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바다의 비보 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 여기에 덧붙여 항상 연기가 아닌 실제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설경구와 안그럴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웃겨주는 차승원, 그리고 너무나도 어여쁜 송윤아.. 이들이 한데 모여 <광복절 특사>라는 영화를 세간에 알렸다. 이 부분들만 보더라도 <광복절 특사>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은 매우 많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버렸다. 바로 이런 점들이 이 영화에서는 가장 큰 장점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단점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단점이라고...?! 도대체 뭐가 단점일까..
김상진 감독의 첫 번째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무슨 영화지?! 누가 나오지?!" 하며 궁금증을 유발했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그런 관객의 구미에 충분히 응해주었다. 유오성이 연기한 "난 백명이든 천명이든 한놈만 패!!"라고 외치던 무대포를 생각한다면 3년이 지난 지금도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그리고 할리우드 블럭버스터가 매번 장악했던 여름 시즌에 김상진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신라의 달밤>이 개봉되었다. 역시나 이 영화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그늘에 가려 빛을 잃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의 그런 선입견을 조롱하듯 <슈렉>, <툼레이더>, <혹성탈출>, <미이라2>등등을 간단히 물리치며 <엽기적인 그녀>에 이어 그 해 여름시즌 흥행2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김상진 감독의 입지가 완전히 굳어진 지금 배후세력들과 함께 자신의 세 번째 영화 <광복절 특사>를 등장시켰다. 그런데 이번엔 경쟁작이 없다. 기껏해야 장동건을 필두로 제작된 <해안선>정도.. <주유소 습격사건>은 데뷔작이었고, <신라의 달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거대한 산을 뛰어넘었다. 그래서 <광복절 특사>의 ! 흥행성공은 어쩌면 이미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기대를 이번에도 완벽히 충족해 줄 것인가에 달려있다.
영화는 시원한 화채에 둥둥 떠있는 수박 조각처럼 코믹한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가 참으로 감칠맛 나고, 기발하다. 그러나 리얼리티가 없다. 코메디 영화에서 현실성을 찾는 것이 어쩌면 바람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오버로 일관된 내러티브들은 금새 싫증이란 단어를 찾게 만든다. 가장 큰 이유가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화는 마지막까지 웃게 만든다. "분홍색 립스틱"을 부르며 어깨를 살랑살랑 들썩이는 차승원의 모습은 오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도 김상진 감독의 재능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금상첨화이긴 하다.
그리고 설경구는 정말 만인이 인정한 명배우이다. 이번에도 그는 '재필'이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왜 이번에도 설경구를 포진시켰느냐 하는 것이다. 예전에 <쉬리>가 한국영화의 흐름에 르네상스를 이끌만큼 빅히트를 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공로를 인정한 바 있다. 필자가 그때 그 영화를 봤을 때, "최민수를 쓰지 왜 최민식을 썼을까" 하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다. 이유는 그 박무영이라는 인물은 완전히 최민수의 캐릭터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이제와서야 알게된건 그때 정말 최민식이 아닌 최민수를 기용 했었더라면 역시나 최민수였기 때문에 그 역할이 당연히 어울렸을 것이라 생각되어 전국 577만명의 빅히트는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설경구가 아닌, 무명의 배우나 또는 신인 배우를 기용해 '재필'이라는 역을 설경구 같이 완벽히는 못할지라도 최선을 다한 흔적 이상을 보여 관객들에게 "어 저 배우 누구지?! 연기 정말 잘 하네.."라는 칭찬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면 그 효과는 몇 배가되어 <친구>의 기록까지는 못하더라도 <신라의 달밤>의 기록은 물론 <쉬리>의 기록까지 넘볼 수 있었으리라 본다. 어쩌면 제2의 설경구 같은 배우가 등장해 전성기를 떨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안전한 길은 선택한 것이 현재 한국의 힘들고 어려운 영화판에서 입에 풀칠하기에는 더 쉬울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인생은 타이밍의 연속... 이런 스릴 넘치는 모험을 한번쯤 즐기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다.
영화는 또 이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살며시 비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죄수자의 분노가 폭발해 모든 것이 입 밖으로 표출되어 버린다. 그런데 불만스러운 것은 코메디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건 좋지만, 그런 썩어버린 정치인과 교도관들에게 은근슬쩍 손을 들어준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의 말도 소귀에 경 읽히듯 들어주지 않는 그들이 자신의 목숨이 왔다갔다했던 순간이긴 했지만, 끝내 목숨은 구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런 그들이 죄수와의 약속을 지켜 주겠냐는 말이다. 아마도 십중팔구는 언제 자신의 목숨이 풍전등화였냐는 듯 한 귀로는 들었지만, 금새 다른 한 귀로 흘려버렸을 것이다.
어차피 <광복절 특사>는 한편의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를 연출한 감독의 의도대로 완성되어졌고, 코메디 장르의 영화로써는 합격점을 받았겠지만, 시대풍자의 부분에서는 그냥 그럴듯한 냄새만 풍기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비꼬울려면 모든 관객들이 인정하게끔 확실히 꽈버리던가, 아니면 아예 관둬버리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지 이도 저도 아닌 마시기에는 좋지만, 맛으로만 보자면 밍숭맹숭한 숭늉처럼 느껴진 것이 제일로 아쉽고, 너무나도 완벽함을 고수했기에 약간의 거부감 마저 일어나는 것은 김상진 감독 스타일의 영화가 너무 한 방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도망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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