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26일 개봉)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프랑스의 천재 감독 프랑소와 오종이 말하는 사랑…
2004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상영, 프랑스의 천재 감독 프랑소와 오종의 <5x2>라는 다소 생소한 제목의 이 영화는 두 남녀의 사랑과 이별이라는 오종 감독으로서는 자못 진지하고 대중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순애보적 정서에 대한 오종의 반론은, 그동안의 영화에서 보여줬던 기지 넘치고 장난스러운 상황 묘사나 캐릭터를 통해서가 아닌, 정공법적인 심리묘사와 연기연출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첫눈에 이끌리고 사랑해서 결혼한 마리옹과 질, 그들의 관계는 헤어지는 연인들이 그렇듯 조금씩 어긋난다. 헤어짐의 이유는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일 수 있을 것이며, 배우자의 외도일 수도, 이유 없는 투기에서 시작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 <5x2>에서 프랑소와 오종은 그런 이유는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다. 오종은 그들의 관계를 침범하는 외부적인 사건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 내부의 문제들을 되짚어 보며 그 원인을 찾았다. 이별을 만드는 이유를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정열적이고 뜨겁기만 하던 사랑이 조금씩 차가워지는 순간,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돌이킬 수도 없는 어쩔 수 없는 그 순간이 바로 프랑소와 오종이 표현하려 하는 이별이다. 하지만 오종은 마지막 결론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 노을이 가득한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그들의 첫 만남을 보여주며 그는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게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썸머 드레스> <진실 혹은 대담> <X 2000> 등 재기 발랄한 단편영화들로 유수의 영화제에 진출,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프랑스의 천재 감독 프랑소와 오종은, <스위밍 풀> <8명의 여인들> <크리미널 러버> 등의 장편영화를 통해 그 재능을 확인시키며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세련되고 가장 지적인 영화감독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 <5x2>에서는 특유의 재치나 유머감각에 의존하기보다는 사랑에 대한 좀더 성숙하고 진지한 시선이 담긴 영화를 선보이며 작품 세계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 나가고 있다. 오종 감독이 말하는 사랑과 이별, 우리는 영화 <5x2>에서 매력적이고 독특한 오종의 사랑관이 담긴 영화를 만나게 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다섯 조각의 기억, 역순서의 이야기 전개
영국의 극작가 해롤드 핀터의 희곡 ‘배신’으로부터 힌트를 얻은 이 영화는, 이야기 구조 역시 희곡과 동일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는 마리옹과 질이 이혼하는 도입부를 시작으로 그들의 첫 만남까지 시간을 거스르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처음부터 결말을 던져주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은 관객에게 일종의 서스펜스를 형성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관객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결말(첫 장면)을 초래한 단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헤어짐이라는 결말로부터 시작되는 방법은, 관객에게 ‘사랑’보다는 ‘이별’에, ‘순애보’보다는 ‘현실적인 결론’에 접근하게 만든다. 이렇듯 다섯 가지 분절된 에피소드가 하나의 영화로 모인 <5x2>의 구성은, 프랑소와 오종에게 한 편의 영화 속에 다양한 기법을 녹여내는 시도를 가능하게 했다. 프랑소와 오종은 매 에피소드를 매우 밀도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갔는데, 에피소드마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의 그의 연출력은 과연 단편영화의 스타답게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스스로도 촬영기간 동안, “우리 영화는 베르히만부터 시작해서 끌로드 를르슈처럼 끝나는 그런 영화야!”라는 말을 농담처럼 달고 다니던 프랑소와 오종은 사랑에서 이별까지, 이별에서 사랑까지의 수많은 감정들은 각기 다른 톤으로 그려내는 대담함을 선보였다.
이것이 프랑소와 오종이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가 시도하는 대화는 난해한 유럽 아트영화 속의 메시지도, 고집 센 작가주의 감독의 지루한 설교도 아니었다. 사랑하고 이별을 하게 되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 다섯 가지 에피소드 사이사이의 공간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각자의 경험과 추억을 채워넣게 만들었다. 또한 결말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속에서 관객은 관계에 대한 진실에 더 가까이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가 색다른 형식을 취하였음에도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대중적인 소재가 갖는 힘이 크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의 경계를 드나들며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은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5x2>, 우리는 한층 성숙된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발레리아 브뤼니 테데쉬와 스테판 프레이즈의 완벽한 연기호흡
<5x2>에서의 열연을 통해 2004년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주연배우 발레리아 브뤼니 테데쉬의 연기는 가히 흡입력 있었다. 다섯 가지 에피소드를 넘나들며 환희와 분노, 배신감과 열정, 설레임과 자기연민에 빠진 모습이 담긴 연애사의 파노라마를 그려낸 그녀의 연기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였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입을 것처럼 보이는 유약한 외모 속에는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강렬한 의지가 엿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프랑소와 오종 감독은 그녀의 인상이 주는 아이러니함을 영화 내에서 드러내고자 했다. 쉽게 사랑에 빠지고, 상처를 잘 받지만 소리치고 싶을 때는 거침없이 행동하기도 하는 마리옹의 모습은 시련의 상처를 입은 한 여성의 가장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모습이었다.
질 역을 맡아 발레리아와 완벽한 호흡을 맞추었던 스테판 프레이즈의 연기 역시 돋보인다. 그가 출연한 연극 <야스미나 레자>를 보고 단번에 그의 매력적인 카리스마에 압도당했던 프랑소와 오종은 질 역할로 그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찼었다. 남자다워 보이지만 어딘가가 결여되어 있는 그의 캐릭터는 약한 듯 보이지만 강인한 내면을 가진 발레리아 브뤼니 테데쉬를 만나 더욱 부각되는 효과를 보게 된다. 프랑소와 오종은 캐스팅 당시, 한 명의 배우를 캐스팅하기보다는 그럴 듯하게 어울리는 하나의 커플을 찾으려고 했다. 그만큼 발레리아 브뤼니 테데쉬와 스테판 프레이즈의 연기호흡은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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