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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 미치겠어!! 대관절 왜! 올 여름엔 한국 공포영화가 달랑 한편밖에 없는 거야?
2008년 7월 18일 금요일 | 김시광 객원기자 이메일


한국공포물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올여름은 무척이나 심심할 것 같다.

올여름 극장가에는 한국공포물이 보이지 않는다. 더 불행한 사실은 [고사]가 잘되길 고사라도 지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쭉 심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위기라 할만하다. 물론 다른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이 같은 위기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징후는 꾸준히 있어왔다. 한국공포물에 '사다꼬의 망령'이 들러붙었다라는 조롱은 그 단적인 예였을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감독은 '사다꼬의 망령'이라는 편의적 표현에 의해 다른 장점들이 가려지는 것이 억울하다는 투의 말을 내뱉은 적이 있다. 관객의 반응을 편의적 표현이라고 말하는 발상 자체가 안이하다는 생각은 든다만, 내심 이해는 간다. 한 영화의 좋고 나쁨이 어찌 그 한 가지에 온전히 달려있으랴. 그러나, 관객들도 바보가 아니다. 영화만 잘 만들어졌다면 비주얼의 유사성은 관객에게 용서될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조롱거리 삼은 이유는 대개의 영화들이 비슷해서 식상한 동시에 볼 것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기대를 잃고 급기야는 진력이 나고 만 것처럼 보인다. 이유가 뭘까.

슬픈 공포, 드라마가 강한 공포

2년 전의 어느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공포소설작가와 메신저로 대화를 하던 도중, 이런 말이 나온 적이 있었다. 공포영화 시나리오 작업요청이 몇 번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제작자들은 하나같이 '슬픈 공포'를 요구하더라고. 슬프면 슬프고 무서우면 공포지, 대체 슬픈 공포가 뭐냐고. 그렇다. 최근 한국에서 나온 호러영화 중 무서운 영화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나같이 호러보다는 드라마가 강했던 작품들이었지. (이것은 때로 코미디영화에도 적용된다. 코미디영화를 통해 나는 감동 - 그것은 덤이다 - 보다는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나마 재미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모험을 기피하는 제작자들은 오늘의 사태에 일말의 책임을 지고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들을 매도할 수만은 없다. 그럼 생각해보자. 어째서 그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기를 꺼려하는가? 사실 제작자라고 해서 새롭고도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없는건 아닐게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투자한 돈을 뽑아야한다는 최소한의 목표가 있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색다른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건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엄청나게 잘 만들면, 신선하면서도 돈도 벌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포영화의 소재풀인 장르문학이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이 땅에서 갑자기 그런 영화들이 튀어 나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제작자들은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실험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을 꺼린다. 이를테면 좀비물이나 슬래셔와 같은 장르는 한국에서 먹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냉정하게 지금의 현실만을 따져볼 때, 그들의 그런 생각은 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흔히 이러한 영화들의 제작 러쉬는 [장화,홍련]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해진다. 외견상 그 말은 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슬픈 공포는 그보다는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한국공포영화인 여귀영화는 한으로부터 시작된다. 현실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다가 죽음을 맞은 여인은 죽어서야 가해자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럼으로 인해 영화 속의 가해자는 현실의 피해자로 갈음되고, 피해자는 자신의 행동의 댓가를 치르는 이전의 가해자로 밝혀진다.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해지며 권선징악의 결론으로 이어진다. 남존여비와 가부장제, 신분제 등의 불평등한 시스템이 굳건할 때, 이런 영화들은 일종의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하며 관객들의 지지를 얻게 된다. 그러니까 슬픈 공포라는 것은 하나의 추세라기보다는 한국공포의 전통이었던 것이다. 이런 영화들에서는 어째서 귀신이 만들어졌는지, 그녀를 죽어도 죽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굳건한 드라마가 따른다.

