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에서 세계로 뻗어 나간 <지슬> 만장일치로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 쾌거!! 대한민국 영화역사에 한 획을 긋다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의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은 오멸 감독의 <지슬>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2012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인 후, 평단과 관객 모두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4관왕(넷팩상,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CGV 무비꼴라쥬상)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고, 전 세계 영화제로부터 기분 좋은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거푸 선댄스영화제와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의 대상을 수상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이후 또 한번 한국 영화의 힘을 전 세계에서 빛내고 있다. 이젠 우리에게조차 낯설어 진 제주 4.3을 배경으로 한 <지슬>에 전 세계인이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가 제주 4.3을 정치적인 사상이나 이념, 이데올로기의 성향을 다루기보다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 보다 보편적인 감정을 공감하고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빼어난 미장센과 흡입력 있는 연출력이 더해지며 영화의 감동을 배가 시켰다. 한편 제주 4.3이 미군정의 개입으로 발생했던 일이었던 만큼 <지슬>이 선댄스영화제 출품 확정 후 오멸 감독은 영화가 미국에서 상영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의의를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놀라운 소식이 찾아왔다. 바로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 게다가 심사위원들이 대상을 결정하는 데에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직접 밝혀 더욱 영광스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이라는 영예를 얻은 <지슬>은 이후 보름 만에 프랑스 브졸국제영화제에서도 황금수레바퀴상을 한국영화 최초로 수상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미국과 유럽에 모인 전 세계의 관객들로부터 한국영화의 저력을 당당히 인정받은 것이다. “깊이 있는 서사와 더불어 시적인 이미지까지 <지슬>은 우리 모두를 강렬하게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이었다”(선댄스영화제 심사평), “숨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오멸 감독은 절망에 맞닥뜨린 인간의 삶을 강렬하게 보여준다”(버라이어티), “영화, 연출 모든 영역에 걸친 탁월한 재능”(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심사평) 등 쏟아지는 아낌없는 찬사 속에서 <지슬>은 개봉 전부터 국내외 ‘화제의 영화’이자 ‘2013 올해의 영화’로 회자되고 있다. 또한 제주섬에서 세계로 뻗어나간 <지슬>은 해외 순항을 마치고 마침내 국내 관객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보다 앞선 제주 개봉, 배급역사를 새로 쓰는 파격적 행보! 개봉 당일 CGV제주 전회 매진 사례!!
<뽕똘>, <어이그 저 귓것>, <이어도> 까지 오로지 제주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담아냈던 오멸 감독은 입버릇처럼 “내게 제주는 이야깃거리가 가득 담긴 보물창고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감독의 신작인 <지슬> 역시 제주이야기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만이 가능한 제주 4.3 이야기로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영화는 1948년 제주섬사람들이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미군정 소개령을 듣고 피난길에 오르며 겪었던 혹독한 겨울을 담아낸 작품이다. 허나 그 겨울의 108분은 마냥 춥지만은 않다. 영화는 가장 차가웠던 시절, 눈물 사이에서도 웃음이 오가던 그들의 일상을 시종일관 따뜻한 위로의 시선으로 찬찬히 따라간다. 세상에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제주 4.3의 이야기인 만큼 감독은 <지슬>의 개봉을 제주에서 시작하겠다는 이례적인 결정을 했다. 이는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개봉을 해왔던 지금까지의 관행적인 배급 방식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제주 4.3은 아직 그들의 삶 안에 선명히 살아있는 아픔이기에, 마치 위령제를 드리듯 이름 없이 떠나야 했던 원혼들에게 가장 먼저 영화를 올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감독의 이러한 진심은 관객들에게도 영화와 함께 깊은 여운을 안기며 또한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제주 4.3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따라서 3월 1일 제주에서 먼저 개봉한 <지슬>은 3주 후인 3월 21일에 서울 및 전국 관객과의 공식적인 첫만남을 갖는다. 제주 개봉일인 3월 1일은 제주 4.3의 시발점이 되었던 날짜로, 의미하는 바가 더욱 크다. 감독의 진심에 화답이라도 하듯 <지슬>은 제주 개봉 전 이미 예매로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상영 횟수가 7회에서 11회로 늘어났고, 개봉 당일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 또 한번 전회 매진을 기록하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른 시간부터 매진이 된 나머지 <지슬> 관람을 위해 극장을 찾았다가 되돌아가는 관객들이 많아지자 CGV제주는 급히 밤 시간대에 1회 더 추가해 <지슬>만 총 12회 상영 하는 특단을 내렸다. 극장 관계자는 당일 CGV제주에서 <스토커>, <잭 더 자이언트 킬러> 등을 제치고 <지슬>이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다소 무겁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지슬>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와 더욱 눈길을 끈다.
