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페이지의 동화가 1시간 40분의 영화로 완성되기까지
<폴라 익스프레스>의 제작은 실사 영화의 제작 방식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이미지를 잡아 스크린에 표현하는 방식은 획기적으로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제작 방식은 종래의 방법을 따라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의상의 소재를 고른다든가 각 캐릭터의 헤어스타일을 정하는 문제 등도 그 중 하나였다. 기존의 작업방식과 차이가 있다면 일단 디자인 작업이 끝나서 이미지가 디지털로 컴퓨터에 스캐닝된 뒤에는 실물 대신 디지털로만 모든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기차가 통과할 때 등장하는 산이라든가 숲, 북적대는 산타 마을 등도 미술팀과 효과팀의 머릿속에서 디자인되어 디지털 작업으로 완성된 것들이다.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도 원작 동화책과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 소년의 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스크린 속의 방의 배경은 책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묘사돼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릭 카터와 더그 창은 원작자이자 삽화가인 알스버그의 그림 세계를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알스버그가 태어나고 자란 미시건의 그랜드 래피즈까지 찾아가 그의 집 안팎과 길거리까지 둘러보는 열성을 보였다. 결국, 영화 속 소년의 집은 원작자 알스버그의 어린 시절 집을 모델로 한 것. 디자인 팀이 그 다음으로 들른 곳은 저메키스 감독이 어린 시절을 보낸 시카고 남부 지역이었다. 첫 번째 소년을 태운 기차가 다른 소년을 태우기 위해 두 번째로 정지한 마을의 풍경은 저메키스 감독의 어린 시절 동네를 모델로 한 것이다. 제작진이 원작보다 더 폭넓게 스크린에 표현해야 했던 것은 비쥬얼만이 아니었다. 동화를 영화 길이로 제작하려다 보니 어린 주인공의 모험담도 훨씬 다양하고 다채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었고, 함께 기차에 탑승한 다른 어린 승객들의 얘기도 곁들여야 했다. 물론 이러한 줄거리의 확장은 원작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연장선상에서 이뤄져야 했다.
29쪽짜리 동화를 한편의 영화로 만들기 위해 제작진은 길이를 늘이면서 원작의 컨셉과 주제를 더욱 살리는 쪽으로 방법을 강구했고, 책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이 영화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이 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메키스 감독은 원작을 모든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원작을 기본 틀로 해서 '재창조'보다는 '심화' 혹은 '확장'의 개념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예를 들어 원작 삽화에 나오는 다른 어린이 승객들의 얼굴 중 세 명을 골라 각각에게 어울릴 줄거리를 생각해낸 뒤, '소녀', '외로운 소년', '만물박사' 등의 캐릭터를 붙여줬다. 이 세 캐릭터는 극 전체를 통해 주인공 '소년'과 교류하며 소년이 자아를 찾아나가는 과정에 동참한다.
150개 이상의 광반사 표식장식, 2년 반 동안의 제작기간 퍼포먼스 캡쳐의 작업 방식
퍼포먼스 캡쳐 작업의 핵심은 인간의 감정과 표정을 섬세하고 또렷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들이 입고 연기한 몸에 딱 맞는 다이버 복장 같은 수트에는 광반사 물질로 된 60개의 표식 장치(일명 '보석')가 달려있어서 배우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디지털 카메라에 전달시켜줬다. 카메라가 각 동작들을 3차원 점들의 연결로 기록하면 이것이 가상 세계에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얼굴 표정도 마찬가지. 배우들은 얼굴과 머리에 150개나 되는 광반사 '보석'을 붙이고 표정 연기에 임했다. 눈썹, 속눈썹, 입술, 턱 선, 뺨 등에 빈틈없이 '보석'을 붙이는 데만 매번 2시간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고.
