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초등학생의 바가지 머리를 전통이자 교칙으로 삼은 한 시골마을. 남자 아이라면 예외 없이 버섯송이 마냥 반듯한 바가지 머리가 당연한 이곳에 조그만 사건이 생긴다. 바로 도쿄에서 갈색으로 물들인 바람머리의 전학생 사키가미(이시다 호시)가 온 것. 하지만 사건의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끝은 창대하였다. 사카가미의 남다른 헤어스타일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특히 여학생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는다. 이를 은근히 부러운 눈길로 바라본 남자 아이들은 자신들의 머리 모양에 처음으로 의문을 품는다. 한편 학교까지 찾아와서 아이들의 머리를 매만지는 바가지 머리의 주범, 마을 내 유일한 이발관의 주인인 요시노 아줌마(모타이 마사코)는 사카가미에게 머리 모양을 바꿀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사카가미는 두발의 자유를 외치며 반기를 든다. 아이들은 사카가미의 인권론에 점차 동화되고 반란을 도모한다. "나도 멋있어 지고 싶어!"
처음에는 귀밑머리까지 똑같이 잘리면서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100년 간 내려온 전통이라고 해서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 전통이라는 것이 바가지 머리를 하지 않은 아이는 외모가 튀기 때문에 괴물이 잡아간다는 우스꽝스러운 전설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순응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는 마을에 외부인이 들어와 바가지 머리의 전통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지적한다. 이후 마을에서는 전통을 사수하려는 어른들, 더 정확히 말하면 보수로 대변되는 요시노 아줌마와 신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아이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요시노 이발관>은 두 진영의 대결을 성장스토리에 녹여 펼쳐 놓는다. 이성과 외모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아이들의 사춘기는 전학생의 등장으로 촉발된다. 처음엔 자신들만의 비밀기지를 만든 것만으로 만족했지만 점차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고, 머리 모양을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최초의 반항은 쉽지 않다. 헌법 조항을 또박또박 읊어대고 야한 잡지를 몇 권 뗐다고 해도 아이들은 아이들. 게다가 상대는 가위 하나로 마을을 평정한 마을의 실세, 요시노 아줌마가 아닌가. 하지만 세련된 머리 모양을 지닌 '얼짱'으로 거듭나 여학생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아이들은 필사적이다. 2차 성징기와 함께 맞이한 아이들의 좌충우돌 성장담은 코믹하고 정감 있는 에피소드로 채워져 보는 내내 웃음을 자아낸다. 사소한 일에 의리를 과시하고 별 것 아닌 일에 깔깔 웃어대는 아이들의 모습은 유년 시절의 가장 구석진 기억까지 환기시킨다.
이렇듯 <요시노 이발관>은 시골아이들의 성장담으로 마무리 지어도 무리가 없는 영화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으려 해도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적으로 연상되는 것이 있다. <요시노 이발관>은 유쾌한 성장영화이며 날카로운 정치적 우화다. 요시노 이발관이 무려 100년 동안이나 바가지 머리를 전파한 마을은 지독히 부조리했던 과거 혹은 현대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모든 아이들이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는 마을의 외관은 생경하지만 모든 아이들을 바가지 머리로 만드는 마을의 행태는 결코 낯설지 않다. 영화의 코미디 감각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은 요시노 아줌마와 아이들의 대결이 독재와 혁명, 보수와 진보, 전통과 개혁의 구도로 전환되며 현실과 공명을 일으킬 때다. 낡은 권력을 밀어내는 것은 아이들, 즉 젊은 세대의 용기와 순수다. 하지만 때때로 아이의 품이 어른의 것보다 넓을 수 있다. 아이들은 혁명에 성공하지만 자신들을 위해 늘 과자를 마련해두었던 요시노 아줌마의 따뜻한 마음은 잊지 않는다.
<요시노 이발관>은 <카모메 식당>(2006) <안경>(2007)을 연출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장편데뷔작이다. 오기가미 감독은 데뷔작에서부터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낸다. 판타지 아닌 판타지 공간에서 지독히도 일상적인 풍경을 그려나갔던 그의 화법은 <요시노 이발관> 부터다. 특유의 정밀한 관찰력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유년시절과 독재사회라는 비약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소재들을 설득력 있게 조합한 것은 아이들의 심리 변화를 상세하게 그린 그의 연출력 덕이 크다. 영화는 사회적, 정치적 메타포를 품으면서도 결코 아이들의 성장속도를 앞서나가지 않는다. 때문에 멋있어지고 싶어서 두발 자유화를 외치고 인권을 부르짖게 된 아이들의 혁명은 그 어떤 정치적 영화보다도 그럴 듯하다.
2009년 6월 25일 목요일 | 글: 하정민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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