영화 보러 제주 간다 ‘영화인원정대’ 결성! 각계각층 인사들의 <지슬> 관람 행진!!
또한 <지슬>의 시작이 제주라는 소식을 듣고 한국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저명 인사들이 ‘영화인원정대’라는 이름으로 개봉일인 3월 1일에 맞추어 단체 관람을 하기 위해 일제히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간다는 ‘영화적 사건’까지 낳으며 명실공히 꼭 봐야 할 ‘올해의 한국영화’로서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졌다. ‘영화인원정대’에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위원장을 필두로 국민배우 안성기, 강수연과 함께 영화인협회 이사장인 이춘연 대표, <신기전>의 김유진 감독,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이자 제작사 명필름의 이은 대표, <비트>부터 <타짜>까지 한국대표영화들의 제작자인 차승재 대표, 홍효숙 부산국제영화제 ACF 운영위원장, 강남 최초의 예술전용관 아트나인을 운영하는 엣나인필름의 정상진 대표, 드라마 제작사 ㈜러브레터의 윤순환 대표(제주 엔터테인먼트 모임 고문) 등 현 한국영화계의 얼굴들이 모두 모여 <지슬>을 향한 폭발적인 기대감을 입증했다. 특히 김동호 위원장은 “영화계 대표 인사들이 영화 개봉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서울에서도 거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이 영화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지슬>의 의미를 각인시켰으며, 배우 안성기는 “제주에서 붐을 일으켜야 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앞으로 일반인들에게 역시 많이 보여 지길 바란다. 서울에 집중된 영화문화가 제주에서도 활활 타오르길 바란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외에도 문재인 의원, 우근민 제주도지사, 양성언 제주도교육감, 천주교제주교구 강우일 주교, 제주영상위원회 임원식 부위원장, 돌문화공원 백운철 관장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여 <지슬>을 함께 관람하며 응원에 힘을 보탰다. 이에 오멸 감독은 “아침부터 극장에 와 있었다. 관객이 많이 오면 기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슬픈 기분이 든다. 생전 극장에 오지 않을 것 같은 어르신들이 영화를 보러 오셨다. 이들이 4.3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분들이다. 이 슬픔이 치유가 되고 4.3에 대한 생각이 공유돼야 더 많은 기쁨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더욱 많은 이들이 지속적으로 <지슬>과 제주 4.3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한글자막이 있어 신기하고 재미있는 한국영화! 이제는 제주 청년들에게도 낯선 제주어의 매력!
