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는 스펙터클 안에서 여전히 '가족애'를 녹여내고 있다. 그가 'E.T'처럼 친근한 우주인이 아닌 위협적인 괴생물체를 영화 안에 등장시킨다 하더라도,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그 위험성을 걸러낸다. 때문에 누가 봐도 <우주전쟁>은 거대 스케일 안에서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H.G. 웰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우주전쟁>에서 지구를 위험에서 구하는 '영웅'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아버지로서 함량미달의 자격만 갖춘 '레이 페리어'(탐 크루즈)가 서서히 진짜 아버지가 되가는 모습에 포커스를 맞춰 현실적인 '영웅'의 이미지를 조명한다. 영화는 외부로부터의 위험 속에서 한 가족이 어떻게 상황마다 분열 또는 합심하는지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오프닝에서 주지되는 제3의 시선은, 인류가 존재하기도 전에 계획된 외계인의 지구멸망 공습을 개인이 어떤 형태로 인지하는가에 관객의 시선이 가게끔 처리해준다. 영화의 도입부분만 봐도 스필버그 감독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칙을 가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단지, 아버지다운 아버지 되기에 '생존'의 문제를 얹혀놔, 매 장면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안정적인 진행방식을 선택한다.
<우주전쟁>은 9.11테러 이후 미국인의 강박증에 관한 스필버그식의 '낙관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외부의 침략을 국가적 차원에서 보기보다 개인의 의지에 따라 변화하는 상황에 영화의 주제를 맞춘 것이다. 일종의 아버지-되기 성장서사로 읽을 수 있는데, '레이'와 아들 로비(저스틴 채트윈) 그리고 어린 딸 레이첼(다코타 패닝)의 갈등을 외계의 침공보다 전면에 배치해 스펙터클의 한계에서 벗어난다. 영화의 스케일은 거대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스펙터클한 이미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도망치는 한 가족의 공포와 갈등 그리고 이해에서 나온다.
'오기빌'(팀 로빈스)의 존재는 외계인의 공격보다 레이 가족의 '생존'문제에 더 직결되어 있다. 맞서는 자와 지키는 자의 갈등은, <우주전쟁> 전반을 이끄는 극의 핵심이다. 아들과 한차례 동일한 문제로 갈등하던 레이에게 외계인을 공격하자는 오기빌의 무모함은 남의 이들의 생존마저도 위협하는 더 큰 내부의 적이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를 통해 미국의 진짜 위험을 내부에서 찾으려든다. 물론, 어떤 짙은 사회성을 내포한 설정이라고는 볼 수 없는 문제다. 단순히 미국인의 공포를 기저로 삼아, 탄탄한 긴장감을 유도했다고 봐야 무방할 듯하다.
즉, 아버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가장 위험한 '미션'을 수행/완수한 '레이'를 빌어 스펙터클하게 포장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