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이 나름의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동생 데이미언과 어린 시절부터 신학교에 보내질 만큼 영특했던 형 테디의 비극적 형제애를 포장하지 않은 날 것 그래도 보여준다.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켄 로치 감독 특유의 객관적 시각으로 그려낸 수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불편하지만 진한 감동을 남긴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소재로 했지만 이들의 갈등과 진심이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우리의 역사와 별다를 게 없는 ‘익숙한 비극’을 다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전투장면은 투박하게 그려졌지만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안고 있는 말싸움은 그야말로 서슬 퍼런 칼날이다. 영국을 이기기 위해서 피로 뭉쳤던 어제의 동료들이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장면은 아일랜드 독립 투쟁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충분히 공감할 만큼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이 결코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에만 일치하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결국 고소하게 입안을 맴돌다가도 쌉쌀한 끝 맛을 보이는 흑맥주 같은 인물들의 갈등은 잔인한 고문과 배신, 포기와 회유로 이어진다.
인종과 장소만 달랐지 부당한 대우와 신념을 지키기 위한 희생은 가족과 다름없었던 내부 밀고자의 심장에 총알을 박아야 하는 데이미언의 고뇌가 테디에게 이어지는 장면은 역사는 반복됨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동족끼리 흘렸던 핏빛 이념의 전쟁이 결코 끝나지 않았고, 끊임없이 전세계에서 자행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이 영화는 블루칼라를 대변하는 감독으로 유명한 켄 로치가 무려 7차례나 황금 종려상 후보에 올랐으나 그 영광이 주어진 작품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란 점에서 더욱 의미 깊다.
2006년 11월 6일 월요일 | 글_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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