대한민국 9개의 도가 모두 조금씩 다른 말을 쓴다지만, 그 중에서도 제주 방언은 ‘혼저옵서예’로 유명해 친숙한 듯 해도 사실 구사하기 가장 어려운 언어이기도 하다. 단지 어렵다고 알고 있는 것과 직접 체험해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오멸 감독의 전작인 <뽕똘>과 <어이그 저 귓것>을 보면, 아니 이 중 한 편을 골라 단 5분만 보면 왜 제주방언을 영어, 일본어, 중국어처럼 ‘제주어’라 부를 수 밖에 없는지 몸소 느낄 수 있다. 오멸 감독은 ‘한글자막 없이 볼 수 없는 한국영화’를 만든 국내 최초의 감독일 것이다. 제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았지만, 이제껏 제주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는 작품은 없었다. 오멸 감독의 작품은 물론 후자다. 고맙게도 “언어가 안 되는” 육지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의 모든 영화에는 한글자막이 붙는다. 정말 생경한 언어를 마주하게 되는 경험은 여러모로 새롭고 무척이나 흥미롭다. 외래어가 우리 고유의 말을 대체해가는 시대에 오멸 감독 영화에서 만나는 ‘제주어’에 그 자체로 가장 한국적이며 단어 하나하나마다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실제 제주의 젊은 층도 이제는 ‘제주어’를 낯설게 여긴다고 하니 이 언어와의 만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아직은 제주의 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고향의 말을 들으니 반가웠다”, “모두들 자막을 보고 있는데 나는 안보고도 알아들을 수 있어 괜히 뿌듯했다”는 등 ‘제주어’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드러내곤 한다. 이와 관련해서 오멸 감독 역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감독은 우리들에게는 이게 ‘표준어’이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우리의 ‘표준어’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답한다. 물론 ‘제주어’가 ‘표준어’가 아닌 이들에게는 한국영화를 관람하면서도 자막을 보아야 하는 과정이 처음엔 다소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오멸 감독은 이러한 핸디캡 역시 제주 고유의 정서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감성으로 탈바꿈 시키는 매개체로서 담아내며 오히려 영화의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전 세계를 뒤흔든 화제의 영화 <지슬> 아름다운 섬 제주, 그 섬이 전하는 가슴 시린 이야기
“1948년 11월 미 군정하의 당국은 제주 섬에 소개령을 내렸다. 해안선 5km밖에 있는 모든 사람을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948년 그해 11월 15일, 제주섬의 북서부지역 중산간마을인 안덕면 동광리에 토벌대 군인들이 들이닥쳐,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고, 사흘 뒤 마을을 불태워버린다. 주민들은 토벌대의 공세를 피해 일단 산으로 들어가 숨어서 목숨을 부지해야만 했다. 그렇게 동광리 주변의 무동이왓, 삼밭마을 주민들까지 120여 명이 속칭 ‘큰넓궤’로 알려진 동굴로 숨어든다. ‘큰넓궤’는 제주말로, 말 그대로 크고 넓은 동굴이라는 뜻이다. 현재 세계유산으로 빛나는 제주 천연의 용왕동굴들은 4.3 당시 주민들에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생사의 기로에서 목숨을 부지하게 해준 최고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제주 민예총 박경훈
민간인 학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지슬>은 1948년을 배경으로 미국의 소개령을 피하기 위해 깊은 산 동굴 속으로 피신하는 마을 주민들과 그들을 쫓는 토벌군의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다루고 있다. 영화는 제주 섬 사람들이 왜 빨갱이로 내몰렸는지, 왜 죽어야만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중심은 사람들 안에 있다. 죽음의 시간이 한 걸음씩 다가오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큰넓궤동굴에 옹기종기 모여 소소한 농담과 함께 따뜻한 감자를 나누고, 밤 하늘을 보며 이 시간이 끝날 거라는 희망의 내일을 기다린다. 이들의 가녀린 희망과 바람에 안타까운 탄식과 먹먹한 감정이 가슴속을 가득 메우고, 관객들은 이내 눈시울을 붉히고 만다. 한편, 배고픈 사냥개 마냥 토벌군에 혈안이 된 군인들은 오로지 명령에 의해서, 갓난아이서부터 할머니까지 학살을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살인 병기가 되어야 했던 그들 역시 역사 앞에 희생된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감독은 군인들의 캐릭터에서도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며 끝까지 선악의 구분 없이 양면의 모습을 비추다가도 본질에 있어서는 단호한 어조를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의 울고 웃는 일상을 중심으로 한바탕 마당극이 펼쳐지는 <지슬>은 절제된 연출로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시키기보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여운과 함께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건넨다.
