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언제 편지를 써 봤나요. 아마도 가물한 기억을 한참 더듬어야만 하겠죠.
전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매일 일기처럼 편지를 썼더랍니다. 지친 어둠을 밟고 돌아오던 골목길에서부터 하루를 되새김하며 차곡차곡 떠올려 놓은 '거리'들을, 내 방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벗어 던지고 잊혀질 새라 서둘러 쏟아놓았었죠. 이 단어, 저 단어가 동시에 겹쳐질 때는 곰곰 저울질하면서, 볼펜을 잘근대며 올려다 보았던 밤하늘. 창문에서는 유난히도 보드라운 바람이 넘어 들어왔답니다. 그렇게 쓰고, 지우고, 다시 읽고, 고민하고... 시간이 새벽녘으로 넘어들어갈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한낱 편지 때문에 늦잠도 자고, 지각도 하고, 1교시는 꾸벅꾸벅 졸았더랬죠.
그래도 서글플 만큼 아련하고 소중한 이런 기억, 당신에게는 있나요?
편지는 그렇게 정성스럽죠. 그 정성이 너무 느리고, 유난한 낭비로 치부되어 잊혀져가는 오늘, 우리는 어느덧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던 하얀 종이와 까만 볼펜을 잃어버렸습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조그만 전화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그래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좀 더 자주 빠르게 내비칠 수 있게 되었지만, 오래 천천히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단어들로 빼곡하게 들어차서 받는 사람도 두 번 세 번 너덜해질 때까지 다시 꺼내 읽고 배게 밑에 넣어두기도 하던, 느리기 때문에 더욱 간절한 편지와 같은 그런 정은 끊어지고 만 것일까요.
개인적인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나도 몰래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하고 싶었던 말은 그저 '편지'라는 매개가 지닌 절절함, 애절함 그런 거였어요.
창국의 어머니(방은진)가 먼 미국으로 보내는 편지,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수취인 불명' 낙인이 찍힌 차가운 현실뿐입니다. 영화의 밑바탕 정서는 이 거예요. 애절하고 절절한 '편지'이기에 더욱 싸늘한 좌절과 절망. 등장 인물들 모두 닮은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끊임없이 타오르지만 보답받지 못하는 외사랑처럼 외눈박이가 되어버린 세 아이들이 줄지어 길을 걸어가는 장면은 그래서 쓸쓸한 웃음을 자아내죠.
너무 무겁고 골치 아파서, 차라리 망각으로 떨쳐내고픈 우리의 과거. 그 과거 속의 슬픔과 아픔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영화입니다. 아무리 개개의 인간이라도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죠. 감독은 우리의 도피하고 싶은 안일한 바램의 틈새를 예리하게 찔러댑니다. 그리고 역시 감독 특유의 강렬한 색채로 그 의도는 성공할 듯 합니다. 같이 영화를 본 친구는 자꾸만 한숨을 쉬더니, '기분이 너무 나쁘다'는 소감을 밝히던데요. [섬]으로 여기자 두 명을 기절시켰다는 김기덕 감독의 엽기(?)성도 한 몫 했겠지요.
감독은 역사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거창하고, 스케일이 큰 역사가 아닌,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소소하고 세세한 일상의 역사를 들려주려 합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국사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었던, 연대표에 밀려나 숨어있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보여주려 합니다. 그렇게 감독은 지흠(김영민)을 시켜 묻혀진 인민군의 유골을 파내죠. 그리고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된 낡은 가족사진은 우리가 '적'으로 규정한 채 다투었던 그들 또한 우리처럼 까만 머리에 노란 얼굴을 가진, 가족의 품이 그리웠던 '사람'이었음을 담담하게 일깨웁니다.
처음에 이 영화를 만들 때, 김기덕 감독은 '반미'의 입장에 서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들며 그의 감정은 서서히 변했노라고 고백했지요. 감독의 미국에 대한 입장의 고뇌와 갈등은 미군 병사 제임스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분명 그는 은옥(반민정)을 자신의 성적 노리개로 '이용'하는 사악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난 이제부터 군인이 아냐, 적이 어디 있다고 그래!"라고 울부짖는 절망에 가득찬 모습, "엄마"를 부르며 은옥의 품에 안겨드는 웅크린 모습의 그는 처벌받아 마땅한 악의 형상이 아닌, 혼란스러운 시대를 표류하는 나약한 젊음으로 묘사됩니다. 제임스는 무엇 때문에, 생전 듣지도 못한 남의 나라에서 총을 들고 헤매이며, 마약으로 침전해 갈까요. 진정 미국이 그에게 강요했던 '세계평화' 때문이었을까요. 아니요, 아닐 겁니다...그에게 화살이 내리 꽂혔을 때, 통쾌함보다는 동정이 앞섰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러한 질문이 비단 과거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역사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흔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앓고 있습니다. 분단된 조국, 남아있는 주한미군, 미국과의 삐걱대는 관계, 왜곡되어 왔던 우리의 역사 인식, 그 안에서 꺾이고 짓밟힌 수많은 사람들.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판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가능하지도 않겠지요. 단지 쉽게('편지'처럼) 우리 의식 저 편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취인 불명]이 새삼 유효한 것은 그 때문일테죠.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죽음도 가볍지 않습니다. 람보가 두두두 쏘아대는 따발총에 도미노처럼 픽픽 스러지는 악한들의 죽음처럼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주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 하나 하나가 (시쳇말로) 가슴을 도려내듯 고통스럽습니다. 죽이는 사람도 절망의 극한에서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 흘리며 칼을 들이댑니다. 우리는 섣불리 누구도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함께 고통을 느낌으로 그들의 상처를 다독다독 위로합니다. 창국의 어머니가 바랬던 것이 그것 아니었을까요. 미국에 가서 돈 많이 벌고 잘 살아 보겠다는 것이 아닌, 다만 창국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흔적을 손에 쥠으로써 '가족'이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위안말입니다.
사족일 지 모르지만, 이 영화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감탄할 만큼 훌륭합니다. 조재현, 방은진, 명계남처럼, 그 이름이 신뢰가 되는 배우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닥 주목하지 못했던 양동근과, 오디션으로 선발되었다는 반민정, 김영민이라는 신인들의 연기는 분명 빛납니다. 우리 영화계가 참신한 보석을 발굴해낸 것 같아 희망이 샘솟는 군요.
더 이상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은 당신에 대한 예의가 아닐 성 싶어요. 너무 길어졌군요. 지루함에 하품을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을 당신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하고 싶었던 말은 너무나 많았는데, 머리 속이 온통 헝클어지고, 풀어놓는 손가락 마디가 콕콕 저려와서 이 리뷰를 쓰는 것이 영 쉽지 않았어요. 겨우 가라앉혔던 [수취인 불명]의 후유증을 한동안 다시 앓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