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 그래서 시리다. 이것은 <북극의 연인들>을 보고 떠오른 유일한 말들이다. 구태여 다른 말들을 표현이라는 수단으로 늘어놓아, 영화에서 느껴진 모든 감각들을 깨트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그렇게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보게 된 <북극의 연인들>은 예상처럼, 그리고 기대만큼 가슴을 파고드는 아픈 사랑이 되어 우리 곁으로 왔다.
아나(나즈와 님리)와 오토(펠레 마르티네즈)는 8살 때 처음으로 만난다. 그리고 평생을 서로만 보게 될 강렬한 정신적 교감을 나눈다. 하지만 아이들의 비밀스런 감정보다는 육체로 통하는 직접적이고 경제적인 어른들의 감정이 우선이다. 그래서 아나와 오토는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피가 다른 남매가 된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것들에 굴하지 않는다. 사춘기로 접어들며 성적으로 충만해진 호기심은 그들의 육체를 하나로 붙들어 놓고 서로를 갈망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부모의 눈을 피해 아주 은밀하게 진행된다. 오토가 친 어머니를 잃은 슬픔으로 인해 집을 나와 어디론가 도망치기 전까지는. 그렇게 시작된 사랑보다도 더 큰 이별의 고통은 그들이 25살이 되어 북극권의 가장자리에서 운명처럼 만나는 순간, 평생을 간직할 사랑이 되고 평생을 아파할 비극이 되어 분출된다.
<북극의 연인들>은 아나와 오토, 각각의 입장에서 부분적으로 전개 되고,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진다.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은 동질적이면서도 이질적이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들은 사랑이라는 것으로 융화되어 틈을 제공하지 않는다. (ANA)와 오토(OTTO), 바로 읽으나 거꾸로 읽으나 똑같은 ‘회문’ 구조를 가진 그들의 이름처럼, 그들은 아무리 껍질이 벗어지며 성장을 하고, 타인으로 옆자리를 대체하여도, 항상 서로를 그리워 하고 그런 자신들의 감정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는 그들의 감정은 자석처럼 운명을 이끌고 서로 다른 두 인격이 마치 한 덩어리가 되어 순간을 공유하게 한다.
이러한 영화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 받을 수 있는 것은 영화 속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번짐이 어느 한 순간 튀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늘 적정할 만큼의 차가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나와 오토의 아역부터 시작해 사춘기, 그리고 성인에 이르기까지를 연기한 인물들의 변화가 마치, 한 사람의 성장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아나와 오토의 사랑에 흐트러짐 없는 감정을 갖게 하고, 마지막을 비추며 시작한 그들의 처음이야기와 처음으로 돌아간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이 모든 것들은 스페인 출신의 감독 ‘홀리오 메뎀’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천재감독, 혹은 ‘바스크 시네마’의 선두에 선 거장 감독으로 알려진 그는 사랑과 죽음. 자연과 운명에 대한 깊은 관심을 통해 <북극의 연인들>을 완성시켰다. 또한 퍼즐을 맞추듯 이어지는 영화 이야기 안에 북극의 아름다운 풍광과 백야의 빛을 이용해 신비로움을 더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은 사랑이라는 아름다움을 수반한 감정과 맞물려 더욱더 투명하게 빛나고, 사랑을 더욱더 슬프고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2008년 12월 4일 목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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