상표의 달리기, 만철이의 사랑이 멈추던 날! 운명은 역사가 되었습니다. 웃음과 깊은 슬픔이 공존하는 영화! <지슬>
감독의 전작인 <뽕똘>, <어이그, 저 귓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독의 영화에는 슬랩스틱부터 시작해 일상성에서 비롯된 특유의 유머 코드가 녹아 있다. <지슬> 역시 자칫 한없이 무거워질 수 있는 아픔을 이야기하지만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아이러니의 유머를 놓치지 않는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심각하고 무겁다는 편견을 말끔히 깨주는 듯 <지슬>은 오히려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한 방식으로 웃음과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말끝 마다 “이 새끼야”를 외치며, 경준을 구박하는 용필아저씨, 틀린 길을 안내하면서도 자신이 끝까지 맞다고 우기는 경준, “나는 총도 피할 수 있을 만큼 달리기가 빠르다며 몰다리(말다리)”를 자랑하는 상표, 오직 돼지 걱정 밖에 없는 원식이 삼촌, 집에 두고 온 노모가 걱정되는 무동이등의 비극과 희극을 오가며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일상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관객들에게 더욱 진하고 아린 여운을 남긴다. 때론 비극과 희극을 넘나들며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 한 마을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이 가혹 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 동굴 안에서 고추를 태운 연기로 군인들을 막아내는 장면에서는 그저 살기 위해서 서로가 적이 되어야만 하는 마을 사람들과 군인들 모두 역사의 희생자일 수 밖에 없는 아픔을 대변하고 있다. 일본의 영화배우 겸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는 2011년 3.11 대지진 이후 “이 지진을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피해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 건 있었다’라는 거다. 2만 가지 죽음에 각각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슈칸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처럼 오멸 감독은 <지슬>을 통해 ‘제주4.3’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갇힌 3만 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준다. 그들이 잃어버렸던 이름을 기억해냄으로써 감독은 헛되이 사라질 뻔 했던 그들 삶에 의미를 다시 불어넣어주며 최상의 씻김굿을 한 셈이다. <지슬>은 이처럼 가장 차가웠던 시절 뜨거운 희망을 나눈 사람들이 내 곁의 가족, 이웃, 친구이었음을 되새긴다. 동시에 제주4.3이 제주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그러니 외면하지 말아주기를 묵직한 어조로 말한다.
신위 神位.신묘 神廟.음복 飮福.소지 燒紙 제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영화! 죽은 자에게는 위로를! 산 자에게는 치유가 되다!
영화 <지슬>은 죽은 자와 산 자를 위한 굿 판을 연상케 한다. 첫 장면부터가 알 수 있듯이 카메라의 앵글은 구름 위 하늘에서부터 마을로 지긋이 내려온다. 마치 원혼들이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듯 한 느낌이 들게 하고, 마루 바닥에 흩어진 제기들은 이 영화가 그들을 위한 위령제라는 눈짓을 준다. 감독이 제주 4.3 당시 이름 없이 돌아가신 분들의 제사를 지낸다는 마음으로 <지슬>을 만들었다고 말했듯이 영화는 제의적 형식을 띈 네 개의 시퀀스로 전개된다. 먼저 ‘신위’(神位-영혼을 모셔 앉히다)는 다시 말해 ‘영혼을 부른다’는 뜻이다. 이때 영화는 1948년 11월로 돌아가 군인들부터 마을주민들까지 모두 현재로 불러온다. 두 번째 ‘신묘’(神廟-영혼이 머무는 곳)의 차례에서는 당시의 삶을 다시금 보여주고 그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핀다. 세 번째 ‘음복’(飮福-영혼(귀신)이 남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영화에서 무동의 어머니가 군인에게 살해당해 돌아가실 때 품었던 감자를 동굴 안의 사람들이 나눠먹는 장면과도 일맥상통한다. 마지막으로 ‘소지’(燒紙-신위를 태우며 드리는 염원)에 이르러 카메라는 무당이 되어 개개인의 사연을 놓치지 않으며 이름 없이 사라져야 했던 무고한 사람들의 넋을 정성스럽게 위로한다. 65년 만에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원한을 조금이나마 씻겨 보내려는 노력이다. 지방지를 태우며 다시 한 사람 한 사람 고이 올려 보냄으로써, 비로소 제사의 시간을 마친다. 이처럼 <지슬>은 죽은 자에게는 위로가 되고, 아직까지도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산 자에게는 치유가 되는 씻김의 영화로서 중간 매개체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로써, 제주 4.3에 대해 몰랐던 관객들은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가슴이 먼저 요동치며 비로소 제주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길고도 깊은 그날의 아픔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때문에 영화가 막을 내리면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듯 먹먹한 여운에 젖어 든 관객들은 누구 하나 쉽사리 극장을 나서지 못할 것이다.
