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옷으로 온몸을 감싼 흡혈귀 가족이 안방을 찾아온 지 벌써 7개월이다. 일본으로 가는 배를 잘못 타 한국에 불시착했다는 이들의 어이상실 좌충우돌 행각 앞에 방바닥 구르기를 수차례, 이제 곧 그들과의 즐겁던 한때와 (잠시지만)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는 아니지만, 아쉽기 그지없다. 가족시트콤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안녕, 프란체스카>와 함께 했던 월요일 밤 11시의 기괴한 즐거움을 당분간 누릴 수 없다니. 이제 월요병은 무슨 수로 견뎌낸단 말인가.
▶ <안녕, 프란체스카>는 특별하다.
<안녕, 프란체스카>는 대단한 보편적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수치적 지표인 시청률에서 20%를 넘겨본 적이 없으며, 늘 10%대에서 오락가락했다. 심상한 일상도 부재했다. 설정이 설정인지라, 이들 가족은 기존의 가족시트콤 등장인물처럼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았다. 일반 시트콤에서 엄마에 해당했을 프란체스카는 집 안 일에 별 관심이 없는 대신 고스톱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모뻘에 해당하는 엘리자베스는 사치가 취미인 허영덩어리다. 큰아들이었을 켠이는 바보인데다 성정체성마저 의심스럽고, 막내딸이었을 소피아는 목소리만 크고 시끄러운 ‘요즘 애들’ 그 자체다. 아빠 역할인 두일은 또 어떤가. 가족과 소통 못하고 돈만 벌어올 뿐인 무능력한 이 시대 가장의 초상이다. 이 암울한 콩가루 집안의 모양새라니. 이만하면 기존의 어떤 시트콤에서도 보지 못한 강력한 개성이다.
▶ 열광적 지지 낳은 기이한 ‘가족시트콤’
일견 우울해 뵈는 이 모든 것은, 그러나 인간 가족이 아니라 수백, 수천년을 살아온 뱀파이어들의 위장 ‘가족놀이’이기에, 즐겁다. 집안 최고의 어른이라는 왕고모 소피아가 절규에 가까운 노래를 부르고, 프란체스카가 도끼를 들고 두일의 뒤를 죽일 듯 쫓아가도 시청자는 폭소를 터뜨린다. 그리고 그것이 <안녕, 프란체스카>가 열광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일탈과 역설이 혼재된 기이한 재미는 그에 매료된 사람들을 점차 TV 앞으로 불러 모았고, 일군의 팬 층을 형성했다. 급기야 코스튬 플레이 대회가 열리고, DVD와 OST 출시계획이 잡히더니, 대한민국 땅에 존재한 적 없던 ‘시즌제’를 정착시켰다. 가히 ‘확장’이라 불릴 만한 성과다.
▶ 가족시트콤의 외연과 내연을 확장하다.
멜로드라마에서 반복되는 다각관계, 호러영화의 각종 공식들이 패러디 되었는가 하면, 연예인의 눈물바다 기자회견, 따뜻한 가족드라마의 판타지도 패러디라는 탈을 쓰고 낱낱이 해체했다. 특히, 이미 설정에서부터 기존 가족관계를 패러디한 이들은 다정한 가족의 포옹 장면 앞에 “이런 거 너무 싫어” 따위의 대사를 얹어줌으로써 현실적으로 살갑지 않은 가족관계를 은유했는가 하면, 보험금을 위해 가족을 살해하는 냉혹한 현실의 이야기도 구겨진 식판 한 장을 빌어 웃음 속에 담아냈다. “합성이야”, “대략 즐 쳐드셈” 따위의 가상세계의 언어가 현실의 물 위로 올라온 것도 <안녕, 프란체스카>가 처음이었다.
▶ 권위의 해체가 주는 순수한 즐거움
최근 핑크레이디(이수나)를 두고 아웅다웅하고 있는 두 디자이너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의 이름과 직업을 그대로 쓰되 철딱서니 없는 행각을 반복해 보여주고 있는 두 디자이너 캐릭터는 현실에서 쌓았던 두 사람의 권위를 뿌리부터 해체시키고 있다. 기존의 것들을 해체함으로써 더 많은 재미를 아우르고 낳는 것, 바로 이것이 프란체스카 일당에 열광해 마지않는 또 다른 이유인 것이다.
