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
금요일을 맞이한 한 패스트푸드점의 매니저 샌드라는 신경이 곤두서 있다. 전날 누군가 열어 놓은 냉장고 때문에 식자재가 상해, 급히 마련한다고는 했지만 금요일을 견디기엔 부족하며, 게다가 직원 한 명은 아파 출근도 못한 상태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경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주문을 받는 금발 소녀가 손님의 가방에서 돈을 훔쳤으니 자기가 갈 때까지 직원을 붙잡아두라는 부탁을 받는다. 샌드라는 배키를 추궁하지만, 배키는 절대 돈을 훔치치 않았다며 억울해한다. 샌드라는 경찰의 지시에 따라 배키의 가방과 옷, 심지어 알몸수색까지 진행한다.
<컴플라이언스>는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이건 현재 상영 스크린이 한 개라서 물리적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는 내내 펼쳐지는 너무도 끔찍한 지옥도를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기 힘들다는 의미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좁은 패스트푸드점을 맴돌며, 직원 대기실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과 홀에서 금요일의 여유로운 외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을 번갈아 보여주며,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우리 사회의 끔찍한 이면을 적나라하게 각인시킨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보며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게 말이 돼? 이런 멍청이들이 어딨어? 과장됐겠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실제 미국 켄터키 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연에 가깝게 거의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걸 ‘보이스피싱’의 일환으로 간주할지도 모른다. 나도 한 때, 보이스피싱은 나이 많거나 지능이 떨어지거나 아무튼 나와는 관계없는 일로 치부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 선배의 경험담은 나의 선입견을 말끔히 깨 놓았다. 보이스피싱도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수법이 더욱 치밀해져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정말 일어난 일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경찰관도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되기도 하겠는가.
<컴플라이언스>의 상황이 보이스피싱과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 그건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저 사기 피해자에 불과하지만, <컴플라이언스>에서 경찰관의 전화를 받아 경찰관의 지시 내지는 부탁에 의해 움직인 사람들을 피해자로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뒤에 자신들은 그저 장난전화에 속은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분명 이것도 어느 정도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영화는 어떻게 다수의 사람들이 마치 조종이라도 당한 듯 장난전화 한 통에 속아 넘어가는지 그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가방을 조사해라, 옷을 조사해라, 알몸을 조사해라, 옷을 밖의 승용차에 나둬라, 처음 충분히 수용 가능해 보였던 요구는 점점 상승되어 가고, 나중엔 심각한 성폭력 사태까지 다다르게 된다.
사실 이 모든 사태는 누군가의 의심 한 번이면 바로 끝장날 상황이었다. “전화번호 남겨주세요. 저희가 전화드릴게요”라든가 “이름과 전화번호, 직책을 말씀해주세요” 정도로만 나왔어도 과연 사태가 이렇게까지 진행될 수 있었을까? 이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특히 피해자인 배키조차 어떻게 고분고분 따르게 되었을까? 바로 권력에 대한 맹종과 굴종이다. 장난전화를 건 가해자는 상대방이 조금 의문을 가지거나, 자신의 전화를 귀찮아 할 때마다, 다름 사람과 비교하며 ‘지금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거나 ‘지금 당신은 경찰 대신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은근슬쩍 권력의 힘을 미끼로 내던진다. 과연 배키의 가방을 조사하고, 옷을 조사하고, 옷을 벗기고, 성폭력을 행사한 모든 이들이 정말 순수하게 이 모든 게 경찰의 요구 때문이라고 믿었을까? 혹시 뭔가 의심스럽고 아닐지도 모른다는 마음의 의혹이 일었지만, 지금 누리고 있는 권력의 탈콤함에 취했던 것은 아닐까? <컴플라이언스>는 말한다. 권력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고.
※ 실제 사건에서 프랜차이즈 매니저의 애인은 성폭력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장난전화를 한 당사자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방면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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