전 세계인들의 소울 푸드이자 당신과 나의 뜨거운 감자 <지슬>
<지슬>은 중의적인 의미로 제주어로 땅의 열매인 ‘감자’를 뜻하며 전 세계적으로 소울 푸드로 통한다. 특히 <지슬>의 제주 섬 사람들이 춥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감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 감자는 사연 곳곳에 중요한 삶의 매개체로 드러난다. 순덕이 부모는 감자를 챙기느라 순덕이를 미처 살피지 못했고, 무동이 불편한 다리 때문에 함께 피신하지 못한 어머니를 모시러 다시 마을로 내렸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불탄 집과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 품 속에 따뜻하게 익은 감자였다. 마지막으로 박상병이 순덕이에게 몰래 감자를 챙겨주려는 장면까지 영화 속 감자는 마치 제주섬을 만들었다는 설문대 할망 신화처럼 어머니로 상징되는 생명의 힘을 전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곡선을 닮은 오름, 물통을 지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군인 정길, 돼지를 삶던 큰 가마솥 안에서 결국 폭력의 삶을 마무리 짓게 되는 김상사 등 <지슬>의 많은 장면은 알고 보면 제주의 여신에 관한 신화를 바탕으로 묘사되어있다.
놀라운 영화적 체험이 시작된다! 매혹적인 흑백 영상미가 영화의 감동을 더하다!
<지슬>의 많은 장면들은 그대로 프린트해서 미술관 벽에 걸어놓아도 손색이 없다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매혹적인 이미지가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도 그럴 것이 오멸 감독은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누구보다 더 제주의 진짜 표정을 잘 읽어낼 줄 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중 하나이기도 한 제주를 흑백으로 담겠다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하여, 먹 색은 하나이지만 감정에 따라 다채로운 색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감독은 그의 전공이 한국화였던 만큼 <지슬> 안에 제주의 아름다움을 가장 동양적으로 담아 냈다. 모두가 제주라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을 떠올리지만, 그 색에 가려진 슬픔을 무채색으로 길어 올리고 싶었던 것이다. “제사 지낼 때 빨간 옷을 입고 갈 수는 없지 않나”라는 감독의 말처럼 <지슬>은 무채색의 옷을 입었지만, 그럼에도 때론 깊고도 기나긴 한을 닮은 검푸른 바다의 색이, 때론 천진한 그들의 삶을 닮은 햇살의 빛이 느껴져 더욱 강렬하고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관객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48년 겨울로의 시간 여행을 떠난 듯 놀랍고도 신비로운 영화적 체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스텝은 필수, 연기는 옵션 멀티 테스킹의 甲갑 자파리 필름
<지슬>의 제작사 자파리 필름은 극단 자파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연극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항상 같은 이야기를 꿈꾸는 이들은 모두 알고 보면 멀티 엔터테이너들! 현장은 늘 일손이 모자라 스텝과 배우의 구분 없이 돕곤 했는데, 그 덕에 자의 반 타의 반 자파리 필름은 모두 1인 2역이 기본이다. 일단 각자 맡은 일을 하다가 틈틈이 연기도 하고, 소품도 챙기고, 제작 일도 거들고, 사람에 따라선 연출도 도우며 진정한 멀티 테스킹의 모범을 보여준다. 궤짝 속 시체 역이 필요할 땐 연출팀이 즉석 섭외되었고, 군인과 주민 역할의 엑스트라를 모으는 데에 애를 먹을 때마다 여지없이 스텝들이 총 동원되었다. 특히 순덕이를 짝사랑하는 역할로 훌륭한 감정연기를 보여준 배우 성민철은 <지슬>의 조감독이기도 하다. 공동체 가족처럼 늘 함께 움직이는 자파리 필름의 끈끈한 애정과 이러한 노력이 아니었으면 <지슬>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 姑김경률 감독을 위한 위령제
영화 시작에 앞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 ‘총 제작지휘 姑김경률 감독’. <끝나지 않은 세월>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리고 제주4.3을 담은 최초의 영화였다. 하지만 척박한 제주의 영화제작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姑김경률 감독은 작업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오멸 감독은 후배들에게 큰 그늘이기도 했던 그의 열정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 열정을 연장할 힘이 필요했다. 피하고 싶었지만 언젠가는 뚫고 지나가야 했던 숙제 같은 일을 오멸 감독은 자신이 끝내 지고 가리라 결심했고, 그래서 나온 작품이 <지슬>이다. 그리고 姑김경률 감독의 못다 피운 뜻을 이어간다는 의미로 <지슬>에는 ‘끝나지 않은 세월2’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에 오멸 감독은 “이 타이틀이 사라지는 날이 와야겠죠” 라는 말을 덧붙인다.