협소한 시장, 전문적이지 못한 제작진

후배가 근무하던 영화사에서 만든 모영화가 개봉하기 전, 후반작업을 하기 전의 가편집본으로 모니터링을 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 최초 시나리오도, 수없이 많은 교정본 중의 일부도 미리 읽을 기회가 있었다.) 후배가 나를 찾기에, 나는 공포영화 매니아의 의견들이 필요한가보다라고 생각하며 그 자리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 곳에 모여있던 대부분의 모니터 요원들은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왜? 제작자들이 집중타겟으로 삼은 것은 공포영화의 매니아층이 아닌, 여름이 되면 의무감으로 극장에서 공포영화 한 편 쯤은 감상하는 관객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매니아층이야 늘 실망하면서도 제 발로 극장을 찾아주는 우량고객 아니던가. 대부분의 기업은 제 발로 찾아오는 고객에게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편이다. 그와 동시에 한국의 공포영화 매니아층이 상당히 엷기 때문에 그들만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니아층이 엷은 보다 근본적 이유는 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이다. 호러존으로부터 시작되어 호러익스프레스, 호러타임즈 등으로 이어진 커뮤니티들은 이 땅에 호러영화의 열혈매니아층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그 수가 얼마 안 된다는 것이다. 시장이 큰 미국에서는 로이드 카우프만이 악취미를 맘껏 발산한다고 해도 인구의 극히 적은 비율만 설득할 수 있으면 돈도 벌 수 있고, 또 영화를 찍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도살자]의 김진원 같은 감독들의 시도는 관객과 만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부천에서 그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졌다. 국내는 포기했고 해외시장을 둘러보는 중이라고.

매니아층이 없는 것은 관객뿐이 아니다. 공포영화를 만드는 이들 중에도 전문적이라 말할만한 사람들 -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만들어진 영화만 두고보면 - 이 눈에 띄지 않는다. 날림영화를 기획하는 제작자, 입봉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감독들. 자신이 만든 공포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에게 립서비스조차 하기를 꺼리는 감독들도 보일 지경이다. "전 공포영화 좋아하지 않아요."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걸 만들어놓고, 남에게 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작자의 안이한 현실 인식

매니아층이 엷다보니 제작자들은 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기를 꺼린다. 반면 여름이 되면 의무감처럼 극장에서 공포영화 한 편 쯤 감상하는 관객은 적지 않다. 제작자들은 그런 관객들을 타겟으로 삼았다. 그러다보니 그들이 공감하기 쉽도록 드라마가 강한 슬픈 공포물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장화,홍련]은 운만 조금 따르면 200~300만의 관객이 호러영화에서도 동원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래서 제작자들은 그것을 벤치마킹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작자들의 현실인식이란 안이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그를 따르다보니 관객에게 여름철 한국공포영화는 한 편이면 족했고, 따라서 먼저 개봉하면 성공한다는 일종의 속설이 만들어졌다. 퀄리티의 경쟁이 아닌 속도의 경쟁처럼 보이게까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시장은 협소한데 너도나도 기백만을 꿈꾸는 것은 애초부터 정상이 아니다. 이것은 공포영화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전반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제작자들은 시장을 키우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형성된 거품 -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 을 걷어먹기만 원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비슷한 영화들은 궁극적으로 잠재적 관객들마저 시장에서 내모는, 제 살을 갉아먹는 행위이다.

또한 제작자들은 이러한 시장상황을 주어진 것, 그리고 불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시장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 분위기를 바꾸고 신규 수요를 창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성공한 사람은 현존하는 수요를 나누어 먹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었다. 도전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매니아층이 엷다고해서 매니아를 설득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영화들만 만들어낸다면, 그 산업은 종국에는 살아남지 못한다. 하다못해 한 편의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DVD를 팔아먹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번 이상 볼만한 영화, 해당 영화의 매니아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영화들의 약발이 떨어져가고 있다. 공포란 동시대인들의 무의식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시대를 가장 먼저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전통의 계승도 중요하지만,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공포라는 장르만큼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장르도 흔치 않다. 미지의 것이란 대체로 공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미지의 것을 풀어내는데 있어 개연성이란 일종의 강박관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불친절하게 모든 설명을 그만 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설명은 영화에서 공포를 사라지게끔 만들지도 모른다는 사실 정도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인사이드]라는 영화는 고작 두어줄이면 영화의 내용을 전부 설명할 수 있음에도, 전세계 호러팬들의 피를 들끓게 만들었다. 그 정도로 충분할 수도 있다.

