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만화 '갓핸드 테루' 에서 야스다 기념병원을 '발할라'라고 부르는데 신들이 거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아무도 모르는데 멋쟁이 기타미 선생님만 바그너 작품 속에 나오는 거라고 알아맞춘다. 그래서 바그너 작품을 꼭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보게 됐다. 물론 이번 시즌 앞부분은 조금 놓쳤지만 Met Opera on Screen을 다 챙겨보리라 마음 먹기도 했고. 이번 공연은 반지의 제왕이 따온 독일 전설과 같은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바그너도 참 대단하다. 거의 30년간 쓴 작품인데 이건 전야제에 불과하다니! 무대장치가 정말 최고다. 어쩐지 시작 전에 메니저가 무대에 45톤 장치를 하기 위해 무대도 보강했다고 자랑하더니. 그리고 와이어의 향연. 나무 판자 같기도 한데 영상에 따라 불도 되고, 물도 되고, 밤하늘도 되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아가면서 지상과 지하의 이동통로가 될 때 와이어의 힘이긴 하지만 마치 카메라를 위에서 지미집으로 찍은 듯한 느낌이었다. 황금투구(라기보다 해리포터의 투명망토 느낌)를 쓰고 용과 두꺼비로 변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무대를 고정바닥과 변동장치로 구분해서 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아래부분까지 활용하는 게 눈이 즐거웠다. 보통 오페라하면 엄중하고 독어나 불어, 이태리어 모르면 못 알아듣는 건데 이번 것은 무대장치부터 곳곳에 웃음 요소가 숨어있어서 좋았다. 반지가 절대권력을 주지만니벨룽의 저주로 주인에게 멸망을 던진다. 보탄은 운명의 소리를 수용해 저주에서 벗어나고 딸을 구한다. 반면 반지를 노린 거인은 동족간 다툼을 하고. 마지막에 우주위 다리를 건너 성에 신들이 들어가자 밤하늘로 바뀌는 것도 재미있었다. 무대 위의 반달도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돼서 굿~ 바그너란 사람이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그의 생애에 기술적, 시대적 한계로 표현하지 못해 답답해 했다는 게 이해가 간다. 불이 지나갈 때마다 빔으로 표현되는 것도 좋았고, 라인강의 처녀들이 노래부를 때 바울이 생기는 컨셉도 좋았다. 독창이 주로 많고 합창은 라인강 처녀들의 노래 정도였지만 그래도 잠깐잠깐의 화음이 굉장히 멋졌다. 분장도 좋았고. 그물을 이용해 황금을 이동시키는 것도 괜찮은 컨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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