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랄한 말빨과 편집술, 그리고 가볍지 않은 쇼맨십을 이용한 통쾌한 ‘유머’
● 혀를 내두를 정도의 집요함과 근성으로 무장해 하나의 대상만을 집중 공략하는 무대뽀적인 정신에서 솟구치는 극도의 ‘쾌감’
● 먹고 사느라 바쁜 일상사에 치여 정치적인 사안에 귀차니스트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대중들을 위한 ‘궁금증 해소’
<화씨 9/11>은 이 같은 그의 장기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영화다. 미국이 공포정치를 통해 대중의 심리를 어떤 식으로 옭죄며 지배해 왔는지 화끈하게 까발린 <볼링 포 콜럼바인>에 이어 이번엔 부시의 부도덕함과 띨빵한 행동을 폭로하는 데 마이클 무어는 총력을 기울인다. 따라서 영화의 메시지는 명명백백하다. 올 11월 열릴 미 대선에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부시가 재선에 성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
경찰국가를 자임하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이고 정치가인지 당선되기 직전과 9.11테러가 일어난 직후 그 순간의 이미지들을 초반에 배치하며 하나하나 들추어내기 시작하는 영화는, 부시 가문과 빈 라덴 가문이 얼마나 끈끈하게 유착돼 있고, 추악한 이라크 전쟁이 사실은 부시 행정부와 있는 자들의 협잡에 의한 고도의 사기극임을 강도 높게 뽀록내며 고발한다. 미국을 성찰하는 그 방식은 언제나 그랬듯 공세적이고 선동적이다. 수많은 이미지들을 짜깁기하고 조합해 만든 프로파간다의 몽타주들은 전 세계를 호령하는 부시를 일순간 실없는 코미디언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화씨 9/11>은 마이클 무어의 전작에 비해 그 재미의 강렬함이 덜 하다. 과장된 그의 논리에 쏟아지던 비판을 줄여보자는 의도라 볼 수 있다. 그만큼 부시를 낙선시키는 일이 마이클 무어에게는 절실하고 시급한 문제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또 다르게 구축된 진지전 속에서 이라크 침공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비열한 술수를 좀 더 세밀하고 진지하게 포착하며 그려낸다.
물론, 이 작품이 견지하고 있는 여러 가지 태도가 펼쳐지는 방식에 있어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이들도 있을 게다. 하지만 고 김선일 씨의 죽음과 이라크 파병 문제 등 남의 일이 아니게 된 작금의 상황에 직면한 이상 자신의 진정성을 탑재해 통쾌하면서도 공격적으로 우리에게 날리는 마이클 무어의 강경한 열정의 호소력만큼은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