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스포츠 경기보다 더 스릴 넘치는, 철자 맞추기 경연대회
미국의 어린이들을 위한 재미있는 철자 습득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철자 맞추기 경연대회’는 근래에 들어 인기 있는 경쟁종목으로 발전하여, 심지어는 ESPN 채널에서 정기적으로 전국대회를 방송할 정도이다. 이 철자 맞추기 경연대회는 어느새 문화코드와 조우하여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다큐멘터리 <스펠바운드 Spellbound>와 2005년 토니상을 거머쥔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 <The 25th Annual Putnam country Spelling Bee>의 중심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철자 맞추기의 올림픽 경기’라고 알려진 미국의 전국 철자 맞추기 대회는 16세 이하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참가권이 주어지는데, 우승자에게는 1만2천불의 상금을 수여되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행사이다. 약 천만 명의 소년 소녀들이 시•도 대회에서 겨루게 되며, 혹독한 훈련을 거쳐 고도의 집중력과 기억력, 언어 능력을 갖춘 250명의 후보들이 본선에 진출한다. 본선 대회는 메이저 스포츠 챔피언쉽에 버금가는 드라마와 흥분의 도가니이다. 아무것도 없는 무대 위, 각각의 출전자들은 마이크 앞으로 걸어나와 수천 수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웬만한 대학 교수들도 헷갈려 하는 어려운 단어의 철자를 정확히 말해야 한다. 여기에는 단 한번의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시겔 감독은 이에 대해 “격렬함과 서스펜스가 가득하지만 스포츠가 아닌 무언가에 아이들이 경쟁하는 철자 맞추기 경연대회 소재가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
맥기히 감독은 또한 “전국 대회를 참관할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러나, 엘리자가 경험하는 대회에 대한 압박감은 자신의 가족간에 생긴 불화와 아버지가 가르쳐준 신비주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회에서 만난 아이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영화에서 철자 맞추기 대회는 하나의 은유로서, 나우먼 가족에게는 언어 능력이 좋아질수록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섯번째 계절>에서의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
9살 된 딸 엘리자의 천재적인 철자 맞추기 재능을 발견하면서 아버지 사울은 그녀에게 불가사의하면서도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카발라 종교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둘의 관계는 점점 더 가까워지지만, 딸은 결국 정신적으로 위험한 늪에 빠지게 된다. 사울이 딸의 재능이 단순한 암기 수준이나 똑똑한 수준이 아닌, 단어의 핵을 파악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무서운 집착이 시작된다. 엘리자에게 카발라 종교에 대해 가르칠수록, 그는 딸이 오랜 세월 동안 소수의 선지자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초능력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을 갖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일부에게는 유대교의 구두법 (말로 전해지는 법)이라고 알려진 카발라는 우주의 근원과 생명의 의미, 그리고 원인과 결과의 법칙, 우주창조의 근원 연구를 강조한 모세5경을 따르는 신비주의 사상이다. 이것은 2가지의 중요 목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첫째, 신과 하나가 될 것, 둘째, 가정생활에 충실할 것이 그것이다. 사울은 이 둘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언어의 힘, 특히 알파벳 철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카발라는 그들이 단순한 표현을 넘어서 마술적 힘과 신성함을 담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울은 13세기 카발라 학자인 아브라함 아불라피아(Abraham Abulafia)가 정리한 신의 지식에 이르는 초자연적인 상태를 위한 의식을 가르친다. 아불라피아의 철학에는 몇몇의 히브리어 단어를 분해하고 다시 정리하면 특별한 정신적인 힘을 부른다고 적혀있으며, 모든 정신적인 여정이 그렇듯이 그의 종교적 수행도 육체적, 형이상학적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결국 엘리자가 신에게 더 가까이 갈수록, 그녀 자신과 가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사울이 딸을 초자연적인 상태로 밀어 넣고, 그것이 그녀를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 각본을 담당한 질렌할은 “아불리피아식 수행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이가 무리하게 시도할 경우, 퓨즈가 나가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 도 있다는 말도 있다,”고 털어놨다. 또한, “영화에서 사울이 딸에게 신과 직접 이야기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부모들이 자신이 이룰 수 없는 것을 얻고자 때로 자식에게 강제로 무리한 일을 시키는 것을 보여주는 독특한 은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명의 듀오 감독은 카발라 수행이 매혹적으로 생각했지만, 스크린에는 더 큰 스토리 텔링 구조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그 수위를 낮췄다. “이 영화는 카발라 종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좀 더 높은 곳을 다다르기 위한 욕망에 대한 것,”이라고 밝힌 시겔 감독은 “유대교 신비주의의 세부적인 면보다는 어떤 형식의 종교적인 여정이든지 그것을 일반적으로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각도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전했다.
