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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숨겨진 제인 오스틴이라 불리며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에 선정된 위니프레드 왓슨의 소설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가 반세기 만에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탄탄한 원작에 영국 로맨틱 코미디 명가들이 총 출동하여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로맨틱 코미디를 불철주야 사랑하는 이들의 핏발선 기대심을 자극하는 이 영화는, 세상을 너무나 반듯하고 각지게 사는 탓에 아무것도 없는 페티그루와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라포스가 함께한 유일한 하루를 명랑하고 잔잔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페티그루로 분한 연기파 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내공으로 꽉 찬 무표정한 얼굴과 메마른 차림은 화려한 런던의 부유한 거리와 시대를 품는 쿵짝 거리는 스윙 재즈의 경쾌한 선율과 대비되며 영화 초반 그녀의 고달픈 인생을 더 깊게 투영시킨다. 그리고 그녀가 인생의 반듯함과 배고픈 현실사이에서 처절하게 갈등하다 필연적으로 만난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라포스는 페티그루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주며 그녀를 자신의 세상으로 끌어들인다. 라포스는 세 명의 남자와 각기 다른 이유와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언제 어디서든 ‘달링~~’이라는 말을 숨 가쁘게 내 뱉으며 자신의 성공을 남자에게 기대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부도덕한 사랑에 고민하고 꿈을 갈망하며 유약한 스스로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진심을 관객에게 보이고 그에 더한 에이미 아담스의 상큼 발랄 애교가 녹아 흐르는 다분한 백치미적 연기는 라포스를 결코 아니한 존재로 생각할 수 없게 만들며 발군의 매력을 선보인다.
페티그루와 라포스는 많은 부분 오늘날 여성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감정에 무덤덤하고 꿈과 사랑이 없는 중년의 여인은 세상 안에서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그로 인해 불안해하며, 사랑과 미래 사이의 욕심에서 갈팡질팡하는 생기 넘치는 젊은 여인은 화려한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유약함으로 위태로운 자신의 미래를 불안하게 바라본다. 그런 이유로 인해 라포스는 자신의 세계에서 변화하고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소외된 페티그루를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절절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페티그루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필요로 하는 라포스를 보면서 처음으로 스스로의 다른 면을 바라보기 시작하고, 오래된 삶의 지혜를 순간의 기지와 진심으로 풀어 놓으며 세상에 나아간다. 그렇게 잔잔한 물결이 일며 출렁이는 그녀들의 감정은 공기가 순환되듯 서로를 바꿔 놓고 서로에게 비어있던 부분을 충만한 감정으로 채워준다.
표정 없던 페티그루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오직 겉만 있을 뿐 진짜 자신은 없던 라포스가 진실함에 눈뜨는 것은 단 하루로 이루어진다. 현실에서의 하루는 너무나 짧은 시간의 속성을 대변하지만 영화 안에서의 페티그루와 라포스의 하루는 많은 것을 바꿔놓는 긴 여정으로 변모한다. 물론 구성면에서 그 하루 안에 많은 상황들을 담아내고자 급작스럽게 상황이 바뀐다거나 그로 인한 세밀한 터치가 좀 부족한 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을 바꾸는 시간은 단 하루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엔딩에서 두 여인의 끈끈한 눈빛은 서로를 투영하며, 진심을 가지고 서로가 소통하는 것은 시간의 길고 짧음이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하루라는 제약을 통해 대조적으로 말해준다.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는 남녀사이의 사랑이 아닌 서로 너무도 다른 두 여인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두 여인의 감정의 호흡과 시선의 움직임이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는데 있어서 기존의 말랑말랑하고 좌충우돌하며 알콩달콩, 눈에서 하트가 주구장창 반짝이는 로맨틱 코미디와 같은 부류일 수 없는 분명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본격 연애 컨설팅 코미디라고 표방된 영화 장르로서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만 치부된 다면, 에이미 아담스의 밖으로 분출되는 사랑스런 연기와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표정 없는 얼굴에서 보여 지는 풍부한 내면 연기가 분명 아까울 듯하다.
2008년 9월 16일 화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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