65년 전, 그들과 같은 시간을 숨쉬다 돌문화공원부터 큰넓궤동굴까지 깊은 슬픔이 스며있는 진짜 제주의 모습
01. 곶자왈 & 동백동산
제주도에만 있는 독특한 지형의 숲인 곶자왈은 제주도 방언으로 나무와 덩굴이 마구 엉클어져 자연림을 이루고 있는 곳을 뜻한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 당시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나무들과 사랑스러운 단풍의 모습을 보았다.”고 전했을 정도로 풍요로운 생명력을 지닌 곳이다. 옛날 제주사람들이 곶자왈에서 나무땔감을 구했고 제주 4.3 때는 주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곶자왈에서는 두 번의 구덩이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 초반 처음으로 마을 청년들이 작은 구덩이에 모두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과 중반부 군인을 피해 모두 구덩이 속에 납작 누워있는 장면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무척이나 심각한데 보는 이들에게는 실소를 자아내는 장면으로, 덩치 큰 성인 남자들이 작은 구멍에 꼼짝 못하고 모여있는 모습에 스텝들 모두 웃음을 눌러 참으며 촬영했고, 오멸 감독 마저 이 장면을 핸드폰 사진으로 남겨두었다는 후문이다. 한편 원래 촬영하기로 했던 큰넓궤동굴이 입구가 매우 협소하고 위험해서 고민하던 차에 동백동산 근처에 적당한 동굴을 발견했다. 그러나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진행된 강행군이었다. 누구 하나라도 다칠까 헬멧을 나눠 쓰며 동굴에 들어갔고, 소품인 삶은 감자가 모자라자 이곳 저곳에 부탁해 구해오고, 새벽까지 진행된 촬영에 고단했을 배우들은 힘들다는 내색 한번 없이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고 노래 한 곡씩 부르며 기나긴 대기시간을 버텨냈다. 그리하여 <지슬>의 가장 따뜻한 장면이 탄생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며 그렇게 새해의 첫 촬영을 마무리 했다.
02. 큰넓궤동굴
<지슬> 주요장면의 배경이 되었던 ‘큰넓궤동굴’은 실제 제주4.3 당시 주민들이 소개령을 피해 5~60일 동안 몸을 숨겼던 곳이다. 오멸 감독은 두 번째 동굴 촬영에 들어가던 날 이 공간을 좀 더 이해하고자 했고 그리하여 전 스텝들이 동굴에 모여 눈을 감고 동굴의 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동굴촬영은 감독, 배우, 스텝 모두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큰넓궤동굴 입구는 사람이 엎드린 채 기어가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았고, 칼바위라 불리는 내부를 통과하며 전 스텝의 외투가 모두 찢어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장비를 담요로 둘러 보호하고 썰매로 끌어당겨 어렵게 촬영장소까지 운반했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배우들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영화 후반부에 동굴 속으로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아대는 군인들을 주민들이 불을 피워 연기로 내쫓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가짜 연기를 피울 계획이었는데 배우들이 손수 나서서 고추를 태웠다. 실제로 65년 전, 고추를 태운 연기로 군인들의 토벌을 피했던 일화가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기침을 토해내고 눈물범벅이 된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1948년의 주민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체험을 하며 다른 때보다 더욱 남다른 의미를 느낄 수 있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고생했던 만큼 그날의 장면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영화 속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03. 돌문화공원
제주 특유의 돌문화를 집대성한 돌문화공원은 전통적인 주거환경과 제주만의 아름답고 다채로운 자연의 모습이 담겨 있어 <지슬> 대부분의 촬영이 이곳에서 이뤄졌을 정도로 촬영지로서는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 산간지역에 위치해 있는 돌문화공원의 추위는 같은 제주라 하더라도 다른 곳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매일 아침 마치 전장에 나가는 마음으로 바지를 세 겹씩 입고 온 몸을 핫 팩으로 무장한 채 돌문화공원을 향하곤 했다. 게다가 깊은 산골이라 조명이 없으면 암흑 그 자체가 되곤 했다. 아름다움 이면에는 냉혹한 자연이 있었다. 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도 찾아왔다. 카메라를 고정시킨 후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인서트컷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아무도 건드린 적이 없는 카메라가 혼자 서서히 줌 인을 하고 있었다. 이를 모두들 귀신컷이라 불렀다.
