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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충격적인 반전은 중요치 않다니까!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 2009년 4월 21일 화요일 | 하성태 이메일


카메라가 담담히 그리고 부지런히 두 여자의 일상을 길어 나른다. 한 명은 알록달록 촌스러운 패션에 제주도에서 생선을 팔고 있고, 또 하나는 말끔한 정장 차림에 서울의 반듯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자매 명주(공효진)와 명은(신민아)이다. 그런 둘의 전화벨이 동시에 울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성격 차이만큼이나 반응도 다르다. 어머니를 보내는 마지막 길, 오열하는 명주와 달리 명은은 누구보다 침착하다. 그런데 가족이 꽤나 단출하다. 명주와 명은 그리고 초등학생인 명주의 딸과 이모 한 명이 전부다. 그러고 보니 둘의 성격이 그렇게 다른 이유가 있었다. 명주와 명은은 성이 다르다. 아버지가 다른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이미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차가 조금 나는 터라 명주는 명은이의 아버지 얼굴을 알고 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직후, 명은은 전주에 살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겠다고 선언한다.

부지영 감독은 명은의 아버지를 찾기 위한 두 자매의 여정을 찬찬히 따라간다. 그들의 점심메뉴인 김치찌개와 돈가스만큼이나 판이한 두 사람의 여정은 과연 무탈할까? 이러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전형적인 여성영화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 일단 설정만 봐도 그렇다. 물리적 거리는 서울과 제주지만 가치관과 성격만큼은 지구와 안드로메다의 거리 만큼이다 다르다. 로드무비라는 장르도 사실 빤하다(심지어 영화 제목도 'Sisters on the Road'다). 비슷하거나 혹은 전혀 다른 성격의 개별적 인간들이 같이 떠나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에 부딪치고, 이를 함께 해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는 이야기. 모든 로드무비는 이러한 두 세줄 요약의 변주들이다.

하지만 부지영 감독은 크게 독창적이지는 않으면서도 비슷하지만 다른 길을 선택한다. 언뜻언뜻 둘의 과거를 회상 장면으로 삽입했던 영화는 둘의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면서부터 적극적으로 그들의 과거사를 꺼내어 보인다. 명은은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던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바쁜 엄마 대신 이모가 일일교사를 자청했던 것도 못마땅했다. 또 새 옷 대신 좀약 냄새나는 리폼 옷도 입기 싫었다. 아마도 명은이 일찌감치 서울로 향한 것도 그런 이유였으리라. 티 없고 걱정 하나 없어 보이는 명주는 이른 나이에 사생아를 낳은 미혼모였다. 자신이 들었던 '애비 없는 자식' 소리를 딸에게 대물림해 준 명주의 마음도 새까맣기는 마찬가지로 보인다. 그런 둘은 말싸움 끝에 빗길에서 차 사고를 당한다. 갈비뼈가 나간 명주는 술기운을 빌려 감춰왔던 속내를 폭발시키고, 명은은 그런 명주에게 그녀 아버지에 대한 과거와 비밀을 얘기해줘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여성영화, 로드무비의 전형적인 길을 가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시종일관 아버지의 부재를 논한다. 성만 달랐을 뿐 둘은 동일하게 아비의 빈자리로 인해 마음을 다친 채 성장해야 했다. 심지어 동네 나이트클럽 삐끼가 아버지란 걸 알고 있는 명주의 딸 또한 아이들의 놀림과 창피를 겪으면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실감하고 있는 터다. 여기까지 영화는 마치 <똥파리>의 여성 버전으로 읽힐 만큼 철저하게 아버지에 대해 부정한다. "없으면 어때.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거지"란 명주의 대사로 상징되듯, 책임감 없고 아비들 없이도 나름 씩씩하게 잘 먹고 잘사는 여자들을 다독인다. 일단 충격적인 반전을 제시하기까지 서로의 용서와 화해를 보여주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아니 그렇게 영화를 설계했다.

각본을 직접 쓴 부지영 감독은 후반부 충격적인 아버지의 실체를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영화는 자신만 아팠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명은보다 더 큰 상처를 지닌 아버지의 존재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리고 명은처럼 도시인의 삶에 찌든 우리가 그의 존재를 받아들여 한다고 권유한다. 그건 좀 더 너른 시각으로 우리와 다르다고 인식되어온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의 문제로 귀결된다(충격전인 결말의 반전은 영화를 관람할 독자들을 위해 남겨둘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남다른 결론을 통해 이 영화는 여성들만이 아닌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한 단계 도약한다.

신인인 부지영 감독은 때로는 무난하게, 때로는 작가적 야심을 비추며 영화를 무리 없이 이끌어 나간다. 명은과 명주, 두 자매 각자의 플래시백이 끼어드는 호흡도 무리가 없고, 과장 또한 없다. 특히나 제주도와 전주에서 촬영했다는 자연의 풍경과 명은이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 또한 탁월하진 않지만 잔잔하게 가슴을 적신다. 2년 전 촬영했지만 <미쓰 홍당무>와 <고고 70> 이전 공효진과 신민아의 한단계 성장한 연기를 확인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털털한 시골 아줌마로 분한 공효진은 10대와 30대를 넘나들며 자연스런 연기를 펼쳤으며, 신민아는 특히 섬세한 감정 연기를 무리 없이, 아니 탁월하게 소화해냈다. 특히나 모든 비밀이 밝혀진 뒤 오열하는 명은과 이를 다독이는 명은을 나란히 잡은 화면은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성이 다른 자매의 로드무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꽤나 큰 반전의 충격으로 인해 다른 의미들이 희석될 요지도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그러한 반전은 <가족의 탄생>이 귀여운 판타지로 영화적인 도약을 시도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해야 마땅해 보인다. 중반 이후까지 흡사 과도한 플래시백으로 오해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게 다 비밀을 지키기 위한 명주와 그걸 뒤늦게 알고 변화하는 명은의 심리를 쫓아가게 만들기 위한 부지영 감독의 선의의 연출 의도로 봐준다면,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분명 반전으로 그 의미가 희석될 영화가 아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차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인간애 혹은 가족애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그러니까 여성 영화이기 전에 '사람'을 위한 영화인 셈이다.

2009년 4월 21일 화요일 | 글_하성태(무비스트)




-신민아, 공효진의 앙상블 연기를 놓치지 마시라
-탁월하고 압도적이진 않다. 그러나 부지영 감독의 감성적인 연출은 높이 사줄만 하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반전만 아니라면 아버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똥파리>와 대구를 이루기에 충분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란 제목에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에 실망하거나 혹은 분개한다면.
-영화제에서 보니 아버지의 존재, 그러니까 영화의 핵심을 이해 못하는 관객들도 있던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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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mo
잘 읽었습니다 ^^   
2010-04-04 13:57
nada356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반전.   
2009-12-05 22:39
cipul3049
신민아 고고70이후로 계속 발전하고있어서 기특합니다.

  
2009-07-01 23:28
iamjo
우와 보고 십내요   
2009-05-06 23:33
mvgirl
보고싶은 영화   
2009-04-30 23:37
okane100
따뜻하고 섬세한 영화일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2009-04-24 23:11
mooncos
볼테다!   
2009-04-24 00:23
wnsdl3
기대되네요..   
2009-04-2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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