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 좀비 영화와 B급 호러영화의 매니아라는 점을 분명 아니 명확하게 밝힌다. <비욘드>나 <리에니메이터(좀비오)> 같은 국가와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일명 B급 호러라 일컬어지는 영화들을 즐기는 편이다. 본 기자가 이런 영화들을 좋아하는 것은 잔혹함이나 가학적인 장면들 때문이 아니다. 바로 잔혹함 속에 숨어있는 은유적이고 때론 직설적인 사회성 짙은 비유와 딴지 때문이다.
우선 <랜드 오브 데드>를 말하려면 바로 1년 전 개봉해 주목 받았던 <새벽의 저주>를 그냥 스쳐 지나갈 수는 없다. 극장에서 처음 보던 그날을 잊지 못하는 영화 중 한 편이다. 흔한 공포 영화들이 판을 치던 시대가 지속되어 공포 영화에 대한 기대감마저 실종되어가던 때 만난 <새벽의 저주>는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뭐랄까 매일 밤 기도를 열심히 하던 사람이 그 분을 영접한 마음이랄까? 아무튼 그런 심정이었다. 빠른 비트 속에서 나오는 좀비들의 질주는 아드레날린을 뿜어져 나오게 하기 충분했다.
옆 집 아이에게 목을 물리던 주인공의 남편이 등장하는 오프닝 장면은 잊히지 않는다. 여리디 여린 여자아이가 물어뜯던 목에서 떨어지는 찐득한 살점과 선혈은 상큼한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사실 B급 영화의 정의나 기준을 나누기는 분명하지 않다. 단지 그 정서를 논하는 정도의 수준이 다일 것이다. 그나마도 비주류적이거나 혹은 사회 비판적인 정서를 가진 정도로만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본 기자 B급 정서에 대해 관객의 몫이라고 말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관객 스스로가 그 정서가 주류적이지 않다고 느끼면 그것이 바로 B급 정서다.
좀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이야기는 주술에 대한 것이다. 부두교의 한가지로 죽은 사람을 주술의 약재를 이용해 잠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두교에서의 좀비는 움직인다고 하기보다 약간의 반응을 보이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영화 속에 나타나는 좀비는 그런 류의 문제는 아니다. <레지던트 이블>처럼 바이러스에 의한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다른 것은 종교적으로 최후의 신의 심판이라는 말도 있다. 어떤 것이 옳은지는 결코 알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설명하는 글을 읽는다면 좀비영화가 말하려는 정서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될 것이다.
<새벽의 저주>가 대중을 위한 좀비영화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주류 영화적인 컨셉을 가지고 갔다면 <랜드 오브 데드>는 자신의 본연의 임무인 비주류적 정서를 많이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조지 A.로메로 감독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조지 A.로메로 감독의 좀비 시리즈 영화 속 설정들을 통해 우리의 삶과 결부시켜 좀비 영화의 사회 비꼬기, B급 정서에 대해 말해 본다.
● 천천히 걷는다.
좀비가 천천히 걷는 것은 획일화된 사회의 무기력한 인간들의 모습이다. 좀비 영화의 특징은 일반인들은 어느 분야든 확고한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 <랜드 오브 데드>에서도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나오지만 너무 자신의 삶을 즐기거나 너무나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 삶의 질도 부자와 가난한자의 대립으로 나뉜다. 그 안에서 두 부류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에 만족을 못한다는 것. 그들의 마음 속 즉 우리의 마음속은 무기력함으로 가득 차있다.
● 생각이 없으며 머리에 총을 맞아야 죽는다.
우리나라의 은어 중에 ‘머릿속에 든 게 없냐?’라는 말을 한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그런 식의 표현을 많이 하는데 이것은 미국이나 외국도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로 좀비들은 생각을 못하는 존재로 표현이 되고 있다. 그런 그들을 죽이는 방법으로 머리에 총을 쏘는 것은 정치인들이나 사회의 악인들이 팔이나 다리 즉 주변 잡기를 건드려도 다시 일어난다는 것으로 머리를 쏴서 제대로 죽여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다.
● 먹힌 사람은 다시 좀비가 된다.
사회의 악 혹은 부패란 전염성이 강하고 돌이키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화 속에서 보면 항상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이 나오고 그 사람은 자신의 잔꾀에 결국 좀비가 되어 주인공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을 한다.
● 좀비들을 처치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엔딩장면이 바로 사람들이 좀비를 사냥하고 잡아온 죽은 좀비들을 불에 태우는 것이다. 그 장면에서 좀비와 인간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생각 없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좀비보다 사람이 더욱 무섭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좀비영화가 주는 가장 큰 주된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잊는다.
좀비들은 죽었다 그러나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것은 좀비를 다른 하나의 개체 혹은 인격체로 인정을 하는 부분으로 우리사회에서 팽배해져 있는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인정에 대한 부분이다. 미국으로만 본다면 인종차별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지역으로 본다면 종교나 이념 등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본다면 유교적 사상에 의한 다름에 대한 편견을 말한다.
● 좀비가 왜 생겨나는지 이유는 밝혀 지지 않는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 했지만 조지 A.로메로 감독의 영화에서는 존재 그 자체로만 생각을 하지 생겨난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다소 쌩뚱 맞은 비유일지 몰라도 ‘성선설’과 ‘성악설’을 비유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악이 먼저 선이 먼저처럼 좀비가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 알 수도 없는 것이고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의미 있는 설정으로 전혀 친절하지 않은 전형적인 B급 정서의 모습이다.
● 전 세계적으로 발생이 되고 사람들은 어딘가 숨을 곳이 있을 줄 안다.
대부분 좀비 영화나 공포영화는 특정 장소나 특정 시점에 국한되어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시리즈는 사건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난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세계화의 모습 그리고 유럽 연합의 세계 병합화의 선견지명이고 종교적인 의미로는 지구의 멸망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사회의 규범이나 사상들이 통합되고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사상이 전 세계로 퍼져간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된다. 즉 아무리 개성이 강하거나 그 안에서 자유와 합리화를 외치지만 그 모든 것 또한 공통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 익숙해진 우리의 사회의 틀을 벗어 날 수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너무나 많은 사회적 의미와 생각들이 조지 A.로메로의 좀비 시리즈에는 들어있다. 나머지는 <랜드 오브 데드>를 통해 관객 스스로 찾아보기 바란다. 이렇게 갑자기 끝내는 거? 이게 B급 정서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