일단 준비 작업이 끝나면 배우들은 아무 세트도 없는 곳에서 마치 연극을 하듯 연기를 했다. 톰 행크스의 말을 빌자면, ‘캐릭터와 공간과 대사밖에 없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연기’였다. 3차원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된 배우들의 연기는 이미 만들어놓은 버추얼 세트 위에 입혀지고 그때부터 캐릭터들은 컴퓨터의 세상 속에서 숨을 쉬게 되는 것이었다. 기존의 영화 제작 방식에서는 촬영이 끝난 뒤 감독이 촬영된 샷을 취사 선택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지만, 퍼포먼스 캡쳐로 촬영한 경우에는 감독이 어느 때고 새로운 시각과 각도로 다시 장면을 구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모든 버츄얼 세트에는 모든 샷과 앵글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편집 작업도 기존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레이아웃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일반 영화 편집하듯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폴라 익스프레스>의 제작 과정은 설명처럼 일사천리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 디자인, 스토리 보드, 편집 등 복합적인 창조작업 과정이 2년 반의 기간 동안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었고 그동안 CGI팀과 기술진은 스캐닝, 레코딩 등의 작업을 진행했다. 랠스턴은 "모든 건, 제작 과정 어느 시점에서든, 자유자재로 바뀔 수 있었다. 그게 실사 영화와의 차이점이었다. 감독은 제작의 모든 단계에 참여했으며, 모든 작업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실험이었다"고 설명한다.
"기존의 영화에선 촬영이 마무리되면 세트를 부수고 의상도 창고로 들어가지만, 이번 영화는 작업 방식이 전혀 달랐다. 제작 기간 동안 우리의 꿈은 늘 현재 진행형이었다" 톰 행크스의 말이다.
한계가 없는 창조의 작업 : 영화 제작의 새로운 미래를 열다!!
퍼포먼스 캡쳐 방식으로 작업을 해본 후 저메키스 감독은 이 새로운 제작방식에 대해 두 가지의 엇갈린 평가를 내린다. 일단, 마치 머릿속에서 상상한 것을 그대로 필름이 찍혀져 나오는 것과 같이 상상력이 허용하는 한 어떤 이미지도 창출 할 수 있기 때문에 감독에게 무한한 재량권이 생긴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선택의 범위가 무한정 하다 보니, 모든 장면을 완벽하게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완벽하게 찍지 못할 어떤 변명거리도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감독의 설명. 감독은 어떤 외적인 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온전히 연기에만 에너지를 집중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배우들도 퍼포먼스 캡쳐 방식으로 연기하면서 자신 못지않게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꼈으리라고 말한다. 배우들이 이 영화를 찍으며 고충을 느꼈던 게 있다면 아마도 마치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안경테를 만진다든가, 옷깃을 바로 잡는 등의 제스쳐를 순전히 상상으로 해야 했기 때문에 극중 캐릭터와 똑같은 의상을 입지 않고 연기를 한다는 점 하나뿐이었을 것이라고.
30년간 영화를 만들어온 저메키스 감독은 이 새로운 영화제작 기법이 새로운 세대의 영화인들에게 폭넓게 수용되리라 진단한다. "이젠 렌즈와 필름 없이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1과 0으로 이뤄지는 디지털의 영역 속에서 모든 것을 무한히 창조해내는 세상이 된 것이다. 관객들이 디지털 극장에서 <폴라 익스프레스>를 보게 된다면, 필름 없는 영화를 보게 되는 것이다. 비디오게임과 인터넷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언어에 영향을 입은 새로운 이미지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앞으로의 영화제작 방식이 될 것이다."
그래도 중요한 건 배우들의 연기
아무리 기술적인 진보가 있다 해도 영화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예나 지금이나 역시 배우들의 연기가 아닐 수 없다. 퍼포먼스 캡쳐 제작 방식에서는 캐릭터의 미묘한 표정 변화나 힐끗 훔쳐보기, 어깨를 움찔하는 동작 등 하나하나가 스크린에 그대로 전달 되기 때문에 그만큼 연기에 깊이가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원래 톰 행크스는 성인 역할 한, 두 개쯤 맡기로 되어 있었으나 퍼포먼스 캡쳐 방식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게 된 감독이 톰 행크스에게 주인공인 '소년'의 역할도 맡을 것을 제의했다. 불가능이 없는 상황에서 톰 행크스 같은 역량 있는 배우를 두고 굳이 8살 배우에게 맡겨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톰 행크스는 영웅 소년, 소년의 아버지, 차장, 신비의 떠돌이 그리고 산타 클로스 등 총 다섯 개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모든 캐릭터는 모두 소년의 내면 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극의 흐름에 비중 있는 의미를 갖고 있다.