<다섯번째 계절> 등장하는 카발라의 또다른 컨셉은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인 히브리어성구 티쿤 올람 (Tikkun Olam)으로 이것은 엘리자의 행동 변화의 중요 원인이 된다. 3세기에 처음 소개된 이 개념은 카발라의 계율로 발전하여 현재는 유대교에서 강조하는 자선과 정의, 그리고 자비와 연관이 있다. 그러나 감독들은 이것을 하나의 특정 종교를 벗어난 그 무엇으로 보고 있다.
“부서져버린 것들을 다시 고친다는 개념, 개인적인 상황 혹은 사회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어느 종교에 속한 사람이든지 동감하는 이슈,”라고 말하는 맥기히 감독은 “이 영화는 서로에게 다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한 가족의 초상인 동시에, 그들의 삶에 있어서 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이 두 가지가 밀접하게 엮어지는 상황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마주치는 것들이 아닌가 싶다,”고 끝을 맺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퍼펙트 패밀리, 그 이면의 미스테리한 진실...
<다섯번째 계절>의 중심에는 현대 가족 생활의 핵심인 완벽함의 동경이 자리잡고 있다. 존경 받는 중상류층이며 누구보다도 종교적이며 끈끈한 가족관계로 유명한 나우먼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 이보다 더 이상적일 수 없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다른 이들 각각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믿는 ‘초자연적인 것’을 쫓아가며, 결국은 격렬하고 위험한 종교적 경험을 하게 된다. 엘리자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고, 그로 인해 가족들을 묶었던 끈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는데, 그녀는 조각난 가족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건 그녀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의 적절한 해결방법은 자신의 정체성 반환을 요구하는 행동 (신의 부름에 대한 무언의 거부)이거나 신과의 절대적 영적 교신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 영화는 마일라 골드버그의 최근 동명 화제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것으로, 그녀의 소설에는 언어의 힘,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 부모자식 관계의 미묘함, 한 가족의 몰락, 끝없이 타오르는 욕망으로 망가지는 부모들, 또 그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바라보는 아이들 등의 다양한 주제들이 어울려있어 넓은 독차층을 갖고 있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성공과 자신들의 꿈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무서운 이야기”라고 말하는 작가는 “독특한 히로인인 엘리자는 나이 어린 소녀로서 목숨을 건 모험에 빠지지만 결국은 자신을 구하고, 나아가 가족전체를 구하는 인물로 나에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며, 나우먼 가족은 각각의 구성원이 같은 곳에 다다르기를 희망한다고 본다. 서로 다른 여정을 거치지만 엘리자로 인해 그들은 동일한 것에 목말라 했음을 깨닫게 된다,”고 말을 이었다.
각본을 맡은 나오미 질렌할이 숨막히는 철자 맞추기 경연대회의 세계와 사울이 딸 엘리자에게 가르치는 13세기 카발라 종교에 대한 대규모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그녀는 점점 원작자가 창조해낸 인물들을 구체화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다. 결국 감독들은 사울의 직업을 사원의 기도문 선창자에서 종교학 교수로 바꾸고, 이야기의 배경을 펜실베니아 교외에서 캘리포니아 남쪽의 대학 전원도시로 옮겨오는 등의 몇 가지 수정을 하였다. 그러나 각본가는 초기 자신을 이끌었던 원작 안의 심리적 복잡함에 충실하려고 애썼고, 현대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다양한 생각들과 감정들 (자녀 교육, 정신적인 동경, 형제간의 경쟁, 정신병 등)이 스크린에 묻어 나기를 희망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