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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평가! 개인으로 규정하기엔 너무나 위대한 그녀의 서사!
골든 에이지 |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을 완성한 것이 빅토리아 여왕이었다면 그 황금 시대(golden age)의 초석을 마련한 장본인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추앙돼야 마땅할 것이다. 재혼을 위해 가톨릭을 버리고 성공회를 국교화시킨 헨리 8세의 사심이 깃든 정책의 부채를 탕감시킬 정도로 지혜로웠던 여왕은 무적 함대라고 불렸던 필리페 2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며 해상권을 장악한 후, 세계로 뻗어나간 영국의 상선들을 통해 대영제국의 든든한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그녀가 집권한 시기는 존 스펜서와 윌리엄 셰익스피어 같은 세기의 문호들이 등장해 문예의 황금기를 이루기도 했다.

이와 같이,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룩한 국가적 기틀은 먼 훗날, 대영제국(The Great Britain)의 질 좋은 비료가 됐다. 그리고 <골든 에이지>는 그 황금기의 첫째 줄에 해당하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사 일부다. 결혼하지 않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가와 결혼했다고 불릴 정도로 순결한 여왕(virgin queen)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엘리자베스 여왕에게도 로맨스가 존재했다면? <골든 에이지>는 엘리자베스를 역사로 기록되는 여왕의 권위에서 벗어나 여성으로서의 내면을 상상하고자 하는 허구적 묘사이기도 하다.

사실 <골든 에이지>는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의 집권 전후의 영국 역사를 조금이나마 아는 이들에게 더욱 즐거운 이야기가 될법하다. 절대왕권을 확립한 튜더 가문의 이슈메이커 헨리 8세로부터 엘리자베스 1세의 즉위까지의 사건들. 헨리 8세와 6명의 아내, 그리고 가톨릭을 밀어내고 성공회가 국교로 선언된 이유.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집권 초기의 혼란스런 국정 상황. 이는 사실 셰카르 카푸르 감독의 전작 <엘리자베스>(1998)에 관련된 서사이기도 했다. 게다가 <골든 에이지>는 <엘리자베스>를 잇는 ‘시즌2’ 스토리라고 해도 상관없다. 케이트 블란쳇은 <엘리자베스>에서도 같은 역할을 맡았고, 그녀의 믿음직한 가신이자 충신인 프란시스 윌싱엄 역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제프리 러쉬가 맡았다. 게다가 <골든 에이지>의 원제는 <Elizabeth: Golden age>다. 하지만 <골든 에이지>는 약간의 역사적 서사만 숙지한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없는 영화일 수도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서사를 위한 전형적인 인물의 조명이 아닌 다른 관점을 통한 인물의 조명을 위한 역사적 서사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전자와 마찬가지로 <골든 에이지>도 여왕이란 거대한 서사에 가려진 여성이란 속살을 훔쳐보려는 눈빛이 명백해 보인다.

시대적 고증은 <골든 에이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자 특별한 장기다. 우아하면서도 고풍스럽고 사치스럽지 않은 여왕의 품격을 위해 동원된 의상과 가발은 세트를 통해 구현된 시대적 외양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것은 단순히 시대를 살리고 사실적 묘사의 주석을 달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드레스와 가발, 그리고 짙은 화장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권위를 묘사하기 위한 적절한 형용사들이지만 동시에 그녀의 이면을 부각시키는 허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녀가 가발과 드레스를 벗고 창백할 정도로 하얀 화장 이면의 살색 피부를 드러낼 때, 혹은 심지어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나체의 육신을 드러낼 때, 그 순간 여왕의 권위를 벗어 던진 여인의 고독한 속살이 드러난다.

그녀가 벗어 던질 수 없는 삶의 과업, 여왕이라는 사명에 짓눌린 여인의 소망을 드러내는 것은 <골든 에이지>의 특별한 시선에 담긴 궁극적인 초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인의 추측과 상상이 빚어낸 허구적 소양이다. 결국 <골든 에이지>는 시대적 재현을 통한 허구의 재생을 꾀하고 있는 팩션 서사물이다. 그런 지점에서 <골든 에이지>의 성취는 전작과도 같은 <엘리자베스>와 비교했을 때 그리 커 보이진 않는다. 도리어 혼란성을 집착하듯 부추기는 허구의 과잉이 감정의 이입보다 앞서는 양상이라 불편함이 감지될 따름이다. 오히려 ‘영국의 국민들은 여왕을 사랑해. 난 좋은 정치로 그들에게 보답하겠어’라고 말하는 여왕의 인자한 카리스마를 묘사하는 역사적 서사로서의 숙명이 <골든 에이지>에 더더욱 어울려 보인다. 이는 결국 웅장한 스펙터클을 선보이는 후반의 해전씬은 <골든 에이지>를 역사적 서사물 이상의 가치로 신격화시키지 못하게 붙든다.

결국 <골든 에이지>는 여성이라는 내면적 시선을 염두에 뒀지만 그 외면의 웅장함에 스스로 도취되고 갇혀버린다. 물론 이것이 <골든 에이지>의 상업 영화적 흥미도를 반감시켰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캐릭터적 매력은 영화상에서 흥미롭게 묘사됐다. 하지만 분명 어떤 의도적인 측면에서 <골든 에이지>의 궁극적 야심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을 위한 서사시로서의 매력은 건재하지만 이야기의 혼란을 가중시킨 현대적 시선의 허구는 결국 초점만을 흐린 채 온데간데 없이 거대한 역사적 서사 속에 침몰된다. 어쩌면 플라토닉(platonic)한 개인의 로맨스에 규격을 맞추기엔 역사적 연대표 그 자체를 대신해도 될법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사가 너무나도 위대한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엘리자베스 여왕, 혹은 영국사나 세계사에 관심이 많다면 흥미로울 것
-케이트 블란쳇, 클라이브 오웬, 제프리 러쉬, 사만다 모튼. 배우 열전!
-스펙터클한 해전의 위용, 불타오르는 수평선의 전경이 멋지다는 말밖에.
-엘리자베스 여왕 이전에 한 여인의 갈망과 나약한 내면을 발견한다.
-개인의 비밀을 들추는 것 같지만 결국은 역사적 서사에 가깝다.
-제국주의적 속성의 근본을 미화한다고 확대 해석한다면 꽤나 곤란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누구야? 역사를 숙지할 것 까진 없어도, 이건 좀......
17 )
ldk209
캬.. 배우들 하나는 죽음이네...   
2007-11-1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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