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드 팔마의 귀환... ★★★☆
2007년 <리댁티드>가 개봉하지 않은 관계로 2006년 <블랙 달리아> 이후 처음으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신작을 접하게 되었다. <패션, 위험한 열정>(이하 <패션>)은 알랭 코르노 감독의 유작인 2010년작 <러브 크라임 Crime D'amour>을 리메이크한 것인데, 기본적인 이야기는 동일하다. 직장에서 상사 부하직원인 두 여자의 관계와 복수를 그린 <러브 크라임>은 기본적으로 브라이언 드 팔마가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 바로 변태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소극이다. 직장에서의 권력관계, 이성 및 동성 사이에 미묘하게 느껴지는 쾌락 같은 것들.
일단 캐스팅으로만 보자면, 브라이언 드 팔마의 <패션>은 원작에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와 루디빈 새그니어가 연기한 두 여성 주인공 크리스틴과 이자벨 역을 레이첼 맥아담스와 누미 라파스가, 원작에서 남성 역할이었던 이자벨의 부하직원을 여성으로 바꿈으로써 원작보다 동성애적 코드를 더 강화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과연 누미 라파스가 이런 변태적 느낌의 스릴러에 어울릴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물론 레이첼 맥아담스의 악녀 연기가 조금 더 돋보이고, 여전히 원작의 캐스팅이 더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브라이언 드 팔마의 <패션>은 <팜므 파탈>에 비해선 소품에 가깝긴 하지만, <블랙 달리아>에 살짝 실망을 느꼈던 관객(팬)에게 여전히 브라이언 드 팔마가 죽지 않았음을 확신시키는 영화이며, 특히 피노 도나지오의 음악은 <패션>에 고전적 느낌의 아름다움을 한층 배가시켜준다.
사실, 영화의 중반부까지 <패션>은 도대체 왜 브라이언 드 팔마가 원작을 리메이크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행보를 보여준다. 크리스틴의 악마성이 원작보다 조금 더 강화된 것 말고는 딱히 달라진 지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해도 장면이나 대사가 거의 동일한 지점들도 보인다. 원작과 대동소이하게 흘러가던 영화는 거의 가운데 지점, 이자벨이 드뷔시의 음악을 배경으로 한 제롬 로빈스 안무의 발레 <목신의 오후>를 관람하던 그 시점부터 분할화면, 극단적 클로즈업 등 브라이언 드 팔마의 개성이 폭발한다. 이후 후반부는 단연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이며, 영화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강력한 이미지들을 제공한다.
원작이 모든 걸 공개했던 것과 달리, 브라이언 드 팔마는 중반 이후 가장 핵심적인 사건의 진실을 마지막까지 감춘 채 모호한 색채를 유지한다. 즉, 굳이 원작을 먼저 보지 않는 게 영화적 재미를 위해선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사건의 핵심을 감추고, 모호하게 만들었을까? 단지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 영화는 마지막에 브라이언 드 팔마 표 스릴러 영화의 공식과도 같은 퍼즐 맞추기를 시도한다. 당연히 핵심을 감추고 모호하게 진행한 이유 역시 드 팔마 영화의 색깔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런 시도들은 <팜프 파탈>처럼 강력하진 않지만 그래도 드 팔마 영화의 팬이라면 환호성을 지를만한 귀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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