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개봉했을 당시, 박광정 씨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스케줄이 꼬였다. 아,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싶었지만 이제 기회는 사라졌다. 고인이 됐더라. 포털 메인에 뜬 기사를 보고 침통해졌다. 이름을 검색해봤다. 프로필에 적힌 사망일이 선명하다. 업데이트가 빠르군. 신속하다. 동사무소 사망 신고보다도 재빠르다. 얄미울 정도로. 한번쯤 기자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인터뷰 일정을 잡아주지 않은 홍보사에도 뒤늦은 원망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아쉽다. 사람이 죽어서 아쉽다. 사람 같은 사람이 죽어서 참으로 아쉽다.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었다. 내 딴엔 그리 보였다.
원래 사람이 죽으면 빈자리가 커 보이기 마련이라는데 박광정 씨는 원래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컸나 보다. 살아생전보다도 고인이 되니 그 자리가 더 커 보인다. 별로 엉덩이가 넓어 보이지 않는 분이었는데도 그렇다. 참, 좋은 배우였어. 원래도 알았지만 새삼스레 뇌까리게 된다.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된 당시에도 그는 연극 연출에 골몰하고 있었다고 한다. 와, 감탄했다. 대단하고 어쩌고, 라기보단 그냥 감탄했다. 그는 행복했을 것 같아. 쓰러지기 직전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매진했다니. 46세의 나이가 아쉽고 또 아쉽지만 얼마나 오래 살았을까, 보단 얼마나 삶을 꽉 채우고 갔느냐, 가 눈에 띈다. 삶의 몇%를 자신의 것으로 채우고 떠나는가, 의 문제다. 그런 면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것으로 가득 채우고 떠난 셈이다. 이렇게 살다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난 자신하기 어려울 것 같아. 어쩌면 그게 바로 행복하게 사는 법일 진대도. 그렇게 그는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배우가 하나 죽었다. 내가 배우라고 아는 이는 얼마나 되나. 여하간 배우가 하나 죽었다. 그는 연기를 통해 세상을 살았고, 우린 그의 연기를 보며 세상을 봤다. 물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미니홈피 방명록에 거짓말처럼 걸려있다는 악플의 실체를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얘네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몸값을 증명하는구나, 씁쓸해진다. 너도 나도 다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시대다. 차라리 신도림역안에서 스트립쇼를 하지 그러니, 애들아. 어떤 이는 지나간 발자취로 길고 은은한 삶의 잔향을 남기는데, 어떤 이는 피하고 싶은 악취를 토악질처럼 내버리고 산다. 어떻게 사느냐는 본인의 몫이지만 적어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다면 참 슬픈 일인 거 같다.
최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품고 있다. 내년이면 나도 어느덧 스물 여덟인데, 한번쯤 죽음을 준비해도 되지 않겠나, 싶어졌다. 이 자식, 허세가 헤럴드 트리뷴 급인데! 놀림 당할 지 모를 일이지만 그냥 그렇다. 죽고 싶다는 말은 아니고. 오역은 금지. 다만 유서 한 장쯤 쓰는 각오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누구 말처럼 사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진 누구도 모르는 세상이다. 당신 역시도 그렇고, 나 역시도 그렇고, 우리 모두 역시 그렇고. 유서를 쓴다는 건 단지 그냥, 지난 삶을 거창하게 돌아보고 싶은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뭐, 대단한 인생이라고. 그러게 말이죠. 하지만 그러니 잘 살고 싶은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
그는 화장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갔단다. 사람이 죽어서 한 자락 영토 차지하는 것도 구차하다 생각했을까. 어쩌면 죽어서도 세상 위로 흩날리며 살아가고 싶었나 보지. 글이 길어졌다. 왜 이리 글이 길어졌을까. 새벽엔 이상하게도 생각이 많아져. 당신 참 잘 살다 갔어요. 그냥 이 말이 하고 싶었을 뿐인데. 박광정 씨, 명복을 빕니다. 당신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인터뷰는 이제 못하겠지만, 당신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랬을 것 같아. 명품조연보다도 명품인간이었어요. 그래서 아쉽네요. 사람을 하나 잃어서. 그러니 잘 가세요. 정말 보기 드물게 잘 살았으니. 그렇게 웃으면서.
2008년 12월 17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