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사극<황산벌>을 시작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까지 이준익 감독의 화두는 언제나 ‘두 남자’였다. 계백과 김유신의 대립, 공길과 장생의 사랑처럼 유독 남자들간의 애증과 우정을 실감나게 다뤄온 그가 2006년 들고 온 새로운 이야기는 현재에 머물러있으나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소통하며, 과거를 잊지 못하는 남자들이다. 왕년의 가수 최곤(박중훈)과 매니저 박민수(안성기)는 20년간 동고동락해온 사이지만 여전히 자기가 최고라고 믿는 ‘곤’의 철없음에 민수의 삶은 고루하기 짝이 없다. 폭행시비와 대마초사건에 연루된 후에도 여전히 ‘가오’ 있게 살아가는 그의 도도함 뒤에는 티 안 나게 합의해주고, 소문 안 나도록 덮어준 매니저가 있었지만 88년도 가수 왕이었던 자신이 지방 방송국의 DJ로 가는 게 불만인 그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다.

게다가 방송사고로 좌천된 3년 차 라디오PD 강석영(최정윤)하고의 불협화음은 이들의 인생에 ‘재기’란 없음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최곤의 막무가내 식 진행과 멘트 들은 곧 강원도 영월을 넘어 전국방송까지 타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흡사 <러브 액츄얼리>의 한물간 가수 빌리와 매니져 조의 모습을 보는것처럼 이들의 으르렁거림은 단순히 돈이 오가는 매니지먼트라기보다 가족의 챙김에 가깝다.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인물들은 짝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꽃집 청년에서부터, 내기 화투를 치는 할머니, 집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 소년에 이르기까지 세대와 계층을 초월한다. 자신의 현실과 별 다를 게 없는 이야기를 화면이 아닌 라디오로 듣는다는 설정은 잊혀지는 매체를 통해 세상사람들이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던 이준익 감독의 연출의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후 7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춘 안성기와 박중훈은 전작에서 쫓고 쫓기는 관계에서 서로를 끌고 미는 모습으로 180도 변신, 겉으론 티격태격하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챙기는 가슴 뭉클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냈다. 한때 잘나갔으나 지금은 잊혀진 채로 과거를 회상하며 그 당시를 재현하고픈 사람들과 그들을 보면서 현재를 더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깊은 속내까지 들춰내는 영화 <라디오 스타>는 아날로그를 빗대어 미래를 얘기한다. 전설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렇게 기억되는 거라고. 물론 그 기억의 중심에는 귀로 듣고 마음을 울리는 ‘라디오’가 추억의 명곡과 함께 감동을 두 배로 전달한다.

2006년 9월 7일 목요일 | 글_이희승 기자

- 코믹과 진중함을 넘나들던 박중훈의 적역이 무엇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픈 자! - 국민배우 안성기의 내공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정말 존경스러울 따름!) - 노브레인의 스크린 진출이 궁금하다면!(그들의 발랄한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 - 이준익 감독의 연출력을 <키드캅>때 부터 믿어왔다면! (이 영화에선 연기에도 도전하셨다) - 뜨고 나면 소속사 바꾸는 연예지망생들 필수! - 스타를 상품으로만 보거나 이중계약으로 발목 잡는 장사치들! - 이런 영화를 ‘관람불가’에 넣는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에 대한 모독이다! 의.무.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