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던 <무서운 이야기 1>은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간 한국 공포영화의 다양성 부족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하는 데에는 기여했었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양한 장르의 공포 단편들을 엮어내는 모습은 (비록 에피소드별로 완성도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많은 호러 영화팬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죠. 그 <무서운 이야기>가 올여름 다시한번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청소년관람불가였던 등급을 15세 관람가로 낮추고 보다 많은 관객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했는데요. 그에 따라서 조금 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과연 본 영화는 이런 우려를 씻어내기에 충분했을까요?
먼저 첫번째 에피소드인 <절벽>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싶이 인기웹툰 <절벽귀>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절벽귀>라는 웹툰 자체를 그렇게 감흥있게 보지는 않았어서 이 에피소드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과물은 아쉽게도 그 기대치에도 조차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에피소드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며 스토리 또한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다소 억지로 끼어맞춘 듯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공포적인 요소가 강했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따지고 보면 이 에피소드에서 공포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장면은 기껏해야 3~4개인데, 그 부분들조차 효과적으로 살려내지 못했죠. 배우들의 연기에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동욱' 역의 '성준'은 나름 역할을 해냈으나, '성균'과 그 동생역까지 1인 2역을 담당했던 '이수혁'의 연기는 무미건조하고 어설퍼서 전체적인 몰입을 방해하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두번째 에피소드인 <사고>도 실망했던 마음을 돌리게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미국공포영화인 <더 로드>를 연상시키는 이 에피소드는 복선을 세심하게 깔고 세밀한 요소들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 느낌이 강했으나, 이야기 자체의 흡입력이 떨어져버리는 바람에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마지막 순간까지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이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데, 물론 이것은 의도된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낳은 것으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공포영화적인 요소가 너무나도 약해서 <절벽>보다도 긴장감이나 공포를 주지 못하고 있죠.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그렇게 좋았다고 할 수는 없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에피소드가 바로 <탈출>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그간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B급 코믹 호러를 표방하고 있는데요. 근래 한국 공포영화 작품 중 가장 재기발랄하고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병신'과 '사탄희'와 같은 주인공들의 이름부터 '탈출'이라는 추억의 놀이를 바탕으로한 전체적인 컨셉과 스토리까지 독특한 패기와 똘끼로 가득하며, 그것들을 바탕으로 코믹과 공포를 절묘하게 결합시켜서 보는 사람을 에피소드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었죠. 특히나 '고경표'의 코믹 연기는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고병신'이라는 캐릭터가 '고경표' 자신의 원래 모습이라고 해도 모두가 믿을 정도로 캐릭터를 120% 살려내고 있었죠. 그간 보여줬던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 '김지원'의 연기도 또 하나의 즐거운 요소였죠. 이 에피소드를 감독한 '정범식' 감독은 지난 1때도 <해와 달>이라는 영화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완전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이런 에피소드까지 이렇게 잘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과연 이 감독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도 몹시 궁금하네요.(일단 장편공포영화 한 편 좀 만들어주세요ㅠㅠ)
마지막으로 브릿지 에피소드인 <444>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브릿지의 역할을 충실히 한 정도였습니다. 외모가 <밀레니엄> 시리즈의 '리스베트'를 연상시키는 '이세영'이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이었고, 네 개의 에피소드 가운데서 결말이 가장 임팩트있긴 했지만 애초에 브릿지 역할을 하는 에피소드이기에 큰 감흥을 주기에는 부족했죠. 살짝 억지로 끼워맞춘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정리하자면 다양한 소재의 에피소드를 담아냈던 <무서운 이야기 1>과는 달리 <탈출>을 제외하면 기존 공포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의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을 받아서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아무래도 상영등급이 낮아진 영향이 커보입니다.) 하지만 <탈출>이라는 걸출한 에피소드를 볼 수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전혀 후회되지 않는 시간이었네요. 작년에 개봉한 <두개의 달>도 그렇고 이번 <탈출>도 그렇고 한국 공포영화계에서 점차 새로운 시도가 늘어가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어떤 한국 공포영화가 독특함과 새로움으로 무장하고 나와서 저를 놀래켜줄지 벌써부터 기대되는군요ㅎㅎ
+ 어떻게 <탈출>만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 <절벽> 별 두 개 반, <사고> 별 두 개 반, <탈출> 별 네 개 반, <444> 별 세 개. 그래서 총 별 세 개입니다!
++ 사진은 네이버 영화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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