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감을 표하며... . . . A4용지 4장으로 '반민족 사대신문 조선일보 반대'하고 붙여놓은 내 글을 비웃듯 매일 집 문 앞에는 조선일보가 놓여 있다. 한동안은 펴보지도 않고 버리다가, 요즘은 문화면만 꺼내서 화장실에서 보곤 한다. 14일에 배달된 조선일보에서 위의 김명환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미국인들은 참 좋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1등신문, 할말은 하는 신문, 민족 정론지가 이토록 자신을 변호해주니 말이다.
'심기를 어느 정도 불편하게 할 만한 대목들이 없지 않았다'라든가 ' 한국인들이 보기엔 언짢을 수 있다는 느낌이다'는 식의 교묘한 어법으로 우리 민중들의 분노가 이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듯하다가, 우리를 분노하게 했던 인터넷에 올라왔던 글 중 상당수의 논거가 사실과 다름을 지적하면서,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부터 불확실한 정보에 분노하는 것은 민중들이 너무 민감해져 있는 탓이라고 글을 끝낸다. 그러면서 원래 영화는 허구이라며 교묘히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까지 비춘다.
영화 배급사인 폭스 코리아에서 해야할 변명을 대신해주는 김명환 기자의 노고를 비웃으면서도, 영화에 관해 정확한 정보 없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만 읽고 자초지종도 알아보지 않고 분노하며, 개봉관에 '이빨 뽑고 허리꺾은 뱀'이라도 풀어놔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던 내 자신을 '반성'하였다.
분노하기 전에 한번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인을 통해서 얻은 해적판 007 CD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나의 분노는 몇 십배 몇 백배로 확대되었다.
김 기자는 '서울'이나 '남한'이 영화 속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인터넷에서 '007에서 서울과 남한이 불바다가 된다'고 언급된 것을 보지 못했다. 어제 내내 인터넷을 뒤졌지만 어디에도 서울, 남한 언급은 없었다.
김 기자가 영화안보기 운동의 시발이 되었던 그 인터넷 게시물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스스로 거짓 정보를 흘려놓고, 그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혹시 김명환 기자가 나의 이런 의심이 억울하다면 워낙 그런 행위에 능한 신문사에 다니는 탓을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김명환 기자의 글의 백미는 '낙후된 풍경도 한반도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이다. 영화 종반, 평양에서 뜬 비행기는 남으로 날아오다가 결국 007의 활약(?)에 비무장지대에서 완전 파괴된다. 그러면 한반도 한복판에서 파괴된 비행기가 어디에 추락한단 말인가. 비행기가 모진 목숨 이어가며 500km 이상 날아가 일본, 중국에라도 떨어졌단 말인가. 그런데도 밑에 자막으로 지명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반도라 단정할 수 없다니. 이 정도 되면 우기기 정도를 넘어선다. 인민군을 연기하는 대부분 연기자들이 교포이어서 한국말이 서툰 것으로 '그들을 인민군으로 볼 근거는 없다'하고 말하지 않은 것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그리고, 사원에서의 정사를 보면서 '불교 신자들 눈총 받을 만'하다면서 분노한 민중의 폭을 불교 신자로 줄이고, 그 분노의 본질도 단지 종교적인 것으로 변질시키려 하면서, 불교신자 외에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지만, 나는 분노했다. 분명 나뿐 아닐 것이다. 사원을 단지 나무집, 불상을 단지 돌 조각으로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신들이 믿는 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안에서 엽색행각을 벌인단 말인가.
이것은 신성 모독일 뿐만 아니라 분명 우리의 문화, 생활 양식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데도 기자는 사원이 한국식이 아니라며, 다른 나라 사원에서 정사를 나눈다는 소리를 하는데, 그게 어떻다는 것인가. 그러면 괜찮다는 것인가? 그러면 그러한 모독은 우리에 대한 모독이 아니니 그만이라는 것인가. 게다가, 그 사원의 소재지는 한반도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매번 007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악당의 본거지 바로 옆에서 정사를 하는 것은 007시리즈의 한 공식이다. 오히려 양놈들의 무식한 안목으로, 한국식 사원의 건축양식과 다른 동양 사원의 건축양식을 차별화 하지 못한 채 세트를 짓거나 로케이션을 한 탓일 것이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MASH에서도 발견되는데, 한국전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극중 한국인들은 모두 베트남식 모자를 쓰고 다닌다.
이 영화를 보고 화를 내고 말고는 개인의 몫이다. 김 기자가 이 영화를 '단지 허구의 예술로 보고 즐기'겠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거짓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은 기자의 기본적 직분의 망각이다. 조선일보의 사대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들이 고마워 마지 않는 동맹국의 한 편의 영화의 흥행을 고려해서 억지 논리와 거짓말까지 해대는 기자를 과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이 영화에 대한 논쟁이 단지 한국을 비하했는가 아닌가에 논쟁이 머물고 있다는 것은 슬픈 사실이다.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할리우드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그들은 영화라는 매체로 사람들을 마비시킨다. 영화라는 매체의 오락성에서, 접근 용이성에서, 그 힘은 실로 막강하다. 영화 Top Gun 이후 미국 젊은이들의 해군 장교 지원율이 500% 신장했던 일화는 이 사실을 너무나 확실히 증명한다.