04. 용눈이 오름
오름 역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지형으로 특히 용눈이 오름은 급격한 경사의 여느 오름과 달리 평탄하고 부드럽다. 368개에 이른다는 제주 오름들 중 유일하게 세 개의 분화구를 함께 가진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슬>을 촬영한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그 해의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제주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용눈이 오름 위에도 눈이 하얗게 쌓였고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몇몇 관광객들이 즐거워하며 사진 찍는 모습을 스쳐 지났다. 이곳에서는 군인 상덕과 순덕이의 긴장감 넘치는 대치 장면을 담아냈다. 순덕 역할의 배우 강희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어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긴장을 많이 한 듯 했다. 게다가 표정연기까지 요하는 장면이었는데 초보답지 않게 “잘했어! 표정 연기되네“라는 오멸 감독의 칭찬까지 받으며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용눈이 오름에서 상덕이 순덕에게 총을 겨누는 이 장면은 이후 국내, 해외 포스터로도 쓰일 정도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제주말로 노래하는 배우 양정원이 직접 작사, 작곡한 제주 해녀들의 노래 ‘이어도사나’ 가슴 깊이 파고드는 뭉클한 감동!
오멸 감독의 페르소나라 불리는 배우 양정원의 본업은 사실 ‘제주어로 제주를 노래하는 가수’로 전작 <어이그, 저 귓것>에 이어 <지슬>에서도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선보였다. 바로 영화의 엔딩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와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했던 노래 ‘이어도사나’이다. 제목은 제주민요에서 따온 것이다. 민요 ‘이어도사나’가 해녀들이 바다에 나갈 때 이별 없는 영원한 이상향에 대해 부른 노래인 것처럼, 양정원 표 ‘이어도사나’ 역시 제주의 근원이자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해녀’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영화 <지슬>이 태어난 고향 ‘제주’는 오랫동안 해녀, 어머니의 모습으로 투영되어 왔다. <지슬> 엔딩곡 ‘이어도사나’의 가사가 말해주듯 몸을 띄우는 역할의 ‘테왁’ 하나에 목숨을 의지한 채 매일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했던 어머니의 눈물이 바다를 이루고 그 눈물을 먹으며 자라온 것이 우리들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꿈꾸던 유토피아 같은 곳이 ‘이어도’라는 환상의 섬인 것이다. 그러나 그 섬은 멀고 삶은 고단하다. 경쾌한 멜로디와는 달리 제주라는 드넓고 따뜻한 땅이 품고 있었을 고달픔과 기나긴 슬픔이 배어있는 ‘이어도사나’는 따뜻한 감자를 나눠먹으며 추운 동굴 속에서의 시간을 견디었던 <지슬>의 마을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과도 이어져 뭉클한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 제주4.3으로 이름 없이 사라져간 이들이 되돌아간 곳은 어머니의 땅 제주의 품이기에, 그리고 어쩌면 그곳이 그토록 닿고자 했던 ‘이어도’이기에 먹먹한 울림이 한참 마음에서 가시지 않는다. 한편 ‘이어도사나’는 배우 양정원을 비롯해 출연진들이 함께 불러 의미를 더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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