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노처녀 캐릭터는 코미디 영화에서 가장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여자에 대한 환상을 제대로 ‘팍(!)’ 깨어주는 그런 여자 캐릭터는 한편으로 절대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이고 귀여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영화 <미스 홍당무>의 양미숙이 그랬고,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브리짓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그런 그녀들이나 보여줄 법한 굴욕들을 완벽한 여주인공이 당한다면 그것 역시도 흥미롭지 않을까? 그 해답을 바로 영화 <미스 루시힐>의 주인공 루시힐, 그녀가 보여주고 있다.
명품 정장과 고급 스포츠카, 서인영도 탐 낼 하이힐과 스타벅스 커피. 바로 ‘미스 루시힐’을 대표하는 아이템들이다. 여자라면, 아니 남자라도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 멋진 커리어우먼인 루시힐은 남부러울 것 없는 외모와 능력을 겸비한 여자다. 물론 혼기를 이미 놓친 노처녀지만 그녀에게는 남자라는 존재보다 일과 출세가 우선일 정도니까 말이다. 그런 루시힐에게 찾아 온 절호의 기회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시골 공장으로 내려가 관리자 자격으로 구조조정을 하라는 것. 루시힐에게 별 것 아닌 일이라 여긴 그 일은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부터 인생 전부를 바꿔 놓게 된다.
간략하게 말해, 영화 <미스 루시힐>은 따뜻한 도시 여자가 추운 시골 깡촌으로 와서 겪게 되는 굴욕담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그 속에는 우연히 찾아오는 로맨스와 마을 사람들과의 화해, 그리고 변화 등이 양념처럼 등장하지만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는 루시힐의 굴욕담만으로도 영화의 재미를 충분히 맛 볼만 하다. 미네소타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작된 그녀의 굴욕은 옷차림, 하이힐, 폭설과 술, 까마귀 사냥 등 각양각색의 굴욕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게다가 수다스러운 비서 아줌마와 고집 세고 보수적인 마을 토박이 주민들, 그리고 첫 만남부터 꼬이기 시작하는 까칠남 ‘테드’까지 하나같이 루시힐에게 굴욕만을 안겨주는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역시 유쾌하다.
미네소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루시힐의 다양한 굴욕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한 편의 영화가 연상된다. 바로 <미스 루시힐>의 주인공이기도 한 르네 젤위거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다. 이미 브리짓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르네 젤위거식 굴욕 연기’를 맛보아서 인지 루시힐 역시 전혀 낯설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식상하거나 뻔하지않고, 나름의 신선한 재미를 주는 것은 바로 ‘대놓고 빈틈투성이’던 브리짓과 달리 루시힐은 ‘알고보면 허당’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미스 루시힐> 역시 평범한 스토리와 뻔한 공식을 지닌 로맨틱 코미디임에는 분명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함과 도도함이 풍기는 도시의 커리어우먼이 덜렁거리고, 실수투성이인 시골 아낙네로 적응해가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굴욕담은 시종일관 웃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게다가 90분이 조금 넘는 런닝타임이 말해주듯 짧고도 빠른 전개는 단순함 속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크게 지루할 틈이 없다.
전신성형까지 감행하며 쭉쭉 빵빵한 모습으로 돌아 온 르네 젤위거는 180도 달라진 외모에 ‘브리짓’의 매력을 그대로 담아 또 하나의 완소 굴욕녀 ‘루시힐’을 만들어 냈다. 구준표같은 꽃남도 등장하지 않고, 가슴을 살살 녹이는 로맨틱함도 없지만, 보면 볼수록 귀엽고 유쾌한 캐릭터 ‘루시힐’의 시골적응기는 그에 못지않은 재미를 톡톡히 보장해 줄 것이다.
2009년 4월 6일 월요일 | 글_김진태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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