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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곤>은 온 가족이 보기에 딱 어울리는 판타지 대작이다. 자신보다는 동행한 이의 영화보기 즐거움이 더 우위에 있고 그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가 요구되는 가족무비로서는 제격이다.
그러니까 <에라곤>은 지극히 평범하다는 거다. 애들이나 나이 드신 어른들이 마주해도 별 무리 없이 영화적 쾌감을 느낄 만큼 단순한 이야기와 볼거리로 구성돼 전개된다. 절대적인 선과 악의 대결 구도, 난세를 구원할 숙명적 운명을 지닌 주인공의 험난한 여정, 주인공 및 영화 덜 심심하게 도우미를 자처 하고 나선 조연급 캐릭터의 활약상 등 익숙한 설정들이 잔뜩 등장한다.
단, 워낙이 평범함을 추구하는 영화이다 보니 알아서들 순서에 맞춰 하나 둘 나열되는 식이다. 제가 어쩌다 이렇게 됐고, 얘는 또 왜 이 지경됐는지 밀도 있게 그 수순을 그리지 않고, ‘눈 뜨고 나니 스타더라!’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대거 생략 및 압축, 스피드하게 후딱 진행시킨다. 에라곤의 멘토라 할 수 있는 제레미 아이언스를 비롯해 주변 캐릭터들의 존재감 역시 심히 미비하다. 왜 나왔는지 도통 감이 안 오는 인물들이 다수다. 특히, 사악한 악의 화신으로 나오는 존 말코비치는, 속편에서는 뭔가 달라지겠지만, 최소한 당 영화에서는 카메오 수준에 불과하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퍼펙트 스톰> 등 여러 영화에서 시각효과를 담당한 스테판 팽마이어를 감독으로 기용했을 때부터 예상된 조짐이다. 앙상한 뼈대만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빈약한 스토리와 캐릭터 대신 볼거리를 전면에 내세운 거다. 물론, 경이로운 비주얼을 과시하지는 못 한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를 경험하며 눈높이가 극에 달한 우리에게 <에라곤>의 전투와 시각적 향연은 밋밋하게 와 닿을 공산이 크다.
허나, 드래곤을 소재로 한 판타지라 그런지 용 하나만큼은 용하게도 제대로 구현해 녀석의 위용을 한껏 자랑한다. 용 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나도 저런 용 한 마리 키우면 좋겠다는 상상이 들 정도다. 더불어 인간의 감정을 품고 있는 드래곤 사피라와 그와 함께 모험에 나선 에라곤(에드 스펠리어스), 이 둘이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 역시 주목할 만하다. 바로 이 두 가지 측면이 <에라곤>의 미덕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는, 고진감래(苦盡甘來)적 메시지와 소년과 신화적 동물이 교감하며 사랑하는 관계로 나아간다는 동화틱한 이야기의 <에라곤>은, 애들용 판타지! 혹은 가족무비로서는 제 역할을 한 셈이다. 어둠의 세계를 묘사함에 있어서도 뭔가 있어 보이려고 젠체하기보다는 간소하게, 그리고 그보다는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비중을 더 실은 점 역시 이에 부합한다. 판타지 대작이라는 타이틀을 건 영화들에겐 일종의 숙명이자 재앙인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의 신화를 잇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하지만 너른 시선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2007년 1월 5일 금요일 | 글: 서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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