍둥이 딸이 있다. 유명작가가 된 제시가 레지던시에 초청받아 그리스 남부 도시 펠로폰네소스에 머물게 된 것인데, 이들이 머문 6주 중 영화는 마지막 하루를 담고 있다.
<비포 미드나잇>에서 제시와 셀린느는 여전히 꾸준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자동차 안에서, 식사를 하며 그리스 사람들과, 그리고 산책을 하며, 호텔 안에서. 둘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이들이 <비포 선셋>의 마지막에 결국 제시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 셀린느의 방에 머물며 사랑을 나누었음을 알게 된다. 둘의 대화는 여러 주제들이 난무하지만, 중요한 건 처음 기차역에서 만나 이후 18년 동안 쌓였을 둘의 사랑과 서운함의 감정들이 또렷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깨알 같은 대화 속에 전작의 장면들이 묻어나면서 관객을 향수에 젖게 만드는 그 화술 또한 묘하게 아련함을 전해주며, 제시와 셀린느가 심각하게 대립하는 장면에서도 어느 일방이 아니라 둘의 입장이 모두 이해되는 특별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아마도 둘이 나누는 대사가 지극히 현실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는 각본에 두 주연배우가 참여했기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비포 미드나잇>은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의 여정에 동참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여정에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에단 호크의 두툼해진 뱃살과 줄리 델피의 펑퍼짐해진 엉덩이마저 사랑스러운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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