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노트
생의 작의(作意)에 대한 질문
사계절에 비유되는 우리의 삶을 깊은 산속 연못 위에 단아하게 떠 있는 사찰에 살고 있는 스님과 그 주변의 자연을 통해 그려본다.
동자승이 소년이 되고 청년, 중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는, 한 인물의 다섯 단락 인생이야기를, 각 계절의 시작과 끝의 이미지를,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속에 내재하고 변해가는 속성과 숙성의 의미를, 그렇게 순환되고 생성하는 우리의 삶을... 순수 속의 잔인함, 욕망 속의 집착, 살의 속의 고통, 번뇌 속의 해탈을...
기가 육체를 만들고 육체가 단풍처럼 변하고 썩어 이슬로 땅에 스며드는 사람이, 사계절의 반복과 무엇이 다른가?
2001년 1월 미국 선댄스에서 김기덕
- 프로덕션 노트
작가적 비전과 제작합리성을 겸비한 시스템 모색
1. 해외와의 사전제휴를 통한 대안적 제작/배급 방식
[섬]과 [수취인불명]을 계기로 세계적 감독으로 부상한 김기덕 감독의 신작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프로덕션 준비단계부터 독일의 아트하우스 판도라필름이 공동제작사로, 유럽영화시장의 허브 바바리아필름이 배급사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국내 최초로 이루어진 이와 같은 사전 제휴는 해외영화계에 형성된 감독과 작품에 대한 신뢰 덕에 가능했던 것. 또한 역량있는 감독을 하나의 세계적 문화적 브랜드화하는 가능성 모색이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이러한 해외제휴는 최근 홍상수 감독의 신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프랑스 MK2가 참여한 또 하나의 사례로 이어지면서 완성도 높은 작가영화의 제작-배급 방식에 하나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2. 1년에 걸친 촬영기간 : 자연의 4계, 인생의 4계를 담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순제작비 10억의 저예산 영화이지만, 사계절이 모두 담겨야 하는 작품. 이러한 작품의 특성을 고려해 김기덕 감독과 LJ필름은 전작 [해안선]과 이 작품을 동시에 기획하고 제작에 돌입했다. [해안선]을 촬영하기 전인 2002년 5월부터 봄 장면을 찍기 시작해서 [해안선] 촬영 종료 직후인 2002년 8월에 여름 장면을, 2002년 11월에 가을장면을 촬영하고, 2003년 1월에 눈이 오고 얼음이 꽁꽁 언 겨울 장면을 화면에 담은 뒤, 3월 말에 마지막 봄 장면을 촬영함으로써 1년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3. 장인의 손길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메인 세트
저예산 전문의 김기덕 감독이지만, 이 영화에서 인간의 일생을 담는 주공간인 부유하는 암자는 양보할 수 없이 중요한 세트였다. 그래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3억 5천만원이라는 거액이 세트비용으로 책정되었다. 그 장소는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의 산중에 자리잡은 연못 주산지. 3개월에 걸친 기간 동안 전통예술장인들과 미술가 등으로 구성된 미술팀이 공을 들인 끝에 세트가 완성되었다. 약 68평의 바지선을 만들고 그 위에 목조건물을 세운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물위를 부유하는 사찰이 탄생된 것. 국립공원 내 최초의 영화세트이기도 하다. 물살과 바람을 타고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흐르는 사찰은 주위의 비경과 맞물려 환상적이고도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물속에 반쯤 몸을 담근 150년된 왕버들과 능수버들이 운치를 더한다. 주변 자연과 어우러져 마치 선세계에 들어선 듯한 신비함을 자아낸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주산지는 영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과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부상했다. 그러나 자연보존을 위해 6월 철거에 들어갔다. 결국, 주산지의 비경을 이루던 물위 암자의 모습은 영화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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