전통으로부터의 탈피, 그리고 조금 작은 영화

두서없는 이 장광설은 결국은 변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늘어놓은 것이다. 너무 강한 드라마라는 강박에서 탈피할 것, 혹은 전통으로부터 탈피할 것이 그것이다. 이는 곧 공포를 위한 공포영화를 만드는데 노력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모험이 될 수 있을지라도 변혁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현재의 상황은 모험 없이 타개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그와 동시에 예산을 조금 줄여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장르에서 저예산영화들이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의 저예산이란 몇 만의 관객을 목표로 하는 영화일 수도 있지만, 지금보다 조금 작은 영화들을 의미한다. 굳이 독립영화가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리고 모두가 작고 신선한 영화들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너도나도 손익분기점이 100만에 달하는 영화들만 만들어내는 것은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것이며, 소수의 관객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작품들의 병행을 통해 꾸준한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돈이 적게 들어갈수록 더 자유롭고, 참신한 영화들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그런 영화들이 상업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어깨에 힘을 뺀 일본의 독립영화들에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환호를 던지고 있는가. 저예산영화들의 여건은 분명 열악한 - 이것도 너무 말랑말랑한 표현일게다 - 것이 사실일테지만, 요즈음의 제작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영화를 홍보해줄 서포터들을 만날 기회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들을 안티로 만들 수도 있다. 요즈음의 관객들은 적극적이다. 인터넷에는 영화에 대한 글들이 차고 넘친다. 이러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 같은 저예산영화는 기초가 튼실해질 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 물론 어느날 갑자기 한 엘리트 천재의 등장으로 판이 확 바뀌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허나 그러한 사례가 존재한다고 쳐도, 실은 천재란 무르익은 환경의 결실일 따름이다. 나는 저예산영화를 통해 쌓인 장르영화에 대한 경험의 축적은 제작자의 관점에서 보던지, 시장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보던지간에 미래를 위한 큰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공포영화 한 편 찍으면 다른 영화 찍게 해줄게." 혹은 "저 공포영화 좋아하지 않아요."라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스스로 이 장르를 선택하여 꾸준히 경험을 쌓아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영화가 보고 싶다는 것은 나만의 욕심은 아닐게다.

더불어 시장을 키울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러한 시장은 내적으로 키울 수도 있고, 외국으로 진출함으로써 외적으로 키울 수도 있다. 허나 외국에 진출함에 있어서도 지금과 다른 영화는 필수적이다. 뻔한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제이호러의 위상도, 낯설음을 앞세운 태국호러의 틈새공략도 그것이 익숙해지는 순간 시들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꾸준히 노력해야함을, 계속해서 변화해야함을 제작자들은 인지해야 할 것이다.

2008년 7월 18일 금요일 | 글_김시광 객원기자(무비스트)
35 )
kpkp4610
쯧   
2008-07-20 14:22
mvgirl
점점 비슷비슷해지는 공포영화들...   
2008-07-20 09:27
szin68
세련미는 점점 더하지만, 끝으로 갈 수록 허무해지는 건 왜일까?   
2008-07-19 16:04
ssungkeun
비슷한 소재로 재탕의 재탕으로 인해...소재고갈이 가장 크죠~   
2008-07-19 14:21
starsonia
전 여름에 공포영화만 해서 극장가기를 무서워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그렇네요...ㅎㅎㅎ   
2008-07-19 14:00
ick99
그래도 여름이 아쉽네..   
2008-07-19 09:49
joynwe
공포영화가 꼭 많으라는 법은 없죠...웬만한 것은 관객들도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구요...   
2008-07-19 04:07
ldk209
독특한 호러 안 나오나...   
2008-07-1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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