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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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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2 오후 7:2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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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해석하는 시각이 한가지일 수는 없지만 상업적 영화광고에 의해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는 관객의 시각이 가학과 피학의 섹슈얼리티라는 선정적 소재에 고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또한, 데카르트 이후 대단히 합리적인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예술의 성향을 단지 느끼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왜 여주인공은 피아니스트인가?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작가가 적어놓은 기호-악보를 해석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실제로 피아니스트는 작곡가의 의도를 완벽히 해석하여 연주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작곡가의 성향 시대상황 심리상태 등을 연구하고 해석의 기초가 되는 악보를 충실히 따르면서 자신의 음악적 감성을 살려 연주하는 것이 아마 전통적인 의미로서 최선의 연주일 것입니다. 물론 작곡가의 의도에 구애받지 않고 피아니스트 자신의 감성에 따라 연주하는 것도 또 다른 연주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연주의 방법을 이성적이라고 한다면 두번 째의 연주는 감성적이 되겠지요. 영화 피아니스트에서는 전자에 여주인공을 후자에 남주인공을 대입하여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를 읽어가는 첫 번째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2. 왜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에게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에게 끌리게 되는가? 이 문제는 꼭 한가지만으로 해석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로의 외모에서 오는 매력도 있을 것이고, 굳이 이유를 찾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빠뜨리기 쉬운 이유 중 하나는 서로 자신과는 상이함에 끌렸을 거라는 추측입니다. 영화속의 병적으로 무미건조한 성격의 여성입니다.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려하고 제어하려합니다. 이것은 그녀의 연주방법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 데 그녀는 작곡가의 심리상태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작곡가가 의도한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이 최상의 연주라고 믿는 피아니스트입니다. 반면 남주인공은 여느 젊은이들처럼 자유롭고 감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임이 악보에 구애받지 않으려는 연주태도에 잘 나타납니다. 이렇듯 서로에게는 없는 다른 면을 상대에게서 본 두 사람은 그 상이함에 끌리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3. 여주인공의 이단적 성적 취향은 단지 새디즘일까? 이 부분이 상업적으로 잘못 이용되어 영화를 섹스에 관한 영화로 오인되게 하는 부분입니다. 여주인공은 병적일정도로 딸의 정숙함을 강요하는 어머니로 인하여 왜곡된 성적취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대단히 이성적인 여주인공의 성격에 의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자연적인 생리대신 자신이 자해하여 피를 흘립니다. 이 부분을 새디즘적 행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장면을 보면 여주인공은 전혀 성적으로 흥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는 생리를 위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포르노를 보거나 남들의 성관계를 보며 성적으로 흥분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주인공이 자신의 몸을 자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시각적인 자극에 흥분하고 상상 속에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입니다. 시각은 사람의 감각 중 가장 이성적인 감각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주인공은 비정상적인 환경속에서 왜곡된 성적 취향을 가졌지만 그것은 단순한 새디즘이 아닌 성적흥분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여주인공의 독특한 의식구조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성적흥분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인다라는 말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일반적인 성관념에서 성적 흥분은 남녀간의 육체적 접촉에 기인하는 부분이 큽니다. 하지만 영화의 여주인공의 경우 육체적 접촉보다는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어떤 상황 그 자체에서 더 큰 자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주인공에게 단순한 성교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흥분할 만한 자극적 상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변태라고 표현하죠ㅡㅡ;)
4.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갈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영화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갈등장면을 왜? 라는 시각으로 보는 것보다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 라는 시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에게 슈베르트가 의도한대로 슈베르트의 곡을 연주하라고 강요합니다. 남자는 자신의 감성대로 연주하기를 고집합니다. 이성과 감성의 갈등. 이것이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갈등을 요약하는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주인공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적어주고 그대로 따라주기를 바랍니다. 비유하자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적은 악보를 건넵니다. 남자주인공은 거부합니다. 남자주인공이 보기에는 그 악보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대단히 병적인 사랑이며, 또한 자신의 감정을 무시당한다는 모욕감마저 느낍니다. 그는 사랑이라는 음악을 자신의 감성대로 연주하길 희망합니다. 실제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을 할 때에도 같은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누구나 자신이 이해되기를 바라지만 누구도 자신이 아닌 타인을 완전히 이해 할 수 없으며 또, 자신의 감정만을 앞세우는 것은 이기적은 자기위안이며 반대로, 감정이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영화 속에서 감독은 그러한 갈등이 서로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을 그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갈등이 의미하는 바 입니다.
5. 그리고 결말. 이 영화를 성의 이단적 모습에 관심을 두고 본다면 이러한 결말은 참 허무하다고 보여집니다. 한 여자 주인공의 일그러진 성적 취향, 한 남자를 사랑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버림받는다. 3류 비디오 영화와 다를 게 없어집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 영화를 보면 감독의 일관된 의도가 읽혀집니다. 앞서 이야기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대하는 태도 두 가지 중 첫 번째, 악보를 중시하며 작가의 의도대로 연주하는 방법은 그것이 극단적으로 악보에 치중 할 때, 감정이 결여된 메마른 음악이 되어집니다. 반대로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한다면 그것은 자기만족만을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영화 속 여자주인공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하는 대사 속에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음악은 무관심이나 감상에 젖어있는 것이 아니다.’와 같은.. 아마도 음악이라는 말에 사랑이라는 말은 대신 집어넣으면 이 영화의 주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여자가 내보인 자신의 악보를 남자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한 체 악보대로 사랑하라는 여자의 고집에 남자는 심한 모욕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방법을 이야기 한 것일 뿐 실제로 남자를 사랑 했습니다. 남자가 떠나려 하자 그녀는 남자를 붙잡습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감정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남자는 극단적 행동을 저지릅니다. 바로 아무런 감정 없이 악보대로 연주를 하는 것인데, 남자는 여자가 건네준 편지대로 여자를 폭행합니다. 영화의 모든 내용은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하는 행위와 관련이 됩니다. 작곡가와의 단 하나의 의사소통수단인 악보를 놓고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해내고 거기에 동감하고 자신의 감정을 실어서 연주하는 것 하지만 너무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서도 또 감정이 실리지 않아도 안되는 것. 이성과 감성의 조화. 이러한 고민은 남녀간의 사랑, 인간의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똑같은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감독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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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2001, La Pianiste)
제작사 : Le Studio Canal+, Les Films Alain Sarde / 배급사 : (주)블룸즈베리리소시스리미티드
수입사 : (주)블룸즈베리리소시스리미티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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