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1월 1일부터 서울신문에 8개월 간 연재된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소재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인 대학교수 부인이 욕구불만으로 가출하고, 불륜을 저지른다는 설정과 제자 여학생의 교수에 대한 사랑 등이 사회적인 큰 이슈로 떠올랐던 것이다.
당시 '사회의 도덕성'을 문제로 서울대 법대 교수 황산덕과 저자 정비석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해 더욱 유명해 지기도 했다. 소설의 인기를 타고 1956년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는데 한형모가 감독하고 삼성영화사에서 제작한 <자유부인>은 해방 후 멜로 드라마로서는 최초로 큰 선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교수 부인으로 열연한 김정림은 실제로 다방의 마담이기도 해서 더욱 떠들썩하였다. 만주에서 미술학교를 나와 일본 에술대에서 미술을 공부했던 한형모 감독은 일본 동보영화사에서 촬영을 수업 한 정통 영화인으로 외래문화 풍속도의 대표적인 상황연출로 댄스파티와 키스 신을 각별히 신경 써 연출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에 걸쳐 한국영화의 70%이상이 멜로 드라마가 제작되는 멜로물의 전성기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이러한 화제의 여파를 몰아 1957년 유호 각본, 김화랑 연출의 <속 자유부인>이 제작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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