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숙(공효진)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여자다. 타인의 생각을 자의대로 파악해버린 뒤, 그에 대한 오해를 스스로 만들어놓고 되려 민폐 끼친 상대방에게 억울해한다. 예측 불가능한 삽질의 연속이 일상의 전부다. 여러모로 혐오스럽고 피곤한 상대다. 그녀의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은 외모에서 기인된 것이다. 안면홍조증이라는 신경성 불치병(?)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곧잘 빨개지는 그녀의 얼굴은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경계하기 전에 그녀 스스로 주변을 경계하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녀가 여중학교 러시아어 교사다. 어린 여중생들도 비호감이라 무시하는 왕따 선생의 처연한 일상이 그로테스크한 유머 감각으로 포장될 수 있는 건 그녀가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덕분이다.
<미쓰 홍당무>는 어떤 비교 유형이 드문 천연덕스런 이야기다. 열등감을 지닌 인물을 전면에 배치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승리나 성공으로 점철되는 클리셰적인 결말을 안고 가기 마련인데 <미쓰 홍당무>는 그런 뻔한 방식의 이야기투르기와 무관하게 혼란스런 양상으로 상황을 진전시킨다. 그 모든 혼란의 주체는 종잡을 수 없는 양미숙이지만 그녀와 함께 영화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서브 캐릭터들 역시 영화 속 세계관의 비전형성을 보좌하고 있다. 청순한 외모를 지니고 있어 남자들의 인기를 독점하기 때문에 양미숙의 질시를 한 몸에 받는 이유리(황우슬혜)와 10년 전 양미숙의 은사이자 동료 교사인 서종철(이종혁)의 딸이자 ‘전(교왕)따’로 불리는 서종희(서우)는 양미숙의 기이한 성향을 부추기거나 그 성향에 연대해 사건의 양상을 예측할 수 없는 범위로 넓혀나간다.
본질적으로 <미쓰 홍당무>는 처연한 동정심을 유발할만한 자질이 농후하다. 실제로 결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을 만한 양미숙의 현실에 대한 기저라 할 수 있는 과거의 사연들이 수집되면 그 처연함의 실체가 더욱 구체화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화가 발생시키는 모든 상황들은 기이하게도 우스꽝스러운 유머감각을 동반한다. 사실 그 상황들은 일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범위의 사건들이 아닐 만큼 생경한데 때때로 그 생경함이 상황의 특이성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곤 한다. 양미숙을 비롯한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들도 정도 차가 있지만 비정상적인 형태로 인식될만한 유형이다. 단지 이는 이 인물들이 기본적으로 특이한 취향을 지닌 탓이기 이전에 이 캐릭터들이 평범하게 포장된 사람들의 숨겨진 내면을 폭로하고자 하는 기능성의 자질을 내포하고 있는 까닭이다.
결국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비틀린 자화상의 현실을 풍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유용하다. 러시아어 선생이 영어 수업을 하기 위해 새벽부터 영어 학원에 다녀야 한다는 노골적인 함의나, 외모지상주의적 태도에 대한 혐오의 반작용에서 비롯된 양미숙의 뒤틀린 강박-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은 판타지에 가깝게 묘사되는 영화를 통해 그 외부에 존재하는 정상적인 현실이 실제로 얼마나 비정상인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예측 불가능하게 뒤엉킨 상황이 해결되는 지점도 특이한 양식을 갈무리하기 위한 해법으로 탁월하다. 마치 법정과도 같은 구도로 재판을 벌이는 4명의 가해자이자 피고들은 그 사건에서 가장 동떨어진 지점에서 가장 정상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성은교(이경미)의 판결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정리한다. 하지만 인물들에게 어떤 인위적인 변화를 주입하거나 특별한 감상을 도모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냥 상황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킬 따름이다. 그 와중에 가족주의의 해체를 연상시키는 탈가족주의적 태도까지 동원된다.
왕따는 계속 왕따일 뿐, 세상이 특별히 그들에게 관대해지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 관대해질 따름이다. 혐오스런 양미숙의 일생이 비극의 굴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에도 희극적인 감상이 유도되는 건 그 덕분이다. 사람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현실은 그걸 때때로 간과하거나 무시할 따름이다. 결국 세상보다도 세상을 살아가는 당사자의 몫이 큰 법이다. 미친 사람 취급을 감내하는 것만큼이나 미친척하며 살아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미쓰 홍당무>는 정상적이란 명목의 폭력으로 둘러싸인 비정상의 세계에서 미친 척 살아가는 비정상의 인물들을 평등한 관점에서 연대하듯 지켜본다. 결국 이 괴상한 영화에 기이하게도 온기를 느낀다면 연민을 배제한 채 그녀들의 씩씩한 자기애를 당당하게 지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것은 소란으로 가득차 어수선한 이 영화에 진지한 태도를 발생시키는 근원이기도 하다.
2008년 10월 14일 화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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