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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생충’의 정의다. ‘영화 속의 기생충’에 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나니, 기생충의 정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라 자부하지만, 적어도 내가 본 영화 중에는 기생충을 소재로 한, 아니 기생충을 등장시키기라도 한 영화는 없는 듯하다. 영화에 기생충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 것은 기생충의 삶이 단조롭기 때문일 것이다. 몸 안에 들어앉아서 알만 낳는데 무슨 색다른 게 있겠는가. 영화의 가장 큰 소재 중 하나인 ‘사랑’에 관해서도 기생충은 그다지 내세울 게 없다. 이것저것 다 따져보며 상대를 고르는 사람과는 달리, 기생충은 외모나 성격에 무관하게 관계를 맺으니까. 사마귀처럼 교미 중의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다든지 하는 엽기성이라도 있어야 소재가 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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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에 안 사실이지만, 에일리언 암컷이 알을 낳으면 그 알에서 에일리언의 새끼가 튀어나오는데, 에이리언은 성숙한 개체로 자라기 위해 인간의 몸을 필요로 한다. 발육을 위해 숙주의 몸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에일리언은 기생충의 정의에 부합한다. 기생충과 다른 점은 숙주 바깥으로 나오면서 숙주를 죽인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기생충은 원래 인체 내에서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게 목적이다. 10미터에 달하는 광절열두조충이 별다른 증상 없이 인체 내에 들어앉아 있듯, 기생충으로서는 영양분과 서식처만 보장된다면 굳이 인류를 괴롭힐 마음이 없다. 그들의 목적은 그 안에서 열심히 생식을 해, 자손의 숫자를 늘리는 것뿐이다. 증상을 일으키면 약을 먹든 수술로 끄집어내든, 자신의 서식처가 위협받게 될테니까. 하지만 기생충으로 인해 증상이 생기는 일이 흔하고, 심지어 죽는 일까지 생기는 건 왜일까? 그것은 한 사람 안에 지나치게 많은 기생충이 살 때다. 인체에 무해한 밥도 많이 먹으면 배가 터져 죽을 수 있듯이, 기생충들이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증상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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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밥 한숟갈만 더 먹으면 되잖아!”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기생충을 용납할 마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기생충에 걸리는 걸 일생 일대의 수치로 알고, 심지어 기생충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로 날 멀리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니까. 후진국에 기생충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생충이 많다고 반드시 후진국은 아닐텐데, 우리 정부는 ‘선진조국’을 내세우며 대대적으로 기생충을 소탕했고, 그 결과 기생충 감염률은 크게 떨어졌다. 인구수에 비해 기생충이 지나치게 많았던 옛날에 비해, 기생충의 숫자가 어느 정도 줄어든 작금의 현실은 어쩌면 인간과 기생충이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까? 에일리언은 리플리 일행의 공격으로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지만, 기생충들은 지금도 “난 건강해”라고 외치는 사람의 몸 속에서 웃고 있을 텐데,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평화와 공존에 대한 열망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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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와 스파르가눔을 연결시키는 게 좀 무리인 듯 싶으면, 최근 개봉되는 조폭영화들의 예를 들어보면 어떨까. 아무 일도 안하며 놀고먹는 사람을 우리는 ‘백수’라고 하지만, 간혹, 주로 그들을 비난하고자 할 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 기생충 같은 놈아!”
양식을 축내긴 하지만, 백수는 숙주-부모님-에게 그다지 피해를 입히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이 비유는 옳지 않다. 백수보다는 오히려 조폭이 기생충의 정의에 더 잘 들어맞는다. 조폭들은 생산적인 직장에 종사하지 않고 남의 돈을 뜯어 생활하며, ‘나와바리’를 놓고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때로는 어여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갈등을 빚는 일도 있다. 기생충 역시 건설적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우리 몸 안에서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같이 들어온 기생충들과 다투기도 하며, 암컷을 놓고 싸움질도 한다. 이쯤 되면 영화에 나오는 조폭들과 많이 닮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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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무식: 형님, 윤동주 아십니까? 상두놈이 자꾸 윤동주를 얘기하는데 같잖아 죽겠어요.
계두식(정준호 분): 윤동주? 동동주는 아는데, 윤동주는 새로나온 술이냐? 한병 시켜줘!!
정웅인: 인터넷에다 카페를 하나 만들었는데...
정운택: 그래? 그거 우리 관할이냐?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아무튼 영화 속의 조폭들은 하나같이 무식하고, 머리를 쓰는 법이 없다. 기생충은 무식의 단계를 떠나서 아예 뇌라는 게 없다. 뇌가 없으니 고민도 없고, 그저 영양분과 편안한 서식처만 제공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요즘의 조폭 영화들이 조폭을 미화했느니 어쩌니 말들이 많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의 행태는 기생충과 다를 바가 없다. 성질이 안 좋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생충은 약에 아주 잘 듣는데, 조폭에겐 약도 없다. 대관절 이들에겐 어떤 약이 필요할까?
우좌지간,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고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영화와 기생충에 관해 이야기를 계속 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