▶ 피의 아들, 딸들이 바라는 것
<두근두근 체인지>에서 시작된 ‘노도철’-‘신정구’ 콤비의 두 번째 도전은 성공적 성과와 함께 막을 내릴 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안방으로 찾아든 흡혈귀 가족들은 숨어있던 수많은 ‘피의 아들과 딸’들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으며, 새로이 더 많은 혈족들을 낳았다. 비주류 문화였던 패러디와 장르를 넘나드는 혼성모방에 열광할 수 있는 자들에게 열광할 ‘꺼리’를 주었다는 점에서 <안녕, 프란체스카>가 일군 성과는 각별하다. 물론 패러디를 위한 패러디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전 같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지만, 각별한 개성만으로도 시장성을 일구어내고,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는 점은 괄목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제 검증받은 시장성을 바탕으로 오는 9월, 새로운 프로듀서, 작가 라인의 위용을 갖추고 프란체스카 일당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부디 그들이 계속 비일상적이고 비정형적인 모습 그대로이기를. 아마도 피의 아들, 딸들이 바라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그것일 게다.
피의 아들을 실제로 만나서 반갑기 그지없다. <안녕 프란체스카>의 시즌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두일’이가 흡혈귀가 됐는지 다들 몹시도 궁금해 한다.(이 인터뷰는 시즌2의 종영방송 3주전에 했음을 밝혀둡니다)
보름정도만 기다리면 다 알게 되니 쬐끔만 참아주시라. 아직까지는 비밀이다
프란체스카를 만든 노도철 PD를 포함한 연출진이 시즌3에는 참가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두일씨의 시즌3 출연여부는?
(주위 눈치를 보면서) 그것도 비밀로 해달라고...
이런 내가 프란체스카 팀의 심장부를 건드리는 예리한 질문을 두 개나 던지다니.. 뭐 비밀이라고 하니 더 이상 묻지 않겠다. 노도철 PD와 친분이 두터운 걸로 알고 있다.
내가 <환상여행>이라는 프로에 1년 6개월 정도 출연한 적이 있다. 노도철 PD가 <환상여행> 조연출이었다. 그 당시 연출을 맡고 있던 분은 김정옥 PD이었는데, <안녕 프란체스카>의 판을 두 사람이 먼저 다 짜놓은 후, 하자고 해서 아무 의심 없이 참여를 결정했다. 워낙에 다들 좋은 분들이라 다시 한 번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실제 이두일씨의 이름을 차용한 ‘두일’이는 무자게 착하기만 한 남자다. 연기함에 있어 캐릭터 접근 방법은?
억지로 내 스스로 만들기보다, 대본과 연출방향이 제시한대로 연기하려고 애썼다.
‘두일’이는 배우 이두일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 캐릭터인가?
어느 정도는 그렇다. 외모적으로 내 인상이 주는 선한 이미지를 성격적으로 이용한 인물이 ‘두일’이다. 하지만 작품 속의 ‘두일’이를 객관적으로 보자면 답답한 구석이 있다. 영악한 구석이 없는 캐릭터여서 매일 손해만 보고...(하하) 현실에서는 ‘두일’이처럼 살면 정말 안 된다.
상대역으로 분한 심혜진(프란체스카 역)씨와는 인연이 꽤 깊다. 영화<세상 밖으로>(여균동 감독/1994년)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더라.
(웃음) 맞다. 그 때 같이 출연한 경험이 있다. 내 캐릭터는 얻어맞거나 발가벗은 채 나무에 매달리던 역할이었다.(웃음)
어느 모 시상식에서 <안녕 프란체스카> 출연자들이 환상적인 팀워크를 보여줬다.
모두 다 추울 때부터 동고동락한 사이여서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같이 일한다.
이두일은 어느 날 갑자기 <안녕 프란체스카>로 존재하게 된 배우가 아니다. 오랜 무명생활을 견뎌낼 만큼, ‘연기’란 당신에게 뭔가?
많은 연기자들이 능동적으로 자신을 마케팅 하는 시대인데 난 아직 사용되어지는 입장이다.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매체에 관계없이 나한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연기라는 게 나한테 있어서만큼은 사는 방법이자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내가 연기를 택했고 연기가 나를 택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