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은 단지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유용한 생활 도구 정도로 생각하면 매우 편하다.” 라는 말이 잔인하게 들리는가?
가끔 전화를 받지 않고 잠적하며, 남자들끼리의 자존심을 겨루는 유치한 내기를 한다던 지, 길을 몰라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는 것 등등. 오죽하면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거라고 가정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는가를 다시금 유쾌하게 증명해 주는 영화가 개봉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보다 더 스위트한 미소를 날리며 찍은 모CF으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드류 베리모어를 보고 이제 더 이상 ET의 깜찍한 소녀나 아이비(IVY)의 악녀를 떠올린다면 당신은 분명 영화계의 ‘복학생’임이 분명하다.
싱글 여성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이런 남자 조심해라!’항목에 그 어느 것 하나 포함 되지 않는 벤(지미 펄론)은 성공한 커리어 우먼 린지(드류 베리모어 분)에게 완벽한 남자다. 그가 보스턴 레드삭스 팬이란 걸 알기 전까진. 쿨 한 린지는 자신도 승진을 위해 일에 매진해야 한다면서 야구광 팬인 그를 이해한다. 자신이 바쁠 때 야구가 그를 즐겁게 해 줄거라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가 그냥 야구 팬이 아니라 야구’광’팬임을 눈치 채지 못한 린지는 영화의 카피대로 ‘차라리 바람둥이였으면..’이해될 상황들이 벌어지고 야구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극에 달하는가 싶더니 이해심 많은 그녀도 점차 벤처람 보스톤 레드삭스 팬이 돼버리며 뻔한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깨트린다.
그러나 이 영화를 야구 영화로 보기엔 영화 속 소재가 ‘야구’일 뿐 사랑과 일을 동시에 쟁취하려는 현대여성의 심리와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느 순간 애처럼 돌변하는 남자들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성장 영화라고 봐야겠다. 이 영화의 원작 <피버 피치>가 남자의 성장기를 다룬 <어바웃 어 보이>의 원작자 닉 혼비의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상을 관조하는 듯 하면서 내적으로 성장하는 유쾌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눈에 띄는 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덤 앤 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등을 연출한 패럴리 형제고 실제로도 레드삭스의 광 팬이란 사실이다. 뻔뻔하지만 그로 인해 즐거운 화장실 유머의 대가 패럴리 형제는 다시 한번 우리를 ‘재미’로 감동 시키고 있다. 게다가 영화를 찍었던 2004년 월드시리즈는 마침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86년 만에 월드시리즈를 제패했던 역사적인 사건을 직접 담고 있어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야구의 팬이 아니더라도 역사를 뒤바꿀만한 현장의 분위기를 간접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즐거운 일이니 스포츠를 둘러싼 남녀의 유쾌한 시각차이에 즐겁게 동참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