할리우드는 수많은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를 많들며 끊임없이 '정의로운 미국'(?)의 적을 만들어 왔다. 냉전시절에는 주로 그 적의 역할을 소련이 맡아왔으나, 소련의 붕괴 후 할리우드는 과거 영화에서 소련이 차지하고 있던 절대 악의 위치를 대체할 대상을 찾아왔고, 근래 몇년간은 그 역할을 아랍인 테러리스트들이 맡고 있다.
특히 그 영화들에서, 주인공의 위기를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서, 그 테러리스트들은 실제보다 훨씬 악랄하고 잔인하고 강하게 묘사되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최소한의 이성도, 자비심도 없이 아무 잘못 없는(?) 미국을 공격하는 악의 화신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한 영화들에 세뇌된 미국인들은 아랍인들을 실제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라 여기고 그들과의 대화로 문제를 풀 가능성을 무의식중에 부정하고 있다.
지금 미국은 이라크로 확전하려 하고 있고, 미국 내에서도 그 확전이 명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7할 이상이라는 설문 결과를 본 적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인 대부분은 명분 없는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 걸까. 물론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고 9.11도 그중 하나이겠지만, 나는 수년간 할리우드 영화의 세뇌도 그중 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고, 어느 누구도 이런 나의 견해가 틀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시에 의해 북한도 '악의 축'으로 지목당하고 핵 의혹이 제기되어도, 이라크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하려는 것과는 달리, 북한에 대해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대 이라크전만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할리우드가 새로운 적으로 북한을 지목했다. 007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비중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우려할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몇몇 영화에서 북을 적으로 규정했었지만 대부분 소규모의 B급 영화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007 영화의 '북한에 대한 인식'에 대한 영향력은 비교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관중동원능력이 있는 할리우드의 블럭버스터들이 계속 북을 적으로 묘사한다면, 몇 년 뒤 다시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려는 시점이 왔을 때, 그들이 과연 지금처럼 대화를 방법으로 택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김명환 기자는 모르는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무슨 생각으로 미국 영화사 변명을 솔선수범 나서서 하고 있는지, 한심한 노릇이다. '007 어나더 데이'에 '서울'은 없다 (조선일보, 2002.12.13 김명환 기자)
한반도 관련 묘사가 왜곡됐다는 논란 속에, 일부 네티즌들의 ‘영화 안보기’운동의 표적이 되고 있는 대작 외화 ‘007어나더 데이’(31일 개봉)가 13일 국내 배급사인 서울 역삼동 20세기 폭스 시사실에서 처음 공개됐다. 인터넷에선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공개된 필름엔 ‘서울’이나 ‘남한’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대 어느 ‘007’시리즈보다 스케일이 크다는 이번 영화엔 한국인들 심기를 어느 정도 불편하게 할만한 대목들이 없지 않았다. 이번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이 북한의 일당들이다. 영화 초반 25분간의 배경이 북한 땅이다. 북한에서 임무 수행하던 제임스 본드(피어스 브로스넌)가 누군가의 배신으로 붙잡혔다가 간신히 풀려나 홍콩 영국 아이슬란드 등을 종횡무진하며 배신자를 찾는다. “날래 날래 움직이라우”라는 등, 외화론 유례없이 많은 한국어(물론 북한 사투리) 대사가 들린다. 20세기폭스 측은 “북한 전체가 아니라 일부 강경파들을 악으로 그린 것”이란 입장이다. 실제로 북한군 ‘문대령’은 강경파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네가 이러면 강경파 목소리만 더 커진다”며 타이르는 온건파 북한인이다. 그러나 ‘한국어를 쓰는 악당들’을 ‘영국 슈퍼맨’이 제압하는 이 영화는 한국인들이 보기엔 언짢을 수 있다는 느낌이다. 본드와 본드걸이 하필이면 불상(佛像)이 놓인 방에서 정사를 벌이는 대목도 불교 신자들 눈총 받을만하다. 다만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한국식 사원(寺院)은 아니다. 인터넷 상에서 문제가 됐던 ‘소를 몰고 농부가 지나가는 낙후된 풍경’도 본드가 비행기 속에서 위기를 겪다 추락한 곳이니 ‘한반도’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전반적으로 ‘007…’의 한국 관련 묘사는 우리 심기를 건드리는 대목이 없지 않다. 그러나 과거에도 한국을 비하-왜곡한 혐의가 있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해 시민단체 등이 목청 높인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개봉 훨씬 전부터 관객들의 ‘안보기 운동’이 확산된 적은 없었다. 지금 우리는 영화를 단지 허구의 예술로서만 즐기기엔 민감한 시대를 살고 있다. . . . 리플 중에서..
[이영화를 본 싱가폴 남자의 평가]
오늘 제가 아는 싱가폴 남자와 채팅을 하다가 이 영화 얘기가 나왔다. 그는 "007 영화는 봤는데 무지 재미있었다. 하지만 북한을 너무 나쁘게 표현했더라"고 말했다. 이 싱가폴 남자는 중국 한족으로서 한국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는 못하는(남북이 분단되었다는 것 정도만 아는) 30살의 학원강사이다. 즉 이렇게 아시아의 어느 보통 사람이 봐서도 이 정도의 평가가 나온다면 우리 나라 사람이 보면 어떻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차인표씨의 팬은 아니지만 그의 행동에 정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는 연예인이기에 앞서 정말 소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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