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러 가면서 그동안 여러 영화속의 '마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들을 머리속에 나열해 보았다. 노르웨이 영화 '블라인드'속의 마리, 아름답지 않은 외모 때문에 자신이 없어 시력을 되찾은 루벤을 마음아프게 떠나는 그녀... 혹은 마리질랭이 출연했던 '마리'의 여주인공 역시 마리이다. 학생 신분으로 아이를 원치않는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하고 행복을 찾아 어쩌면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그녀. 유럽권에서는 굉장히 흔한 여성의 이름이지만 영화속에선 이 이름 자체가 타이틀 이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마리 크뢰이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크뢰이어란 성은 유명화가의 아내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마리란 이름으로 자신이 선택한 삶의 주체가 되려 몸부림 치고 있다. 예술가의 뮤즈로 남편의 명성을 얻는데 크나큰 공헌을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지닌 재능은 묻어두어야만 했고, 정신분열증을 않고 있는 남편에게 헌신적인 내조와 유명인사들의 접대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녀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난다. 아마 여기서 감독이 영화의 끝을 맺어 주었다면 보는 관객의 마음이 한결 가벼웠을 수도 있다. 그녀는 영화 중반주 쯤에 진정한 사랑을 찾는듯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배신을 하고 원하지 않는 아이까지 생겨 자신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또다른 약혼자에게로 도망치듯 떠난다. 전 남편에게 돌아왔지만 그녀는 노력해도 안되는 관계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아이의 양육권 마저 빼앗기고 만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새로 태어난 갓난아이를 안고 어디론가 떠나는 그녀..그 도피가 희망적이거나 밝아보이지 않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마음이 무거워 졌다. 내가 그녀의 고민을 짊어진 느낌이랄까...아마 그녀역시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을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양육권을 잃은 상실감과 패배감등등.ㅣ
영화엔 암시적인 요소나 난해한 부분은 없고 마리 크뢰이어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영화 초중반 부에는 전시회에 전시된 그림처럼 한장면 한장면 아름답게 그렸고, 후반부는 의상과 배경 모두 어두운 갈색톤과 검은 톤을 유지하고 있었다.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관객은 아마 이 영화가 힘들수도 있겠지만 이미 찝찝했던 느낌을 지울수 없는 유럽권 영화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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