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데스노트 L>은 데스노트를 위한 것도, L을 위한 것도 아닌 결과물이 됐다. <데스노트 L>의 서사는 라이토와 L의 대결이 벌어지던 23일 간의 여정에 잠재된 L의 사연을 주축으로 하고 있으며 당연히 라이토를 비롯한 본작의 인물들은 이 작품에서 고스란히 배제돼있다. 문제는 이것이 L의 숨겨진 상황이라 말하기엔 지나치게 장황하며 이는 전작과의 연관성에서도 큰 설득력을 주지 못한다는 것. 또한 캐릭터가 지닌 매력을 어필하고자 하는 부록의 역할에 대해서도 큰 의문을 짊어지게 만든다. 단지 L이 등장할 뿐, L에 대한 특별한 사연이라 보기엔 이야기가 지닌 태도 자체가 지나치게 모호하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데스노트 L>은 기존의 캐릭터가 지닌 매력을 우려먹고자 하는 과욕적인 프로젝트로 몰락하고 말았다. 지나치게 판을 벌리는 이야기의 얼개에 비해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어색하며 확장된 스케일에 비해서 그 안에 담긴 사고와 철학은 지독하게 빈약해졌다. 특히 제도와 윤리에 대한 이성적 물음과 감성적 접근을 교묘하게 엮어내던 <데스노트> 특유의 흥미로운 사고는 <데스노트 L>에서 완벽히 실종됐다. 이것이 비록 스핀오프라고 하지만 적어도 전자의 시리즈가 지니고 있던 매력의 비중을 고려한다면 <데스노트 L>은 기존에 이 작품의 매력 자체가 완벽하게 소멸됐다고 봐도 상관없을 정도다. 이는 원작을 사랑하는 독자 혹은 관객의 인내심마저도 힘들게 만들며 그마저도 없는 관객이라면 전작들에 대한 악의마저 품게 만들 정도다. 쉽게 말하자면 <데스노트 L>은 개별적으로도 취약하며 네임밸류의 연속성을 극악하게 배신하는 몰지각한 기획 남발이다. 게다가 질주를 감행하는 L의 새로운 모습은 차마 보기 민망할 정도로 안쓰럽다. 결국 <데스노트 L>에서 볼 것은 L밖에 없지만 그것을 위해 나머지를 참아야 한다는 건 일종의 곤욕과도 같다.
2008년 2월 18일 월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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