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함에 따라 기존에는 생각치도 못했던 다양한 도전이 가능하게 되자 여태까지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프로젝트들이 하나 둘 선보이고 있다. 일단, 자금 운용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지고, 돈을 쓴 만큼 관객들이 몰려 든다는 속설은 이러한 분위기를 부추기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해 <무사>를 비롯해 <화산고>,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예스터데이>등 수십억을 들인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고, 앞으로 <청풍명월>, <튜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원더풀 데이즈> 등의 대작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영화들의 흥행 성적을 돌이켜 보면 썩 만족스럽지 만은 않음을, 영화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금방 눈치를 챌 수 있을 것이다.
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무사>의 경우 서울관객 80만 명 가량을 극장으로 불러 들이며 해외 판권판매 등의 부대수익을 포함해 제작비만을 겨우 회수하는데 성공했으며, 60억을 들인 <화산고>와 80억원 짜리 SF 블록버스터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역시도 겨우 수지타산을 맞추는 선에서 만족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들 영화들은 어쩌면 이 같은 성적에 감사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어 60억원이 넘는 엄청난 제작비로 제작 기간 내내 삐걱거리는 불협화음을 연출했던 <예스터데이>의 경우 전국 관객 40만을 동원하는 선에서, 앞서 밝힌 <아 유 레디>는 다시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로 처참한 몰골로 막을 내려야만 했다.
일단, 이렇게 된 결과는 '크면 좋다'라는 컨셉 아래 제작비를 부풀려 실제보다 '비싼' 영화인냥 포장한 작품들이 돈을 들인 만큼의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자 관객들이 외면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대표적인 예로 무려 45억을 들여 제작한, 한국형 SF 대작이라 자랑했던 <천사몽>의 경우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실 제작비는 25억원 정도 되었다고 하며, <예스터데이>의 경우도 실제로는 45억원이 조금 넘는 제작비가 들었을 뿐이라고 한다. 관객의 눈을 속이며 큰 옷을 입힌다고 해서 그 영화가 훌륭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만큼 큰 오산도 없으리라.
최근 한국영화의 이러한 슬럼프는 또한 허술한 이야기 구조와 안일한 기획을 통해 제대로 된 즐거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꼽을 수 있겠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아 유 레디>를 들 수 있는데,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언어의 묘미와 감미로운 스토리텔링을 구현하며 컬트 팬을 거느리기도 했던 고은님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치하고 산만한 스토리 라인은 과연 연출가의 잘못인지 시나리오 작가의 실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없다. 한국영화 장사가 좀 된다 싶으니까 너도 나도 영화를 만들겠답시고 뛰어 들어 형편 없는 시나리오에 미완의 연출력에 의지해 괴이쩍은 영화들을 자꾸만 만들어 대니 관객들은 질려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이러다가는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이 어느 순간 20% 밑으로 떨어질 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꾸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영화제작을 아예 포기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더욱 걱정된다. 블록버스터도 좋고, 기획영화도 좋다. 다만 함량 미달에 과대 포장한 영화들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무게중심이 확실한 작품들이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객은 언제고 또 움직일 수 있다. 한국 영화를 사랑해 주는 관객들을 무시했다가는 언젠가 된통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인들은 마음 속에 꼭 새겨두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