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잽싸게 앉고 싶은데 체면때문에 자리 양보할 때, 깡패한테 쥐어터지면서도 쪽팔려서 도망 못갈 때, 학교 졸업해도 할일 없을 때,
나도 때론 양아치처럼 살고 싶다! 아무 비전없이, 아무 생각없이, 아무 대책없이.
알고 보면...
영화 [정글쥬스]는 욕설과 농담, 유쾌한 웃음과 잔혹한 폭력이 뒤섞여 새로운 맛을 내는 영화다. 이런 대립적인 요소들의 의도적인 충돌은 기존 장르영화의 관습적인 긴장과 이완의 흐름을 배반한다. 폭력과 범죄가 조장하는 긴장은 가벼운 인물들과 유쾌한 웃음으로 어이없이 무장해제 당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2천만원을 게워내야 하는 빈털터리 철수와 기태, 상당히 심각한 상황인데 그들은 어이없게도 환각제를 만들어 마시고 현금지급기를 통째로 뜯어서 튀려 한다. 부산으로 야반도주한 둘은 사면초가에 몰리는데, 그들의 해결책은 다시 상황을 예측불허의 지경으로 몰고간다. 이런 배반적인 드라마의 흐름은 마치 환각제를 마신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자, 환각제를 마셨으면... 속편하게 즐기면 된다.
몹시 낙천적인 영화
[정글쥬스]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낙천적이다. 마약, 폭력, 갱스터를 다룬 영화는 어두운 밤, 현란한 네온사인, 음습한 뒷골목을 연상케한다. 하지만 [정글쥬스]의 사건은 80%가 한낮에 벌어진다. 이것은 범죄가 꼭 밤에만 일어나냐는 단순한 의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감독이 영화의 인물과 사건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태양'을 썼다는 점이다. 조민호 감독은 보편적인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량리와 양아치의 모습을 어둡게 보지 않는다. 감독은 머리굴려서 살줄 모르는 이들에게서 삶의 에너지를 발견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국의 가장 밑바닥을 그리고 있으나 몹시도 낙천적이고 씩씩하다.
몹시 파워풀 캐릭터!!!
오바가오 양아치 기태와 어리버리 양아치 철수. 장혁과 이범수라는 두 역을 맡으면서 기태와 철수는 파워풀한 힘을 가진다. 오바가오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혁과 절대 오버하지 않고 진지하게 어리버리한 이범수. 이들의 콤비플레이는 한국영화사상 가장 사랑스럽고 유쾌한 양아치 커플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이 두 양아치의 주무기는 생생한 웃음이다. 절대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것들이 아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보통 사람들과 너무도 다른 생각과 문제 해결 방식이 웃음의 주 동력이다. 또한 두 배우들이 쏟아내는 살아있는 대사가 이 영화의 백미다.
빛을 찾아라!
[정글쥬스]의 촬영 스케줄을 좌우하는, 배우보다 더 큰 존재가 있었다. 다름아닌 태양. 이 영화의 전체 컨셉이 바로 빛이었기 때문이다. 범죄는 꼭 밤에만 일어나야 되나? 단 두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낮인 [정글쥬스]. 조민호 감독의 문제제기에 이두만 찰영감독은 적극 동의했다. 원하는 것은 한국에선 찾기 어려울 정도의 밝은 태양과 콘트라스트. 촬영에 들어가면서 그들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촬영 후반부로 접어들고 계절이 바뀌면서, 머리 꼭대기에서 작렬하는 한여름의 태양을 잡아내야 하는데, 고작 하루 두, 세시간 밖에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빛에 대한 조민호 감독과 이두만 촬영감독의 고집은 대단했다. 조금이라도 날씨가 흐리면 아예 촬영에 들어가지 않았고, 맑은 날에도 오전 11시에 촬영을 시작, 2시가 넘어가면 촬영을 접기 일쑤였다. 이 빛을 끌어들인 덕분에 [정글쥬스]는 폭력과 욕설, 배신이라는 어두운 소재로도 두 양아치의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었으며 우리는 갱스터 무비를 환한 빛 가운데서 보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름하여 대낮 갱스터.
청량리에 숨어들다!
청량리에서 촬영을 한다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청량리는 굉장히 폐쇄적이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이댔다간 큰일 나기 십상이다.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청량리나 사창가가 거의 세트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 멕의 방을 제외하곤 세트가 없는 [정글쥬스]의 경우 공간의 문제가 중요했다. [정글쥬스]의 청량리 장면 촬영은 대부분 평택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몇장면을 꼭 청량리에서 찍고 싶다는 감독의 고집에 제작팀은 모험을 감행한다. 테스트하면서 카메라를 숨기고 몰래 들어갔다가 쫓겨나기 몇번. 배우를 데리고 찍기가 가능할까? 골목에 차를 세워놓고 그 위에서 기태와 철수가 하드를 먹는 장면. 배우들은 숨어있다가 촬영이 시작되면 앵글 안으로 뛰어들었다. 스탭은 최소인원만, 카메라는 최대한 멀리 숨어서 찍었다. 다행히 그 장면 촬영은 성공. 하지만 그때만큼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는 배우들의 후일담이다.
변신스토리
[정글쥬스]는 배우들의 변신으로 화제가 되었다. 터프한 이미지의 장혁이 가오잡는 생양아치로 변신하고, 코믹연기의 대명사이자 촌스러운 패션을 선보였던 이범수의 노랑머리 변신, 귀공자 스타일의 대명사 손창민의 무식한 욕쟁이 행동대장 변신이 그것이다. 장혁은 인물 의상을 결정할 때 항상 참여했으며 스타일리스트와 직접 미국에서 옷을 고르는 정성을 보였다. 또한 리허설마다 새로운 걸음걸이, 양아치 행동을 하나씩 준비해 영화에 써먹기도. 한편 이범수는 스스로 철수의 무기는 머리라고 했을 만큼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매일 밖에서 축구하는 천진난만한 철수 역을 위해 몇 개월 동안 썬탠을 했는데, 이것은 야외에서 직접 태운 것이었다. 이유는 야외에서 축구를 하면서 태운 색깔과 기계로 태운 색이 다르다는 것. 이범수의 프로 정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손창민의 변신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눈에 띈다. 머리는 삭발, 이빨에는 금니 분장, 한쪽 팔에는 대형 문신이다. 그는 처음엔 쑥스러워 했으나 머리를 깎으면서 그냥 삭발이 아니라 칼자국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이거 스크린에서 제대로 보일까요? 어때요?" 라고 물어보던 손창민은 촬영기간동안 그 스타일을 하고 있는게 즐거웠다고.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