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최민식의 소탈하고 쓸쓸하게 웃는 모습에 마냥 보고 싶었던 [파이란]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도 속속 들려오고 있다. 최민식이 없었다면. 파이란의 평가에 자주 따라붙는 가정이다. 최민식의 연륜이 빚어낸 신들린 연기는 분명 영화를 압도한다. 하지만 이 리뷰에서는 그런 가정은 하지 않기로 하자. 최민식이 선택하고, 강재가 된 이상 최민식이라는 배우 또한 영화의 일부이므로.

한국의 삼류 양아치 강재. 중국에서 온 가난하고 병든 처녀 파이란. 언뜻 아무런 연관도 없어보이는 이들은 위장결혼으로 (다소 작위적으로) 부부가 된다. 하지만 역시 그들은 부부가 된 이후에도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산다. 더욱이 포스터나 카피로 충분히 오해할 만했던 강재와 파이란의 절절한 사랑 따위는 다행히(!)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한 가지, 간과하고 넘어가서는 안 될 그들 사이의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그리움'의 정서이다. 강재가 어느 가게에서 곰곰 들여다보곤 하는 바닷가 풍경, 그것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의 형상화이다. 파이란의 강재(강재는 남편, 즉 가족으로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공동체적 유대감을 상징한다)를 향한 그리움은 강제의 그것과 다분히 닮아있다. 외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강재, 그리고 파이란은 그 치열하고 삭막한 삶을 '그리움'의 정서로 견뎌낸다. 그렇게 그들이 진정 그리워했던 것은, 고향과 가족으로 나타나는, 살과 살이 부대끼고 따뜻한 인정이 흐르는 인간적인 삶이 아니었을까.

강재가 파이란에게 건낸 빨간 스카프는 그들의 그리움을 이어주는 실낱같은 연결고리로서 작용한다. 그래서 파이란은 빨간 스카프를 소중하게 간직한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나부끼던 빨간 스카프는 그들의 절절한 그리움을 대변하듯 너무나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파이란은 강재에게 거울을 건네준다. (정말, 거울을 남긴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당신은 친절한 사람입니다.' 비뚤비뚤 서투르게 써내려간 편지는 이제껏 강재가 잊고 있던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계기, 즉 거울로 작용한다. 바닷가에서, 그의 고향과도 같은 바다 곁에서 강재는 이제까지의 삶을 모두 게우려는 듯 꺼억꺼억 울음을 토해낸다. (사족이지만, 이 장면 정말 압권이다. 최민식의 처절한 연기에 존경을.)

강재와 파이란은 왜 어긋날 수밖에 없었을까.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사진 속의 웃고 있는 강재를 향한 파이란의 그리움은 죽음을 통해서야 그에게 전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리움의 연속. 이것을 통해 감독은 인간이 도달하지 못하고, 영원히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이상을 제시한다. 파이란이 죽음으로써 강재를 구원하고, 강재가 비디오 속의 파이란을 바라보며 죽음으로써 구원받는 장면은 감독의 현실에 대한 절망을 잘 보여준다. 강재가 계속 살았더라면, 그는 분명 자신이 갇힌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므로.

마주치지 못하는 두 사람의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동시에, 더욱 강화시키는 것은 바로 비디오카메라에 담긴 파이란의 모습이다. 강재는 죽기 바로 직전에야 이제껏 사진에만 갇혀 있던 파이란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한다. 항상 직접 마주치지는 못했던 두 사람. 그러나 파이란이 강재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는 가장 직접적이고 생동하는 희망이다. 다시 말하면, 영화는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파이란]은 너무나 뻔하고 고리타분한 신파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자꾸만 감히 그런 생각에 반기를 들고 싶은 것은 이 영화에서 살가운 사람냄새가 풍겨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제시하기 때문이다. 강재를 보면서 초록물고기의 한석규가 떠올랐다면, 그것은 나의 과장된 감상에 지나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