톰 행크스와 마찬가지로 모캡 수트를 입고 연기를 한 마이클 제터는 쌍둥이 형제인 기관사 스티머와 화부 스모키 역을 맡았다. 제터는 촬영이 끝난 직후에 사망, 배우들과 제작진을 안타깝게 했다. <폴라 익스프레스>가 그의 유작이 된 셈.
소년과 기찻간에서 친구가 된 '소녀'역에는 <매트릭스> 2, 3편에서 '지' 역을 맡아 이미지상 후보에 올랐던 신예 스타 노나 게이가, 에미상 후보에 여러 번 올랐던 연기파 피터 스콜라리가 불행한 가정에서 성장, 따뜻한 마음씨를 잃어버린 '외로운 소년'의 슬픈 영혼을 맡았다. 성인 배우들이 모여 어린이 배역을 연기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는 게 행크스의 소감. "노나와 에디, 피터와 난 연기하는 동안 어른이라는걸 잠시 잊고 완전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갔다. 촬영 때 우린 그저 기차를 탄 네 명의 꼬마들일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배경의 스케일이었다. 어른이 아이 역을 연기하려면 배경 화면도 그에 맞게 확대해야 했다. 그래서 세트와 소품을 160% 크기로 제작, 어른의 연기가 버츄얼 세트에 입혀 졌을 때 자연스럽게 크기의 비례가 맞도록 만들었다. 실사 연기 때는 크기를 확대한 최소한의 소품을 현장에 갖다 두어 배우들이 위치 등을 식별하는 기준으로 삼게 했다.
북극을 향해 가는 도중, 소년과 새 친구들은 기차의 웨이터들에게 코코아를 나르다가 갑자기 춤추고 노래를 부른다. 코코아가 담긴 쟁반을 머리에 이고 비좁은 객실칸을 종횡무진 누비는 이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무용수들은 토니상 후보에 올랐던 브로드웨이 뮤지컬 안무가 존 카라파에게 안무 교습을 받았다. 이 춤 장면 역시 실사로 촬영한 후, 디지털 작업을 거쳐 버츄얼로 제작된 기차 안 배경 위에 덧입혀졌다.
락 스타 스티븐 타일러, 사운드 트랙 녹음에 참여하다!
<폴라 익스프레스>의 주제가 작곡을 맡은 알란 실베스트리는 5개의 ASCAP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저명한 영화음악가. 그 중 2개는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인 <왓 라이즈 비니스>와 <캐스트 어웨이>로 받은 것이다. 그 외에도 저메키스 감독과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왔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두 사람이 함께 한 11번째 작품. 이번 영화에서의 대표적인 곡은 산타의 요정들이 일년간 쉴 틈 없이 장난감만 만들다가 갑자기 작업을 때려 치고 한바탕 떠들썩하게 파티를 벌이는 장면에서 부르는 'ROCKING ON TOP OF THE WORLD'. 이 곡은 전설적인 락그룹 에어로 스미스의 멤버 스티븐 타일러가 불렀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스튜디오에 온 타일러를 만난 저메키스 감독은 그의 유머와 화끈한 성격에 매료되어 즉석에서 요정 역에 캐스팅하기도 했고 타일러 역시 기꺼이 요정의 연기를 해냈다.
'ROCKING ON TOP OF THE WORLD' 을 비롯, 플리티넘 앨범을 여러 개 발표한 조쉬 그로반이 부른 'BELIEVE' 등 <폴라 익스프레스>에는 컨템퍼러리풍과 클래식풍의 따뜻한 크리스마스 테마곡들이 영화 전편을 통해 관객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아이맥스(IMAX)의 3차원 화면으로 즐기는 <폴라 익스프레스>
<폴라 익스프레스>는 퍼포먼스 캡쳐 방식으로 찍은 첫 영화라는 점도 그렇지만, 3차원 아이맥스 영화관에서도 동시에 개봉된다는 점 또한 영화사적으로 특기할 만 하다. <폴라 익스프레스:AN IMAX 3D EXPERIENCE>는 IMAX 3차원 영화관에서 개봉되는 최초의 장편 극영화다. IMAX 3D DMRtm이라는 혁신적 기법을 이용, 영화의 화면을 3차원으로 변환시킨 뒤 디지털화시켜 IMAX 포맷으로 바꿔 스크린에 띄우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관객들은 눈발이 휘날리는 장면이나 기차가 급정거하는 장면 등을 실제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듯한 사실감을 관객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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