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영화 [봉자]의 특별 자정 시사회가 있었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디지털 장편 영화의 첫 상영이라는 점에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영화 [봉자]는 한 변두리 마을 주민의 일상적인 삶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사람들은 이러한 '일상성' 때문에 필름의 예쁘장한 화면보다 솔직하고 거친 화면의 디지털이 오히려 어울린다고 평했다. 관객들이 박감독의 새로운 실험에 손을 들어줌으로서 일단 디지털 카메라로의 작업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서갑숙, 김밥 말기의 달인이 되다
봉자는 김밥 마는 일을 하는 30대 후반의 여자다. 그녀에게 있어 김밥 마는 일은 단순히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늘 다른 세상을 꿈꾸는 봉자에게 김밥 마는 일은 그 세상에 갈 수 있는 신념 같은 것이다. 봉자가 김밥 마는 일을 그 누구보다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서갑숙은 김밥을 잘 만들기 위해 대전의 유명한 주방장에게 특훈을 받았다. 그녀는 극중에서 김밥말기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봉자답게 촬영중 특훈받은 솜씨를 마음껏 발휘했다. 그녀는 이제 못 만드는 김밥이 없다. 태극 무늬 김밥, 사람 무늬 깁밥, 참치 김밥, 샐러드 김밥 등 주문하는 대로 척척 만들어 낸다. 스탭들 말에 의하면 속도뿐만이 아니라 맛도 예술이라고.
놀라움·혼돈·비극의 트리플 섹스씬
영화 [봉자]의 마지막 촬영은 배우들이 가장 부담을 느껴야 했던 노인과의 베드씬 장면이었다. 20년동안 자신을 잊고 살았던 노인에게 섹스를 '선사' 하기로 한 소녀는 모텔로 향한다. 시간이 지나고 소녀에게 집착을 보이기 시작한 봉자는 소녀의 뒤를 몰래 뒤쫓아가다 모텔까지 들어가게 된다. 소녀와 노인과의 섹스를 지켜보던 봉자는 눈물을 보이고, 급기야 소녀를 밀쳐내고 노인과 섹스를 하게 된다. 서갑숙은 봉자의 이 복잡한 심경을 '놀라움, 혼돈, 비극' 이라는 세 단어로 명료하게 설명해냈다. 실제로 그녀는 어린 소녀와 노인의 정사장면을 바라보며 소녀에 대한 애처로움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지켜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한편 신인으로서는 버거운 베드씬을 앞두고 긴장하는 김진아에게 박철수 감독은 "네가 원한다면 감독 자신을 비롯한 스탭 모두가 옷을 벗고 촬영하자" 고 제안했다. 다행히(?) 김진아의 만류로 감독은 옷을 벗지 않고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는 후문이다.
그녀들만의 아름다운 대화
촬영장에서 생긴 감동적인 에피소드 하나. 촬영이 한창 진행중인 어느 날, 봉자의 집으로 한 눈에도 병색이 역력해 보이는 한 여인이 찾아왔다. 얘기를 들은 서갑숙은 하던 촬영을 잠시 미루고 달려 나왔고, 그녀는 서갑숙에게 자신의 이름을 담은 사인을 부탁했다. 이 여인은 6개월 전 인공 심장판막을 이식하는 수술을 마친 터라 목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는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갑숙을 보기 위해 먼길을 찾아온 것. 같은 병을 앓아 수술한 경력이 있는 서갑숙은 같은 병으로 고통받던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 했고 가녀린 여인의 손을 꼭 잡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들은 촬영은 아예 잊어버린 채 서로의 수술자국을 보여주고 만져주며 한참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갑숙은 이 여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은 자기 자신이다. 용기를 가지고 끝까지 이겨내어 건강을 되찾으라" 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옆에 있던 스탭들이 촬영하자며 서갑숙을 부르지 못한 것은 물론, 모두 그 장면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되는 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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