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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을 억지로 늘린 장편... 숨바꼭질
ldk209 2013-08-23 오후 4:09:17 710   [0]

 

단편을 억지로 늘린 장편... ★★★

 

※ 영화의 주요한 설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숨바꼭질>은 전형적인 도시 괴담을 영화화한 것이다. 그러니 이 걸 가지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얘기는 홍보 차원에선 그러려니 이해하겠지만, 너무 심각해지면 곤란하다. 초인종 옆의 표식은 우유나 신문 배달하시는 분들이 편의상 체크해 놓은 것으로 범죄에 이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표식 자체는 범죄와 하등 관계가 없다(이런 도시괴담이 퍼져나갔을 때에도 ‘초인종 괴담’이었지 ‘숨바꼭질 괴담’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남의 집에 몰래 숨어 산다는 건 전혀 별개의 괴담이다. 게다가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숨어 산다’는 영화의 홍보 문구는 영화의 실제 내용과는 조금 괴리가 있다. 어쨌거나 이 두 가지 별개의 도시괴담을 하나의 범죄로 엮은 게 그다지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튼, 얘기는 이렇다. 고급아파트에서 아내 민지(전미선),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성공한 사업가인 성수(손현주)는 어느 날 형 성철이 실종됐다는 전화를 받는다. 어릴 때 어떤 사건 이후 의절하며 지낸 형에 대한 죄책감이 내재해있던 성수는 형이 살던 낡은 아파트를 찾아갔다가 집집마다 초인종 옆에 이상한 표식이 있으며, 이 표식이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 성별을 의미한다는 걸 알아낸다. 그런데 성수는 아파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주희(문정희)로부터 “형이 제 딸을 그만 훔쳐봤으면 좋겠다”는 경고를 받는다.

 

처음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이 영화의 장점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생각도 해내지 못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 장점이 있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고, 특히 <감기>를 보고 나선, 상대적으로 <숨바꼭질>이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반 농담이다. 이 영화는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초상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구는 많고 땅덩어리가 좁아서인지 유독 땅, 토지, 주택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 부의 대표적 증식상품으로서의 토지. 그래서 일각에선 이 영화를 ‘한국형 부동산 호러’라고 일컫기까지 한다. 이러한 시선은 이 영화의 가해자(?) 입장에서 바라 본 것이다. 대체 왜 초인종 옆에 이상한 표식을 하고 남의 집에 몰래 숨어사는가?

 

그런데, 영화는 대부분 영화 속 피해자(?)로 그려지는 성수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성수의 시선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성수의 극단적인 결벽증으로 인한 개인적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영화엔 노숙자,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동네,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좀 있는 사람들, 중산층의 불편한 감정들이 노골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가게 앞에 나타난 더러운 노숙자가 자신의 집에 침입하는 상상, 빈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의 음침한 분위기, 누구 하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은 없이 모두 범죄자처럼 보이는 그 동네의 사람들.

 

<숨바꼭질>은 이 두 가지 상반된 감정들이 충돌하면서 나름 괜찮은 공포 지점을 만들어내기는 한다. 특히 이 영화의 안타고니스트는 복장부터 행동까지 현실적인 공포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뚜렷한 인장이자 장점이라고나 할까.

 

이런 나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에서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건, 일단 캐릭터의 문제가 컸다. 대체 왜 이 사람들은 당연하게 해야 할 행동들을 하지 않을까? 왜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을까? 충분히 죽일 수 있는 데 왜 죽이지 않는 것일까? 수십 년 의절하며 살던 형에게 왜 갑자기 죄책감과 연민을 표현하는가? 한편, 설명하지 않는 것들, 어쩌면 못하는 것들이 여기저기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왜 범죄자는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것인가? 자신이 살 집도 아닌데. 게다가 범죄자가 굳이 아파트의 모든 집마다 그런 표식을 한 이유도 뚜렷하지 않다. ‘나 범죄 저지를래’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도시괴담을 현실의 범죄와 억지로 연결시키려다 보니 나타나는 무리수들.

 

이런 의문점이야 대게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고, 영화를 보면서 재미없게 느꼈던 건 나름 인상적인 장면들과 설정들이 있음에도 인상적인 지점과 다음의 인상적인 지점까지의 진행이 리듬감 없이 그저 지루하게 흘려보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편집의 문제인지 아니면 연출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 영화에 대한 지적 중에 가장 공감했던 게 바로 ‘40분짜리 단편을 억지로 늘려 장편을 만들었다’는 평가였다.

 

※ 영화의 마지막에 왜 올빼미인지? 뻐꾸기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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