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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70억 원이 넘는 떼돈에 5년이라는 제작기간은 아무리 그간의 블록버스터들이 영화판을 걱정하는 지사들에 의해 나자빠지는 수모를 겪었다손 치더라도 다시금 우리를 주목하게 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매력 포인트다. 그리고 영화의 감독이 <유령>의 민병천이라는 사실은 그러한 기대감이 믿음으로 나아가게끔 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뭐,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보자면 이렇다. “비쥬얼은 짱!, 하지만 이야기는 열나 짱나!” 또는 “그래도 저 정도 때깔이 어디냐! 우리나라에서” 필자 역시, 아무리 이러한 혹평과 호평이 상투적이라 할지라도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 저 사이 어딘가 쯤에 위치해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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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쥬 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자신이 영향 받은 거장들의 영화 이미지를 빌려 왔으면 그것에 대한 부채감은 당연 창조적인 그 어떤 영감이 빚어낸 독창적 그림으로써 드러나야 됐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내츄럴 시티>에는 그게 부재하다. 매끈하고 장중한 화면빨은 “오우~~대단한데”라는 순간적 감탄사를 받을지언정 가슴을 울리는 지속적 감탄사를 심어주기엔 부족하다.
<내츄럴 시티>의 이야기 역시 석연찮기는 마찬가지다. 수명이 다한 사이보그 리아와 지 맘대로 행동하는 사이보그를 처단하는 특수요원 R의 애정행각은 절절하게 와 닿지 않는다. 감독의 말마따나 “그들이 어떻게 사랑하게 됐는지를 설명해 주지 않아 불만이 생겨 비판을 가하는 것이 아니냐”가 아니다. 사랑을 하게 된 경위를 보여 주는 것이 구차하다고 생각됐다면 최소한 현재 그들이 처한 지난한 3일간의 가슴 시린 먹먹한 감정의 여정이라도 보여줬어야 했다. 막말로 지들 둘 사이에도 감정의 마찰이 일어나지 판에 어떻게 관객이 그들의 운명적 사랑에 공명할 수 있을 거란 말인가?
또한, 리아는 분명 자신을 질책하는 시온(이재은)에게 버럭 화를 낼 줄도 아는 사이보그다. 하지만 그 외엔 절대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지 않는다. “나~~춤추고 싶어”라는 말 외엔 당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속 터질 정도로 깝깝한 스타일로 일관할 뿐이다.
영화 내내 얼굴은 물론이고 몸까지 각 잡고 다니는 노마(윤찬)와 리아를 위해서라면 성질 더러운 놈으로 보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R의 비장미스런 마지막 장면 역시 뜬금없어 보인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왜 뭐땀시 그렇게 대의를 위해서 우정을 위해서 대관절 지 몸을 초개처럼 버리고 비감어린 오케스트라 선율에 맞춰 승부가 뻔한 전장에 뛰어드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오바해서 이야기하자면, 생각하기도 싫은 <2009 로스트 메모리즈>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래도 가슴 찡한 그 무엇이 안 올라오더냐!”의 신이 영롱하게 포개어 질 ‘뻔’했다. 정말 다행이라 아니 할 수 없는 순간이었더랬다.
여튼, 민병천 감독의 <내츄럴 시티>는 분명 이것저것 볼거리도 많고 대중적 흡입력도 지니고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앞썰한 결정적 패착으로 인해 공들여 주조한 이미지는 공허하게 느껴지고 생기 있게 짜여진 액션 신은 일순간을 벗어나면 메마른 동작으로 다가오는 등 <내츄럴 시티>는 수작이 될 수 있었음에도 안타까움이 많이 남는 범작으로 되고 말았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민병천 감독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담아내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적 야심 속에서 상업성이라는 세속적 야심 또한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것이 현실이기에 이 지점에서 그는 많은 얻고 잃었을 것이라 헤아려 진다.
그리고 영화와는 본질적으로 상관없지만 그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이유 하나가 개인적으로 엄존한다. 얼마 전 있었던 감독을 위시로 한 500인 초청 특별 시사회가 바로 그것이다. 필자도 우연하게 참석하게 됐지만 가만 생각해보자. 자신의 영화를 선후배 감독들에게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다는 거, 이거 쉬운 일 아니다. 홍보의 일환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만은 볼 일이 아니다. 그만큼 민병천 감독은 자신의 안목과 능력으로 일궈낸 영화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는 얘기다.
리아처럼 스스로 생명력을 박탈해 자살을 행하는 의지나 모호하기 짝이 없는 감정에 휩싸여 자신의 몸을 무모함에 던지는 R의 뚝심과 같을 리 만무한 민병천 감독의 의지와 뚝심, 아무한테나 있는 거 절대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