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연휴의 기간이 짧아 영화사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최대 성수기로 불리우는 추석이 짧다 보니, 영화들은 추석 연휴 전에 미리미리 극장을 잡느라 난리 소동을 펼쳤다.
먼저, 올 추석 최고의 흥행작은 <가문의 영광>이 될 전망이다. 지난 주 토요일 개봉한 이 작품은 개봉 3일만에 전국 60만 관객을 동원하며 최고의 오프닝 성적을 기록했다. 이어 <연애소설>, <로드 투 퍼디션>등의 작품이 뒤를 잇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가문의 영광>은 추석 연휴 특수를 누리고 개봉 2주차엔 전국 1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게 될 것이다. '재미있다'라는 입소문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이는 거의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도 되겠다. 한국영화가 잘 된다니 뿌듯하다. 그간 야심차게 준비되었던 영화들이 내내 삐그덕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안도의 한숨이 쏟아질 법도 하다. 미국에서만 1억불이 넘는 수익을 올린 <로드 투 퍼디션>이나 눈부신 특수효과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레인 오브 파이어> 같은 작품들에 쳐지지 않는 위력을 보이고 있는 한국영화들이 자랑스럽다.
<가문의 영광>과 <연애소설>이 잘 되고 있다는 부분으로 위안을 받으려 한다면, 그것 또한 그리 위안 받을 만한 상황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관객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지만, 두 흥행작이 작년 이맘때 소개되었던 <조폭마누라>와 <엽기적인 그녀>를 닮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어쩐지 한국 영화가 발전하기 보단 제자리 걸음 혹은 후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진다. 지난해 봄 <친구>로 시작되었던 조폭 신드롬이 1년을 훌쩍 넘겨 2년 가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영화의 소재가 이제 바닥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아니면 관객들이 식성이 조폭 코미디로 완전히 굳어져 버린 것일까. 조금은 슬퍼졌다고 하나 <연애소설>은 차태현의 이름을 메인 카피에 넣었을 정도로 <엽기적인 그녀>에서 보여진 그의 이미지를 차용하는데 힘을 싣고 있다. 물론 흥행작을 업고 간다는 마케팅 의도는 적중했지만, 실제 영화속에 보여지는 차태현의 이미지는 <엽기적인 그녀>를 그다지 벗어났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어 이 역시도 제자리 걸음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몇 흥행작들이 힘을 실어주고 있어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꽤 높은 수치를 기록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그 수치가 한국영화의 미래를 보장 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조금 갸우뚱 해 진다.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좋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발걸음도 나쁘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보다 다양한 시도와 폭 넓은 관객층의 형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